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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Per Dec 03. 2021

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입사, 퇴사, 입사, 적응….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12월 2일. 드디어 일기를 쓴다. 다름 아니라 이틀 만에 퇴사하고 입사하고 적응하고… 아주 난리였다. 브런치에 못 들어온 이유가 다 이것 때문이다.


진짜 힘들다...


분명 조건 좋고 사람 좋은 쇼핑몰 회사에서 워라밸 지키며 잘 생활할 거라던 포부가 어디 갔느냐 할 수 있겠다. 이런 다짐을 한지 이틀 만에 퇴사? 이건 작심삼일도 못 된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니.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직무, UI/UX 디자이너 합격 문자를 이튿날에 받았기 때문이렷다. 읽으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전에 언급했던 '사람은 생각하는 오이다.' 글에서 연락만 기다렸던 그 회사. 그곳이 맞다. 아무리 포기한다 해도 나름의 열정은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발행 취소한 것도 다시 되돌려놔야겠다. 떨어진 거 창피해서 취소해놨는데.


엄청 합격할 거 같다는 느낌으로 금요일까지 연락 주겠다고 했으면서 설레발만 쳤다가 문자 안 오길래 떨어진 줄 알고 주말 동안 다 던져버렸더니 화요일에 합격 문자를 받았다. 병가를 내어 따로 연락을 주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진실인지 아닌지는 다니다 보면 알 것이고. ―하여 오늘로 출근 사흘째. 병가는 사실이었으나 원래 주기로 했던 날짜에 연락을 못 준 이유는 그 이틀 후까지 있었던 면접 때문인 모양이다. 흠.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왠지 찝찝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 들어가니 역시나 대표님처럼 사람은 너무 좋은 곳이었다. 사무실은 지금까지 다닌 어느 곳보다 작았지만 전에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 내게 1순위 회사는 회사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같은 날 입사하게 된 PM 분과도 친해지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업무적으로는 조금 힘들었다. 사수는 없고 나 혼자 디자인을 떠맡아서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욱 기획자 분과 시시때때로 소통해야 했다. 문제는 상사는 'ㅇㅇ씨 스타일이 마음에 드니 그만큼만 해줘라.'라고 하셨고 기획자 분은 '레이아웃은 그대로, 다듬기만 해 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미 디자인을 할 줄 아는 기획자의 손길로 리뉴얼이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뭣도 모르는 신입이 멋대로 갈아엎을 수는 없고, 수정은 해야 하고. 그래서 중간에 끼어 난감하게 된 상황이 펼쳐졌다.


내 스타일을 접목하면 콘셉트가 우주 밖으로 튕겨져 나갈 테고 레이아웃 안 건드리고 콘셉트대로 하면 달리 한 게 없어 보여서 그 사이를 찾는 데만 입사일 포함 3일이 걸렸다. 이틀째에 빨리 부탁한다느니, 더디다느니… 그런 말을 들었는데…. 사실상 미치겠는 노릇이다. 그럴 거면 신입이 아니라 경력을 구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그런 경력 자리밖에 없어서 겨우 겨우 신입으로 온 거 아닌가. 아직은 참을 만했다. 그러나 사흘째.


"아직은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언제쯤 정신이 돌아올까요?"


이런 농담을 들었을 땐 압박감이 장난 아니어서. 제발 위치 가려가며 농담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 이런 거 말곤 다 괜찮다. 그냥 협업이 낯설어서 그런 거라 치부하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껏 했던 프로젝트는 이미 기획이 완성되어 있어서 그에 맞춰 디자인하거나 기획, 디자인 전부 혼자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이미 완성된 타인의 디자인을 수정한다는 건 적지 않은 낯섦과 스트레스였다. 습관적으로 기획 쪽을 만지려고 해서 정신 놨다가 다시 차린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차라리 새로 만들고 말지.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는 자꾸만 내가 피드백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난 피드백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땐 남들 앞에서 발표도 곧잘 하곤 했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 상사에게 하도 작업물, 학력, 외모 같이 별걸로 까여서 그런지…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고 먼저 보여주는 게 너무 두려워진다. 이쯤 되면 협업하는 기획자분은 이런 내가 소통 못하고 손도 느린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져서. 자존감이 많이 깎이고 자존심도 상한다. 그래서 마감일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오늘은 야근(수당도 없지만.)하고 왔다.


아무튼 내가 노력해야지.

내가 이겨내야 할 건 내가 해야지.


적다 보니 불평, 불만이 많아 보이는데 그냥 하소연이나 다름없다. 이건 일기니까.

쓴 만큼 가학적인 분위기는 일절 아니요, 굳이 따지자면 농담이 더 많은 곳이다. 식대 제한도 없고 직원들도 다 괜찮은 분들이니 내 문제만 빼면 큰 걱정은 없다. 각자 힘들어해도 맡은 일에 프라이드가 있다는 게 느껴져서 특히 좋다.


적어도 2년은 버티기로 했으니까.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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