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del Minority of New York

모범적 소수자로 살아남기

이민이나 유학 그리고 갑작스러운 실업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을 경험했을 때 사람은 '상실감'을 겪는다고 한다. 즉, 이런 사건들을 겪었을 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리터니' 로서의 이 시기를 견디는 게 녹록지 않다.

나는 15년 정든 '내 나라 미국'

[I would define myself as 'the third world-kid', so it is acceptable to refer the states as 'my home']

을 떠나올 때부터 몸이 아팠다.

학교 졸업식 후 기념 여행으로 미국 전역을 돌며 여행하고 있을 때 애리조나 근교 호텔에서 늦은 밤 엄마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 난 한국 가면 몸이 아파. 늘 그랬어"


그리고 내 동물적 감각에 의한 예상은 적중했다. 몇 년째 지속되는 과도한 '역문화 충격' (reverse- culture shock) 스트레스 때문에 암 같은 큰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지속되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티브이만 틀면 보이는 한국의 보험회사의 '암', '뇌졸중' 같은 중대질병 보장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행간에 내포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Fierce competition-> stress-captive-> risk-> danger-> uncertainty-> health and economic- loss -> no-recovery?> become eliminated or naturally selected among Korean society


이런 수순으로 살아가는 OECD '암 발병률 1위' '자살률 1위' 기록의 '지옥 불 반도'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거니까. 또 그 '불안'과 '불확실성'을 이용해 상업화 한 기업과 개인들은 교활하고 영악하다.


엄마는 말했다. "그럼 여기 남아서 일 구해볼래?"


"졸업 후 F-1 학생비자 만료되었고, 현지 취업, 영주권 따기는 거의 불가능이야. 그냥 한국 들어갈게."

장장 15년 미국 생활을 마치고 아무런 대책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 허무하고 공허했다. 사실 내가 느낀 '상실감'을 형용하기란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부족하다. 지난한 시간 동안 미국 유학을 마치고는 이유 모를 회의와 허무함에 엄마와 나는 매일 밤 호텔방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이민 가방에 짐을 싸며, 우리는 고개 숙이며 좌절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정신적 추방이었다.



그렇다.

글로벌라이제이션 흐름에 힘입어, '홍정욱 7막 7장'의 신화적 유학 성공기, 90년대 상류층의 상징 오렌지족에 대한 시기, 질투, 심술, 부러움 속 투영된 베이비부머들의 과도한 교육열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조기유학의 붐으로 이어져 교육적 유행과 함께 '천조국으로 영어 배우러 오세요!' 미국의 교육 프로파간다를 부추겼다. 나는 거대한 강대국의 선전에 현혹되고 선동되어 삥 뜯기고 착취당했다는 생각이 앞선다. 왜냐하면, 아무런 산출물 없이 내 유년기 성격발달은 자연스러운 일련의 프로세스로 'Fresh off the Boat'(FOB)에서 시작해 'Asian-American'에 이르는 과정에, 속칭, 내면은 하얗고(white wahsed, 백인) 겉은 노란(동양인) '바나나'로 숙성되기까지의 그 기간은 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세뇌당해 버렸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한다.


"Mind and Soul were dominated by the U.S. imperialism"


2살 때, 10살 때 이따금씩 아버지 일 때문에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 나이 열네 살부터 살았던 미국, 뉴욕 주, 맨해튼. 눈 감고도 복잡한 퍼즐 같은 애브뉴와 브로드웨이를 두루두루 훤히 섭렵했던 The Center of the Universe였다. 10살 때 처음 마주했던 The Time Square, The Central Station, JFK Airport, NYC Metro, Brooklyn, Soho, Broadway, 영원한 나의 정신적 스위트홈 Flushing, Queens까지 뉴욕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자유분방함에 숨통이 트이고 미국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한없이 아쉽고 그립다.

'The First Place Market'이라고 불리는 경제, 금융 1번지에서 내가 누리고 먹었던 products 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한국에서 생산한 한국 제품은 입에 맞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마시는 물과 음식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Food Choices' 같은 개인 취향 선택 같은 게 대표적이다. 내가 사소한 grocery 장 볼 때도, Doritos 같은 칩 하나를 사도 vegan, gluten-free selection 같은 건 한국 코스트코에 가도 보기 힘들었다. 그놈의 HACCP 인증 마크만 난무할 뿐. Whole Foods 다니다가 농협 하나로 마트 장 보러 가면 그냥 격과 삶의 질이 떨어진 느낌이 든다.

