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0.01% 직장인들의 특징
삼성에 들어오기 전 필자가 가진 삼성 사람들의 이미지는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말 잘 듣는 사람들, 아부 잘하는 사람들이 삼성에서 살아남고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0.01%의 임원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로직(Logic)이 강하고 그것을 관철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아부나 정치로 승부보기보다는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자신만의 생각인 인사이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공통점이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실제 경험을 통해 느낀 삼성 그룹사 전체에서 최상위 포지션에 있는 임원들과 사장단의 특징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필자는 삼성 그룹사의 본사 조직에 속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최상위 임원들, 사장단, 의사결정권자들과 자리를 같이 할 때가 많았다. 그런 필자가 볼 때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 네 가지였다.
① 단점도 있지만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크다
② 선택과 집중을 할 목표 설정 능력이 뛰어나다
③ 정보를 종합적으로 생각한다
④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그건 조직 생활, 커리어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인사이트를 잘 뽑고 누구는 데이터 분석을 잘한다. 또 누구는 데이터 시각화를 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회사의 전략을 잘 짜기도 한다. 반대로 누구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영업, 마케팅 이해도가 낮다. 최고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분야를 제외하면 이해도가 높지 않을 때가 많고 성격적인 결함이나 조직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매년 계약이 연장되고 진급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빠졌을 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만큼 대체 불가능한 장점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장단 중 한 명은 인문계 전공을 했고 거의 평생 영업, 마케팅을 담당했다. 영업 쪽에 빠삭한 대신 기술에 대한 베이스가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영업 및 마케팅 관련해서, 고객 협상과 관련해서 따라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의 기술력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 뒤로 필요한 능력 중 하나는 고객 확보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사용할 고객이 없으면 사장될 기술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한 임원은 당시 시장에서 원하는 기술, 그리고 앞으로 원할 기술을 정확히 파악해 개발 부서가 이에 맞게 개발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개발된 제품을 재빨리 고객에게 가져가 누구보다 빨리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결과 회사에 엄청난 매출을 가져왔는데 이런 대체 불가능한 능력이 그 임원을 여전히 주목받는 사장단에 일원으로 남게 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기술 지식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누구보다 잘 발굴하는 사람 등 자신만의 강점이 명확한 사람들이 주로 조직의 최상위권에 남아 있었다. 한편 이들은 단점도 명확했다. 타 분야의 지식과 감이 약하다던가 조직 관리 능력이 약한 사람도 있었고 전달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명확한 강점을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몇 가지 약점은 별것 아닌 걸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최고 임원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보다 오히려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업무를 하다 보면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아마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최고 임원들은 이 선택과 집중할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 일을 해냈을 때 내게 돌아올 혜택과 해내지 못했을 때 패널티를 철저히 계산해 시간과 자원을 분배한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지를 빠르게 파악해 실행한다. 그 결과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빛내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자리에서는 조용히 자신을 낮춰 최종적으로는 +, - 가 잘 배합되어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렇듯 최고 임원들은 힘을 투자해야 할 업무나 액션들을 잘 골라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 설정 능력이 뛰어나며 그에 맞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나쁘게 생각하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체력과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조금은 뺀질이 같을 수 있겠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최종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자 능력이다.
최고 임원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정보를 듣는다. 회사의 다양한 분야에서는 물론 트렌드나 새로운 이론 등에 대한 정보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런 정보의 양은 결코 그들의 경쟁력이 아니다. 진짜 경쟁력은 그 정보들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다양하게 조합하는 능력이다. 소비자 동향을 기술의 최끝단까지 연결하는 능력, 반대로 아직 시장에 없지만 향후 성공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0년 후에 관한 지식들을 다양하게 조합하는 능력. 그것들이 진짜 그들의 능력이다.
혹자는 임원들은 회사에서 주는 정보가 워낙 많으니까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임원이 되기 전 예전부터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또는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이 능력은 단기간 내에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오랜 시간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최고 임원들은 이와 같은 훈련을 오랜 기간 지속해 왔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다.
필자의 팀은 비교적 분위가 자유로운 편인데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 회의 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만약 임원이 잘못된 정보나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경우 대리급 사원이 정보를 수정해주거나 임원의 의견에 정면으로 맞받아치기도 한다. 즉,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점점 배제된다. 회의에 조금이라도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 인사이트를 들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고 임원 회의도 마찬가지다. 전무 이상급 회의, 사장단 회의의 경우 회의 내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말이던지 해야 하는데 그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자신의 평가가 깎이는 것은 물론 회사 전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최고 임원 회의이다. 그 회의에서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하기 위해 최고 임원들은 계속 공부하고 정보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할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만들어 내는데 고민한 시간만큼 그 인사이트는 의미가 크다.
인사이트가 있는 임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그 인사이트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 공부하고 고민한 것이다. 거기에 그들의 경험이 더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의 인사이트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최고 임원들은 이 과정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인사이트가 약한 임원들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자신만의 목소리가 없어 곧 잘리게 된다. 그만큼 자신만의 목소리,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잘 만드는 것이 최고 임원들이 살아남아 온 방식이자 그들의 특징이다.
이번 글은 짧게 삼성 최고 임원들의 특징에 대해 필자가 실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더 뛰어나다거나 이런 특성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조직에서 상위 0.01%에 속한 사람들을 회사생활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사람들의 특징 중 일부를 일반화해 정리한 것이다.
이 내용들이 낯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기 계발 서적을 보면 늘 빠지지 않는 주제들이다. 하지만 이 능력들을 체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낸 사람들, 우리의 커리어 선배들의 성공 모습을 통해 이런 능력들을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필자는 스스로의 능력과 그 능력을 키워가는 방향에 대한 의심이 많이 늘었다. 학생일 때보다 오히려 더 방황하고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이런 필자에게,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글에서는 네 가지 특징만 다뤘지만 앞으로 필자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