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온도] 과열 (1/2)

by BusinessKwon

투자를 너무 쉽게 받으면 생기는 일이 있다. 투자가 당연해진다.

6년 전 얘기다. 코로나 시기, 시장에 돈이 넘쳤다.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의 한국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250대 1의 경쟁률이었다. 미팅 2번 만에 투자가 결정됐다. 그리고 몇 달 뒤 한국에서 정말 유명한 초기 VC로부터 후속 투자까지 받았다. 이쪽도 화상 미팅 2번이 전부였다. 코로나라 실제로 만나지도 않았다.

첫 미팅부터 주금 납입까지 한 달. 6년 전 일인데, 지금 창업한 회사보다 밸류도 높았고 투자금도 더 많았다.

뜨거운 돈이었다. 시장도, 투자자도, 내 머리도 뜨거웠다.


투자뽕

주변에서는 미래가 촉망되는 핫한 스타트업 취급을 해줬다. 다른 대표들은 부러워했다. 투자받은 것 자체가 마치 나의 최대 성과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투자유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실 거절당할 때가 아니라 투자받은 직후다. 통장에 돈이 찍히는 순간 돈 쓰는 모드가 켜진다. 채용을 늘렸다. 사무실을 옮겼다. 마케팅 예산을 올렸다. 다 성장에 필요한 비용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다음 라운드가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대단한 착각

그때 시장은 전쟁이었다. 수백억씩 투자받는 회사들이 같은 시장에서 같은 고객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자금력 차이가 수십 배였다. (물론 역량도 부족했다.)

우리가 믿었던 건 가격과 유통구조였다. 근데 그건 할인쿠폰 한 장 앞에 무기력했다. 수백억을 태울 수 있는 회사가 쿠폰을 뿌리면 가격 경쟁력은 증발한다. 돈으로 만든 성장 앞에서 구조적 장점은 의미가 없었다.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은 다 끌어모았다. 투자금, 지원금, 대출, 내 돈. 합치면 10억 원에 가까웠다. 피봇도 해볼 만큼 다 해보고, 결국 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착각은 현실을 가렸다. 경쟁자들의 자금력과 역량, 우리 서비스의 한계, 시장의 냉정함을.


뽕이 빠지면

오랜만에 직장인으로 돌아가 몇 년을 보냈다. 나쁘지 않았다. 직장인 치고 권한도 있었고,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배울 기회도 많았다. 사업할 땐 돈 쓰면서 배웠는데, 직장을 다니니까 돈 받으면서 배웠다.

근데 돈 받으면서 푸는 건 결국 남의 숙제였다. 업무나 성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현타가 왔다.

결국 또 창업했다. 이번에는 머리를 최대한 차갑게 식혔다.

작가의 이전글"해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