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백종원을 따라 해 보니
작년과 올해, 필자 회사의 한 사업부문은 역대급 한파를 맞았다. 세계 최고라 자부했던 기술과 사업에서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했고 그 결과로 전년 대비 급락한 영업이익을 받아보았다. 그전까지 전략의 기조가 '일류화' 혹은 '초격차'였다면 이제는 '생존'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만큼 업황이 어려웠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필자의 팀은 이 사업부문을 위한 전략 수립에 들어갔고 그중 일부를 필자가 전담하게 되었다.(물론 초안 작성을 전담했고 최종 보고는 파트장을 통해 나간다)
필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맡은 부분에 있는 모든 제품들의 정보를 모으고 그 제품들이 속해 있는 시장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아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① 제품의 수가 엄청 많았고 특히 시장 표준이 아닌 제품도 많았다
②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경쟁사보다 실력이 뒤떨어졌다
③ 실력이 떨어지는 제품들은 거의 적자 수준이었다
④ 적자 제품들이 속한 시장은 규모가 작고 거래선이 약했다
정리 결과 필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필자가 몰랐던 이유는 본사에서 받는 주요 보고에는 실리지도 않을 정도로 적은 물량과 비중 없는 거래선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 많아 생략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분석 결과 경쟁사보다 실력이 좋지도 않았고 생산 가능한 물량도 훨씬 적었다. 그러다 보니 가격 교섭 능력이 떨어져 적자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연도별로 봤을 때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향력이 감소하면 당장 가격 교섭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사업 전개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제품군의 영향력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필자는 그 방향으로 전략을 고민했다.
필자는 시장의 표준이 되거나 그 표준을 따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표준이 된다면 그 시장을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고 혹시 되지 못한다면 그 표준을 따라야만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의 제품들 중 많은 수가 표준과는 동떨어진 제품들이었다. 그리고 그 생산 물량이 적었으며 거래선도 시장에서 영향력이 작은 거래선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 필자는 두 사람이 떠올랐는데 바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백종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한 번 쫓겨났다가 돌아온 뒤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던 애플의 제품군을 단 몇 개로 정리했고 이후 출시하는 제품들 라인업도 최대한 단순하게 가져갔다. 그 결과 망해가던 회사를 되살리는 것은 물론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될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필자는 백종원의 골목식당 애청자이며 매회 볼 때마다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그 방송에서 백 대표님이 주로 주는 솔루션의 핵심은 바로 '메뉴 단순화'이다. 너무 많은 메뉴는 작은 식당에서 퀄리티를 높이기도, 차별화하기도 어려워 간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한 예시로 포방터 돈까스 집이 있는데 원래는 다양한 메뉴를 판매했다가 솔루션을 받고 메뉴를 확 줄인 결과 새벽에 줄 서야 간신히 맛볼 수 있는 가게가 되었다. 중요 메뉴에 힘을 집중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필자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략을 작성했다.
필자는 판매량도 많지 않고 수익성도 좋지 않으며 무엇보다 시장 표준과 동떨어진 제품들을 정리해 우리가 잘하고 시장 규모도 크며 무엇보다 표준으로 인정받는 제품을 늘리자는 전략 자료를 만들었다. 즉, 제품 단순화를 통해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 끌어올리자는 전략이었다. 다행히 팀 내에서 반응은 좋았고 보고 자료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뒤, 해당 제품을 담당하는 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이거 누가 작성했어요?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필자는 순간 쫄아 '제가 작성했는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부장님은 시장도 모르고 제품도 모르는 친구가 뭘 안다고 이런 걸 쓰냐, 그리고 그걸 보고 되게 내버려 둔 너네 팀은 뭐냐라며 화를 냈다. 당시 너무 놀라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그 사업부문 의사결정에서 필자의 전략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그러나 얼마 전 올라온 보고 내용이 어딘지 익숙해 자세히 뜯어보니 내가 예전에 작성했던 그 전략 내용이었다. 혹시나 해서 알아본 결과 예전 본사에서 내려온 전략안이다 어쩐다 했던 것으로 보아 욕먹었던 그 자료가 참고가 되었던 것 같다. 제품 단순화를 하면 불필요한 역량을 줄여 손익이 개선된다, 핵심 경쟁력 확보할 수 있다, 주요 거래선 비중을 늘릴 수 있다 등 긍정적인 예상 결과가 수치화 되어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욕먹었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업에서 단순함은 꼭 고려해야 할 항목이라는 것을 느꼈다.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제품은 다양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을 수도 있고 다양한 고객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이 어려울 때, 이 다양성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제품을 모두 경쟁사보다 잘하는 것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때로는 다양성을 줄이고 역량을 핵심 제품들에 집중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거기다 이미 전체 표준으로 자리 잡은 제품들이 있다면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이쪽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매우 큰 회사의 전략이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고 얻은 아이디어에서 왔다고 하면 조금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백 대표님이 추구하는 단순함과 스티브 잡스가 추구했던 단순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엄청난 사업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로 내린 결론인 '단순함'은 사업 전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