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 and Aesthetic

절친의 교수임용

당최 그녀의 출신과 태생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 여인은 (국적불명) 國籍不明이었다.


미국 한복판에서 본 보통 유색인종 여성들 하고는 무언가 다른 '신비'(Mystic)였는데, 캠퍼스를 거닐다 그녀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그녀의 이국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누구지?" "한국인인가?" 하는 내 머릿속 질문은 늘 반사적이었고 자동적이었다.

깡말랐지만 데일리 요가로 다져진 올곧은, 단단한 자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은 그런 그녀의 옷맵시에 나는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했다. 내가 사는 캠퍼스 타운은 겨우내 매일같이 폭풍우가 몰아닥쳤다. 그 겨울 내가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Women's Studies 101 강단에 선 그녀는 진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사람 키 높이만 한 진보라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본 중 최고의 조화로운 색감이었고 배합이었다.


'엘레강스'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지금도 그녀를 연상한다.


그녀의 목에는 ethinic 한 다홍색(scarlet) 보석 장식은 'exotic' 상징성이었다. 자연스레 아시안계의 혈통을 잊지 않는 그녀만의 표현이었으리라. 그 목걸이는 그녀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서 한층 나의 의문을 더욱 자극했다. 그러나, 그 액세서리 만으로 그녀의 nationality와 ethnicity를 알아내는데 실패해 아쉬웠다.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계 인지 일본계인지 아니면 같은 한국인인지 모르는 오묘한 신비로움에 매료되고 강렬하게 끌렸다.


동방의 여전사 디즈니의 뮬란같이 눈빛은 용맹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뉴욕 런웨이에서 시크한 캣워크를 하고 있을 법한 리우웬(Liu Wen), 소라 박(Sola Park), 장윤주를 연상시키는 아방가르드 한 외모를 한 그녀는 영어 필기체로 판서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Today's Debate Topic: "Reproductive Agency"


그 순간 그녀는 나를 콕 집어 불러 세워 말을 시켰다.

"여성의 주체성이 왜 중요한지 말해볼래? '재생산 권리'에 대해서도 코멘트해 보렴"

세미나 수업에서 약간은 쏘아붙이는 그녀의 어조에 그 순간 몸이 굳었다.

난생처음 보는 별난(?) '페미니즘' 키워드에 당황하며 나는 어떻게든 디베이트 점수를 따내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답변을 하려다가 애꿎은 내 눈알만 굴리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 때 옆자리에 있던 학생이 내가 안타까웠는지

"hey, its about 'abortion', the current issue! "라고 속삭여 줬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역할은 가정 내의 이슈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사회경제 정치 측면에서 근본적인 역동성과 해당국가의 국력이 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생산 권리 주체성'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낙태 제도에 있어서 대법원 합헌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영끌한 답변을 끝내자, 그녀는 감탄하는 눈빛과 함께 반응했다.

"good!"

그녀의 scholarship을 회상하자면 SK 나비 센터의 노소영 관장과 같은 이지적인 감각이었다. 정곡을 찌르는 '알맹이' 있는 '언변'에, 차원이 다른 창의적이고 예리한 '지성'을 갖추었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폭발적인 '영성'을 지녔을법한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비' 그 영역 어디쯤이라고 그녀를 감히 묘사해 본다.

가끔가다 학자들과의 대화 중 닭살이 돋는 '영매 바이브' 비슷한 '초현실적인' 소름 돋는 순간이 있었던 점은 그녀의 '학문적 노력'에 근간한 '자아 확장'과 타인과 만나는 그 '지적교류'의 순간의 '역동'이 있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깨달았다.

(책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문인도 보통 문인이 아니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철학자'는 더더구나 아니었으며, 세련된 위트와 유머감각이 동시대적이었다. 그녀는 여유로웠고 걸음걸이는 경쾌했다. 적당히 세속과 타협할 줄 알았으며 '젠지' (Zen-Z) 힙스터이자, 이따금 시를 쓰고 재봉으로 손수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표현하는 그녀였다. 집안 자체는 독실한 불자라고 했다.

여성역량 강화 (Women's Empowerment)를 직접 체현한 진보적인 신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미학'을 느꼈다.

글과 언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확하고 힘 있는 speech of articulation으로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녀의 세미나실에서 내 눈과 귀를 비롯 모든 오감은 오직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의 목소리, 말속에는 한 폭의 꽃이 피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지성과 우아의 극치였다.


첫 수업 이후 나는 용기를 내어 수업 후 열리는 그녀의 오피스 아워에 매일 찾아갔다.

그녀는 수업 후 찾아온 나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


강의 때와 다르게 친절한 그녀의 모습에 긴장했던 나는 조금은 가까운 친밀감을 느꼈다. 이내 그녀는 한국 관련 페미니즘 연구에 몰두해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 주제의 영역은 포스트모더니즘,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퀴어 비평, 마르크시즘, 등등 온통 철학과 해석학을 넘나드는 심오한 것이었다. 특히 자신의 연구에는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 나혜석과 일제 치하 시대의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운동의 초석이 될만한 자료연구와 사료관 리서치에 집중하고 있다며 초국가 차원에서의 여성학의 계보와 기본 개념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한국인이었고, 부모님도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했으며,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했고 중서부에서 성장했다고 했다. 자신의 한국적 heirtage를 뛰어넘어 미국에 살지만 그녀는 European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정통 영어만을 구사했고 농후한 동부 엑센트와 웨스턴식 제스처 그 모든 것이 마치 앵글로 색슨의 후예로 태어난 동양의 학자인듯했다.



지레 짐작했듯이 상류층의 코스를 밟아왔던 이 여인은 엘리트였고, 영향력 있는 집안의 출신이었다.


마지막 페미니즘 수업이 끝나는 날에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 스스로 공부하고 나에 대해 탐구하지 않으면 top-management(dominant group) 에게 실험용 쥐처럼 연구만 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당하지 말고 살라고, 남들이 정해놓은 박스에 너를 끼워 넣으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식이 너의 인생의 궤도를 180' 바꿔줄 거야."


그러고는 몇 권의 영문 소설책을 쥐여준 그녀였다.


올 정초에 인스타로 그녀와 디엠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녀는 미국의 탑 스쿨에 최연소 조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만세!"


학, 석, 박, 박사 후 연구원까지 그녀의 열정적 탐구의 (academic endeavors) 여정 끝에 교수로 임용된 그녀는 '주체적 여성' 그 자체였다.


이 여인은 삶에 대한 새로운 길과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며 모두에게 지대한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나와 동갑인 그녀는 나와 사제로서의 관계를 맺고 나에게 새로운 비전을 갖게 했다. 고맙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그녀는 쑥스럽지만 나의 이상형이었다. 비록 고백은 못 하고 친구로 남았지만 그녀의 앞날의 늘 축복이 가득했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