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창업할 땐 들어오겠다는 돈을 거절한 적이 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투자 제안이 왔다. 뷰티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처음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대기업을 등에 업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투자 조건을 확정하고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조건이 바뀌었다. 51% 지분을 원한다고 했다. 투자금은 더 주겠다고. 초기 스타트업한테는 꿈도 못 꿀 규모였다.
공동창업자와 밤마다 통화했다. 그 돈이면 제품 개발부터 초기 마케팅비, 인재채용까지 넉넉했다. 급여도 넉넉히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대기업 신사업팀으로 이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편한 1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을 봐야 했다.
결국 거절했다. 낮엔 잘한 일이라고, 우린 더 잘될 거라고 파이팅 했지만, 밤에 자려고 누우면 후회가 몰려왔다.
타이밍이 안 좋았다. 사직서는 이미 낸 상태였다. 돌아갈 곳은 없었다. 라운드를 처음부터 다시 돌아야 했다.
냉정하게 보면 우리는 이런 회사였다. 매출 0. 브랜드 로고 하나. 사업계획서 한 장. 제품 디자인 시안 몇 장.
온갖 곳에 IR덱을 돌리고 콜드메일을 보냈다. 답이 오든 안 오든 다음 날 또 보냈다.
거절의 연속이었다. 거절을 당할 때마다 우리가 왜 이걸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더 선명해졌다.
한편으로는 밤에 배달이나 대리를 뛰는 모습이 떠올랐다. 거의 다 된 것 같았던 딜이 마지막에 깨진 날, 새벽까지 잠이 안 왔다. 하지만 이미 칼을 뽑았다. 무조건 출시는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았다. 앞서 거절했던 돈에 비하면 매우 타이트한 금액이었다.
근데 투자받은 건 돈만이 아니었다.
한 곳은 브랜딩과 디자인에 강점을 가진 회사였다. 물심양면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을 줬고, 지금도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한 곳은 글로벌 수출 총판이다. 데이원부터 우리 제품을 해외 바이어들에게 시딩하고 온라인 판매까지 만들어줬다. 아직 국내에서 제대로 자리도 못 잡은 브랜드가 해외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 숫자가 지금 우리 현금흐름에 큰 숨통이 되고 있다.
돈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지난번 창업 때 뜨거웠던 건 내 머리였고, 이번에 차가워진 것도 내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