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비 AI, 코드 한 줄 못 쓰던 뷰티 창업자의 반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코드를 거의 못 읽는다.
데이터베이스나 쿼리, HTML 정도는 조금 알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코드는 한 줄도 혼자 작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IT 전문가나 개발자 없이 데이터 자동화부터 ERP와 백오피스, OS, 그리고 사업 전반을 한눈에 보는 BI 대시보드까지 자체 구축한 맞춤형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우리 회사는 IT 스타트업이 아니다. 선크림 파는 뷰티 회사다.
반년 전, 나는 챗GPT한테 IR덱을 맡기고 있었다
창업 초반엔 다들 비슷하게 시작할 것 같다. 챗GPT 열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받은 내용 다듬어서 쓰는 식. IR덱 만들 때 챕터 구성 물어보고, 카페24 꾸밀 때 HTML 코드 복붙해서 "이거 버튼 색 바꾸는 법"을 또 물어보고. 내가 직접 코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결과물만 갖다 쓰는 수준.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한계가 분명했을 뿐. 대화가 길어지면 앞 내용을 잊고, 조금 복잡한 작업은 여러 번 설명해도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내가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니 뭐가 틀렸는지도 모른 채 "다시 해줘"를 반복하는 상황.
그러다 VS Code랑 GitHub로 개발 환경을 세팅하고 Codex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AI한테 진짜 "작업"을 시킨 느낌이었다. 물어보는 게 아니라 시키는 것. 이게 신세계였다.
제미나이 3.0이 쏘아올린 작은 공
제미나이 3.0이 처음 나왔을 때 반응이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써보니까 진짜 달랐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랑 앱스크립트를 같이 쓰면서 데이터 수집 자동화를 시작했는데, 성능이 확실히 올라왔다는 게 느껴졌다. 챗지피티가 1등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고, 그때부터 더 좋은 게 나오면 바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한두 달 지나니까 슬슬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맥락이 길어지면 흔들렸고, 복잡한 작업을 연속으로 시키면 중간에 길을 잃는 느낌.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쓰다가 "아, 이게 안 되네"를 반복하는 구간이 왔다.
2월, 한 달 동안 세계가 세 번 바뀌었다
2026년 2월이 왔다.(소름 돋는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직 2월이다.)
2월 2일 코덱스 맥OS 앱 출시. 2월 5일 코덱스 5.3 출시. 같은 날 클로드 오푸스 4.6도 출시됐다. 코덱스 앱을 따로 쓰면서 로컬에서 파이썬을 직접 돌리기 시작했다. 셀레니움으로 로그인하고, 버튼 누르고, 파일 다운로드하는 플로우까지 자동화되면서 데이터 수집 자동화율이 사실상 99%가 됐다. 개발에 본격적으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생각보다 훨씬 큰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컴퓨터는 결국 코드로 작동한다. 코드가 컴퓨터에게 시키는 거라면, 코딩으로 컴퓨터가 하는 일의 거의 전부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걸 머리가 아닌 손으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클릭, 입력, 다운로드, 분석, 작성, 전송. 사람이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면 뭐든 코드로 시킬 수 있다. 내가 직접 코드를 짜는 게 아니라 AI한테 시키면 되고.
그 깨달음이 집에 굴러다니던 6년 된 미니PC를 깨웠다. 리눅스 루분투 설치하고, 오픈클로 세팅하고, 난생처음 텔레그램도 깔았다. 크론잡으로 자동화 스크립트를 돌리기 시작했고, 새벽에 알아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시트가 업데이트돼 있는 구조가 됐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텔레그램으로 셀레니움 디버깅을 하고 크론잡을 수정했다.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면 잠이 들었다.
어느 날, 클로드 코드에 웹 브라우저 제어 기능이 생겼다. 맛보기로 써보다가 그날 바로 클로드 맥스를 결제했다. 클로드 코드는 단순히 코드를 짜주는 게 아니었다. 프로젝트 구조를 파악하고, 뭘 고쳐야 하는지 먼저 짚어주고, MCP로 스프레드시트와 앱스크립트까지 개발 환경에 연결하니 히스토리를 관리하면서 버전별로 작업하는 게 됐다. (물론 코덱스도 되는데, 뭔가 사용해보면 클로드 코드가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기분이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달라진 건 코딩만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제 인플루언서 리스트도 내가 직접 안 본다. 클로드에게 웹 브라우저를 맡기고 알아서 분석하고 리포팅하고 추천까지 하게 한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일을 보다가 알림이 오면 리포트를 확인하고 결정만 한다. AI가 일하는 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이 모든 게 2월 한 달 안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 대부분은 불과 2주 만에 만들어졌다.
코드 한 줄 못 쓰는 내가 한 것들
나열하면 이렇다. 모든 채널 판매 및 마케팅, 입출금 내역 등 모든 사업 관련 데이터 수집 자동화 파이프라인, 거래처 발주 및 인보이스 관리 시스템, 생산 배치별 누적 소모 수량 추적, 마케팅·판매·생산·재고를 한 화면에서 보는 BI 대시보드, 매일 아침 AI가 분석해주는 데이터 인사이트. 자사몰 UI/UX 개선 작업은 이 목록에 넣기도 민망할 정도로 기본이 됐다. 거의 사업 OS(Operating System)를 만들어냈다. (물론 앞으로 더 방대한 것들을 만들 것 같다.)
콘텐츠 쪽에서는 우리 팀이 제품 콘셉 이미지부터 상세페이지, 모델컷, 영상까지 AI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건 글 하나를 따로 써야 할 분량이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선크림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뷰티 회사다.
"선택과 집중"을 외치던 내가
반년 전의 나는 "선택과 집중"을 입에 달고 살았다. 리소스가 부족하니까 뭘 포기할지 항상 고민했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외친다. "자동화와 집중, 그리고 더 많은 일!"
오늘 새로운 업무가 생기면 일단은 직접 한다. 반복될 조짐이 보이는 순간, 그날 저녁에 자동화한다. 다음 날 새벽부터는 기계가 돌아간다. 나는 그 시간에 다음 일을 한다. 자동화가 쌓이면서 내가 직접 손대는 일의 밀도는 점점 높아지고, 동시에 더 많은 일이 돌아가는 구조가 됐다. 선택과 집중은 "뭘 포기할까"의 프레임이었고, 지금은 "뭘 자동화할까"의 프레임이다. 이게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진짜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단순히 "AI가 코딩을 잘해줘서"가 아니었다.
이전까지 스타트업이 뭔가를 만들려면 사람이 여러 명 필요했다. 사업 담당이 기획자한테 설명하고, 기획자가 디자이너한테 넘기고, 디자이너가 개발자한테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미스, 얼라인 비용, 일정 지연. 전통적인 업종이라면 이게 그냥 외주 개발비로 치환된다. 어느 쪽이든 엄청난 리소스가 거기서 새고 있었다.
AI랑 단둘이 작업하면 이해관계자가 한 명이다. 내가 원하는 걸 설명하고, AI가 만들고, 내가 보고 피드백하고, 다시 만들고.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날 구조 자체가 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결과물 사이의 거리가 극도로 줄어드는 것. 이게 핵심이었다. 결과물이 잘 안나온다? 내 요구사항부터 의심한다.
앞으로의 반년
반년 전 내가 지금의 나를 봤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 속도로 반년이 더 지나면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안 된다.
AI 활용 역량의 격차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이미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한끗이 반년 뒤 열끗, 그 이상의 차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당신 혹은 귀사의 경쟁자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반년 뒤, 그 격차는 얼마나 커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