미안하지만 one step above 'The Third World'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 스타벅스, 쉑쉑 등 맛대가리가 없었고 구렸다. 안 맞았다.

맥도널드 말고 웬디즈가 먹고 싶었다.

또 한국에 와서는 인덕이 드럽게 없었는지 마주하는 인간들 또한 세련미라고는 단 1도 없었고, 편협하고 좁은 시야에 매너리즘에 빠져 사는 인간들하고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허구한 날 무덤 같은 학교나 기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문제집이나 풀고 시험이나 보는 '주입식' 형 인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아온 그 무지함, 지밖에 모르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무식함을 느꼈다. 그 한국인의 '인간실격'에 대한 개념은 그들이 정신적 가치관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관찰하는 동기가 되었다. 뉴욕시와 서울시를 병렬 대치하여 말이다.

문화 예술의 상징을 넘어 'Hippie'와 'Hipster' 들의 거점지역인 소호, 윌리엄스버그, 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 같은 장소에선 흔히 말하는 대중문화가 아닌 sub-culture 즉, 비주류 문화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의 성지 또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둔 보헤미안들의 '영감'과 '혁신'의 아이디어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세련된 '이타적 공동체 의식'을 (sense of community)를 보여준다.

[ 이외 GENTRIFICATION 같은 '자본주의'사회 부작용 문제에 대해선 더 확장, DEVELOP 하진 않겠다. 내가 영향받았던 환경과 분위기만을 전개하는 에세이니까 말이다. ]

이러한 미국의 하위문화 서클은 따듯한 휴머니티에 기반한 '상호 존중'을 뜻하고 그런 사회적 토대로 '서로 웃음 지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난 지 오래였다. 그런 이타적 마인드의 '프렌들리 한 선함'으로 인해 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소는 생활의 원동력으로 또 인생 활력소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환경이자 서로 Fair Enough 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Big Apple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았던 New York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미국이 말하는 '공정사회' '실적주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계층 이동의 기회가 오는 그런 장소. 그래서 열심히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며 내 자식의 더 나은 미래와 교육을 위해 이민 오는 그런 나라였다.

한국서 좋은 직장 대기업 재직하다 한국 사회의 '주류' 신분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미국 닭공장 들어가 자식들 영주권 및 교육 서포트 하는 한국인 엄마 아빠들 많이 봤다. 2000년 초반까지 기러기 아빠도 한창 유행했지 아마.

이런 LIBERAL 한 정신적 자원과 soft/hard power의 이용으로 모든 분야의 원천기술의 획득과 1등을 석권해 범패권을 사로잡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할'에 대한 이견은 없다. 아무 이유 없이 거기 가서 살고 싶으니까, 한국서 이 정도 노력이면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최소 누구나 upper-middle class 로서의 삶은 영위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힙스터 랜드마크인 '홍대 문화'도 같은 연장선으로 뉴욕의 윌리엄스버그와 병렬 대치하여 볼 수 있겠지만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는 군대식 상명하복 같은 서열화된 유교적 '가부장제'에 산물인 '강요', '억압', '압박'에 시달려 분출하는 '저항'과 '분개'로서의 맥락은 미국과의 그 뿌리가 대등하지 않다 생각한다.

되려 한국 같은 IT 강국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down-top'체계로 이루어진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민주주의를 실현시킨 점에서 한국은 네티즌이란 베일에 숨어있을 때 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선 조용히, 가만히 있으며 침묵한다. 최소한 내가 느꼈던 한국은 그렇다. 튀는 행동 좋아하지 않고, 조직과 전체에 대한 충성으로 융화되길 바라는 한국적 정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취업 이렇게 힘든데 한국청년들 protest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촛불집회 같은 movement와 demonstration은 있을지언정 같은 민족끼리의 분열과 갈등은 너무 심하다는 것 또한 순수 차원의 행동주의(activism) 하고는 그 의미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주로 이권다툼에서 비롯된 개인의 이기적인 면모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완전히 떠나온 지 5년 째이고 아직도 나의 영혼과 마음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 15년 미국 생활 청산하고 다시 돌아온 한국은 상식 밖의 미지의 세계였고. 먼저 한국 들어간 한국 유학생들 말마따나 그들의 졸업 축하 인사는

'웰컴 투 헬 조선'이었다.

