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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호에 맞는 May 24. 2020

차이나는 사업기획
: 대기업 vs 스타트업

힘주는 포인트가 다르다

대학생 때부터 사업기획을 좋아했던 전 벤처캐피털 인턴부터 대기업 정규직까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사업기획을 할 수 있는 직무를 선택해 경험했어요. 그동안 기획했던 사업, 창업의 종류만 해도 화장품 큐레이션, 진로 컨설팅, 스포츠 용품부터 인공지능 서비스, IT 부품 사업까지 천차만별이에요. 규모로 보면 무자본 창업에서 조 단위 투자가 들어가는 사업까지 기획해 보았으니 깊이는 몰라도 종류만큼은 정말 다양하게 해 본 것 같아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면서 느낀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업기획의 차이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1. 힘주는 포인트가 다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업기획의 가장 큰 차이는 '힘주는 포인트, 강조하는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의 깊게 볼 포인트'가 되겠네요. 먼저 간략하게 일반적인 사업기획서의 틀을 보면 아래와 같아요. (경우에 따라서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내용이 추가되거나 빠지기도 해요)


(1) 사업 배경(시장분석)
(2) 경쟁사 분석
(3) 사업 방향(아이템 소개)
(4) 경쟁력  
(5) 구현 방법 + 가능성(고객 반응, 데모)
(6) 수익 창출 방안(비즈니스 모델)
(7) 향후 일정, 재무, 인력 등 지표


먼저 대기업의 경우 주로 앞쪽 단계인 '사업 배경~경쟁력' 쪽에 좀 더 힘을 많이 주는 편이에요. 즉, 사업에 대한 당위성,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빈틈없이 드는 것을 강조해요. 예를 들어, '시장에서 이런저런 요구가 있고 유리의 사업 방향과 핵심역량이 맞으니 이 사업을 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성과 논리를 어떤 방향에서 찔러도 다 막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반대로 사업기획서 앞쪽에서 당위성, 논리를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설득시키면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지, 수익은 어떻게 창출할지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음, 그렇구나." 하고 쓱 넘어가는 분위기예요. 그 이유는 사업의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의사결정권자들은 세세한 내용의 정합성보다는 의사결정 포인트에만 집중하기 때문인데 이건 2번에서 좀 더 설명할게요.


스타트업의 경우는 반대로 앞쪽보다는 뒤쪽의 '경쟁력~구현 방법~수익 창출 방안' 쪽에 더 힘을 주는 편이에요. 어떤 벤처투자자분께서는 "난 제품, 서비스 내용이랑 고객 시연 부분만 봐."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사업 배경, 시장분석 쪽에는 비중을 많아 두지 않아요. 그 이유는 스타트업의 경우 얼마나 사업하기 좋은 시장에 뛰어드냐 보다 어떤 사업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행할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는 했는데 실행력이 부족해 실패하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아, 이 사람들에게 투자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회수는 할 수 있겠구나"하는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 예상 고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어요.



2. 의사결정 포인트 vs 디테일


앞서 대기업 사업기획에서는 앞쪽의 논리 부분을 더 강조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세한 내용의 범위가 너무 넓고 내용이 복잡해 의사결정권자들이 모든 내용의 디테일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수천 억에서 조 단위 투자를 하는 경우 그 내용의 복잡성은 수백 장의 보고서로도 부족할 정도로 많고 어려워요. 그 모든 내용을 사업기획서에 담는 것도 매우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이 기획서를 승인해줄 사람들에게 이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에요.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기획서의 후반부에 나오는 디테일한 사업의 내용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검증을 하는 대신 본 사업기획서에서는 요약본만 담아야 해요.


대신 사업을 위해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 포인트들은 강조해요. 그래서 결정권자들이 논리적으로 '이 사업을 해야겠구나,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대기업에서의 사업기획서예요. 이때 너무 디테일한 내용이 들어가면 의사결정 포인트들보다 내용의 정합성으로 논의가 옮겨갈 여지가 있어 디테일은 요약만 하는데 그러면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논리 부분만 남게 돼요. 즉, 사업기획서의 앞부분만 남게 되는 것이죠. 


반면 스타트업은 1번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투자자가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사업 아이템을 구현할 수 있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디테일한 내용을 많이 담는 편이에요. 그래서 아이템 시연이나 고객 반응 등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요. 때로는 시장분석 등은 아예 다루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저희에게 투자해주시면 이 사업 성공해서 꼭 투자금 회수할 수 있어요!'를 증명하는 부분에 더 힘을 주는 편이에요.



3. 팀 소개


예전 벤처캐피털에서 인턴을 했던 시절, 한 투자심사역께서 해주셨던 말이 있는데 벤처투자 쪽에서는 통용되는 말인 것 같아 소개하면 다음과 같아요.


난 사람을 많이 봐. 설령 한 아이템이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과 팀이 갖춰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



이런 분위기가 있어서인지 "우리는 이 정도 팀을 갖췄어요. 투자해주신다면 분명 사업을 구현할 수 있어요. 이 아이템이 망해도 우리 팀은 다른 아이템을 찾아 재기할 수 있어요"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스타트업 사업기획서에는 팀 소개 부분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에요.  


반대로 대기업에서는? 전혀 중요하지도, 관심도 없는 부분이라 담지 않아요. 그 대신 사업을 실행할 때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책임소재는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정리한 내용이 들어가기도 해요.




제가 느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사업기획 차이는 이처럼 강조하는 포인트, 힘을 주는 부분이었어요. 양쪽 다 각자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의 사업기획이 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스타트업의 사업기획은 좀 더 내 사업, 내 아이템을 가지고 투자자들과 고객을 직접 설득하는 느낌이라 현장에서 진짜 사업을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또 빠른 시일 내에 수익을 창출하고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기획을 할 때 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반면 대기업은 논리 싸움인 느낌, 내 사업이 아닌 느낌이 강해서 몰입도가 좀 떨어졌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대기업 사업기획서에는 논리와 의사결정 포인트를 주로 강조하기 때문에 사업 아이템과 고객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 조금 탁상공론(?) 같은 느낌이 나서 저는 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치피 회사는 안 망하겠고 월급은 잘 나오겠지 뭐'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보니 생존이 위협받는 긴장감(?)이 좀 덜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대기업에서 하는 사업기획은 스타트업에서 하는 것보다 덜 생생하고 몰입도도 낮은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신사업 기획도 경험해 보았으니 언젠가는 스스로의 사업을 기획해 실행해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졌어요. 사업의 성패와는 별개로 실제 내 이름과 생존을 걸고 피부로 느끼는 기획을 해보면 또 한 번 사업기획에 대한 생각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언젠가는 꼭 한 번 도전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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