이런 말 하면 흔히 말하는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국뽕러, 꼰대 색희 들은 '그럼 그 좋은 선진 국가에 돌아가 살지 왜 한국 기어 들어와서 불평불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나! 국적은 대한민국일지언정 내 'national identity' 자체가 교포인걸.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생긴 건 한국인이데
"나 미국에서 컸어요.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나는 다른 거 알아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특히나 '네모형 인간'이고 무식하고 성질 더러운 '내셔널리스트'의 상징인 특정 족속들을 상대할 때는 그런 사고방식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 때문에 울화가 쌓여갔던 나의 정신적 데미지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끔은 한국 미디어에 등장하는 외국인 연예인들, 샘 해밍턴, 오취리, 타일러 이다도시, 로버트 할리처럼 본인들의 고국보다 해외인 한국에 와서 뭔가 더 잘 풀리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해외에 물 건너가 살면 더 잘 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가?라는 뿌연 안개처럼 불분명한 메커니즘을 생각해 본다. 나는 한국이 싫으니까 그리고 되는 것도 없고 걱정과 환란 속 위축되는 모습과 아픔만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해외' '국제'를 추구하는 나의 모습이다.

이게 바로 한국식 '운수소관'이자 '팔자소관'과 결부된 알 수 없는 메커니즘과 에너지 (운과 오행의 요소)에 의한 움직임 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미국 물먹은 정치인과 연예인만 봐도 그렇다. 이서진, 윤여정 같은 미국 물먹은 그들만의 세계, '계층' 적인 perspective에서 보면 뭔가 다르지 않나? 이 두 명 모두 집안 자체가 굉장히 좋다, 내지는 배우자 감이 인텔리거나 소위 말하는 '급'이 달랐다. 신분 상승이 용이했다는 방증 아니겠나?

신흥 귀족으로 등장한 연예인들 보면 '오행'과 '팔자' 따라 자기 이름 알리고 유명인과 권력자로 사는 정치인과 연예인의 삶 같은 거 말이다. '신분 상승'은 '조상 덕'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런 'determinism'스러운 '강한 결정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저 자기애적인 성향이 아주 강한 부류들이 인격장애 및 병리적인 집착과 강박관념 증세를 더해 출세지향적인 면모를 추구, 끝까지 밀고 나가서 궁극의 성취를 한다기엔 한국 내 불가피하게 맞닥트리는 운명 앞에 선 한국에 살고 있는 개인과 청춘들은 너무 무력하다.

한국의 운의 사용법을 알고 싶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배우 이서진의 외모는 연예인 외모가 아닌 거 같다.)
대한민국에서 노오오력 만으로 무엇이 가능할까?

가끔 보면 금수저 부모들이 90년대 초반 Ph.D 과정 밟으면서 원정 출산을 이용해 미국 시민권 취득해 한국사는 소위 '검머외' 들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 그 생득권 이용해서 재외 국민 특례 이런 걸로 스카이 비롯 한국 대학 들어가고 국내 기업 쉽게 취업하는 거 보고 기회의 격차 내지는 정보의 편차 큰 거 보니 정말 잉? 이게 뭔가? 싶었다. 초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계층 이동의 유기성 말이다.
한국 운빨 ㅈ망게임 맞지?

입시나 취업, 사업 같은 소원성취를 위해 유명 대형 교회나, 절에 모여들어 서로 경쟁하듯 기도하거나 차례상에 촛불 켜고 시루떡을 올려 빌고 비는 의식적 행위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종교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과학과 종교의 구분 짓는 심오한 철학에 빠져 고뇌하고 허우적대며 몇 년간 정신적 방황도 서슴지 않았다.

서양 귀신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 의미 이면엔 서구적 가치인 'Western Value'를 한국에 뿌리내리고 서양의 이데올로기 (IDEOLOGY)가 동아시아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그 역사적 계보와 서구의 저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 사회과학적 방법론 만으로는 설명 비평이 불가한 점이다.

종교에 의해 정신과 마음의 지배를 통한 제3국을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시켜 second, third place market 으로서의 경제적 착취의 action strategies 로서의 사악함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국가와 인종 간 차이와 국경을 넘어 나 자신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왜 동아시아 한국에 굳이? 서양의 십자가가 이리 많은가?"



분명 십자가는 이질적이었다. 사회주의 vs 민주주의로 국가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을 나누게 한 초청된 '손님' (system) 은 누구일까? 서로 총을 겨누어 싸우게 한 그 원인과 동기 그리고 생각의 발상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늘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학창 시절 읽었던 황석영의 소설, '손님'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토속 샤머니즘 '무당'은 미신인가 아님 믿음인가? 내 불안에 의해 타로를 보고 제 발로 점집에 찾아가 당장 내일 도 알 수 없는 이 시대에 내 미래를 물어보는 그 '답정너' 같은 '불안'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왜 굳이 그 불안은 한국에서만 도사리고 나를 괴롭히는 존재로 있을까? 또 그 불안을 이용해 등쳐먹는 코리안들은 왜 이리 많을까.


뉴욕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동안 남는 건 이데올로기밖에 없었다.

흔히들 말하길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은 나이트 라이프와 유흥문화도 가득하고, 의료시설, 복지 그리고 경제규모 면에서도 뭐 하나 빠짐없는 선진 국가 반열에 오른 나라이다. 그런데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나눠먹을 파이가 이렇게 협소하고 적은 지. 그 한정된 재화를 가지려고 흡사 '오징어 게임' 보다 극렬하게 싸우는 모습들. 그리고 영토 자체가 비좁다 못해 초밀도 'boundary'에 대한 개념은 보이는 게 너무 많아 남들하고 비교당하기 쉽다는 점.

그렇지만 나에게 삶의 1번 행복 요건이란 사람, 여유, 그리고 가족 중심 (family oriented)로 구성된 '사람답게 사는 삶' 그것을 원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 사람들이 왜 신내림 받는지 알겠다"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욕을 뒤지게 얻어먹었지만, 내 블로그의 첫 번째 키워드로 돌아와 내 '화병'의 근원은 상위 도시의 뉴욕이란 '속성'에 머물다 '한국'이라는 곳에 왔을 때 무언가 '신분 하락'으로 귀결되어 한국의 서열화된 직업세계와 계층 이동에서의 도태됐다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걸 수도 있다.

'model minority' (백인 주류 사회에서 모범적인 ' 성실한 아시안'의 역할을 통용하는 단어)으로서 살고 현재의 내 위치인 그곳에서 만족하다가, 단일민족 사이에서 '이래나 저래 나 내가 너보다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진흙탕 싸움 격의 경쟁과 '눈만 뜨면' 신경전으로 인한 감정 소모로 영향받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과거에 얽매였다.

취업은 안되지, 포부는 큰데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괴리감이 크다 보니 심인성에 기반한 신체화 증상에 시달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증상이었다.
에너지 (氣)는 컨트롤은 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서구권의 신경증, 노이로제의 오리엔탈 한국판 노이로제
'신병' (神病)이 아닐까 싶었다.

평범하게 살기 싫고, 화려하고는 싶고 자기애는 넘치는 나이지만 이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매 순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민다.
이러다가 미치지만 말자 다짐하는 개인적인 소회이다.

인정욕구는 강하고, 대우받고 싶어 하는 그 욕망.
신이 왔나 보다.

무시하자, 무뎌진다.

뉴욕이 그립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고 화가 없던 그 시절이 그립다. 숨통 트이며 자유롭게 숨 쉬고 살았던 꿈 꾸던 그 시절과 맑은 공기 그리고 뉴욕의 아침이슬 냄새가 그립다. 남 의식 안 하고 소신껏 사는 '해방' 된 삶이 그립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퉁명스럽고 시큰둥한 반응으로 한마디 했다.

"뉴욕이나 서울이나 별반 다를 건 없어 그때는 네가 부모 도움받아 공부했던 학생의 신분이어서 와닿지가 않았고, '돈 주는 회사는' 어디든 만만치가 않거든.
현실에 살아 제발"

엄마 말이 맞다. 그래, 지원받아 공부한 주제에 이제 돈 주는 회사에 들어가려 하니 만만치 않은 한국 사회에 처음 좌절됐던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만 내 인생의 혹독한 겨울을 홀로 보내는 게 정말 서럽고 힘들어서 내 고향인 뉴욕에 가고 싶다 스스로 읊조리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