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와이룰즈 Apr 10. 2018

잡지의 매력을 발견하다

발견(發見), 좋아지는 그 순간

가끔 관심 없던 것들이 관심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적어도 이번 생에선 좋아질 리가 없을거라 믿었던 것들이 좋아지는 그런 순간 말이죠. 예전에 인터넷에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빵과 우유의 조합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귀여운 고백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치킨에 맥주, 회에는 소주가 따라오듯 빵에는 우유를 먹는 것이 법칙 즈음으로 여겼던 저는 그걸 몰랐다는 말에 안타깝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빵만 먹는다는 것은 치킨에 물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잖아요. 아니면 맥주에 물 타 먹는 지저분한 기분이잖아요.



새로운 발견은 강렬한 충격으로 인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고 먼 길을 돌고 돌아 하나의 여정으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든 후자든 이러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저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됨에 시원한 쾌감을 느낍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하나의 낙입니다.




잡지의 이유를 발견하다

최근에 모리 준이치 감독의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쩜 그렇게 영화를 산뜻하면서도 그렇게 가볍지도 않게 표현을 했는지 감탄을 하며 봤습니다. 아마 한 일주일간은 자기 전에 꼬박 꼬박 챙겨봤던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았거든요. 아마 여기서 그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듯합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BRUTUS>와 <POPEYE>의 기획력을 발견하게 되는 여정 말입니다. 제가 다니는 미용실에 가면 보라며 항상 챙겨주던 잡지들인데 그때는 사진만 보며 대충 휙휙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왜냐면 제가 일본어를 모르니까요.


 

발견의 여정은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의 진가를 알게 해 준 것은 <리틀 포레스트>에서의 요리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의식 속에 잠들고 있던 요리 욕구가 솟아나더군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식욕을 자극하는 이 요리를 디렉팅한 곳이 어디일까' 라고 말이죠. 찾아보니 eatrip 이라는 곳입니다. 식당도 운영하고 있고 요리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더라구요. 요리 스튜디오라고 하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Oishi Notes'라는 이름의 요리 영상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영상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오로지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장면과 음식을 하다보면 나는 소리만 영상을 가득 채웁니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음에도 시각과 청각적 요소만으로 충분히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eatrip과 함께 이 영상을 만든 곳이 바로 BRUTUS였죠.

 *Oishi Note 영상이 꽤 많이 있었어요. 영상 하나 하나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가만히 두면 계속 연결되어서 재생됩니다. 넋 놓고 보시게 될 거예요.



언제 한번은 잡지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퍼블리의 디지털 콘텐츠 <팔리는 기획을 배우다 - 잡지 BRUTUS & POPEYE>를 읽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참 이름도 잘 짓습니다. '팔리는 기획'이라니요. 오로지 이 단어 조합에 혹해 분명히 좋아할 만한 콘텐츠일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죠. 분명 기획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일본어라곤 '스미마셍' 밖에 모르는 내가 일본 잡지 이야기를 봐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조금 읽다가 말았는데 ‘Oishi Notes’ 영상을 보고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미용실에서 건네주던 잡지 <POPEYE>. 뭔 말인지도 모른 채 그냥 느낌이 좋아 찍어뒀는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도대체

BRUTUS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 매력이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의외의 모습을 끌어낸다는 점입니다. 퍼블리 콘텐츠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브루타스 백화점' 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갖고 싶다'라는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한 기획이라고 하는데 잡지 서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곳은 굴지의 물품을 갖추고 있는 걸 자랑하는 특별한 백화점입니다. 모두가 동경하는 매장 스태프와 개성적인 손님들. 둘의 공통점은 물건을 고르는 경험이 풍부하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갖고 싶은 것을 발견해내는 데 달인입니다.

매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쇼핑의 파라다이스. 기본적인 것들은 충분히 갖추었지만 무언가 모자란다, 하지만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는 손님은 꼭 한 번 저희 브루타스 백화점을 방문해주십시오. 분명히 '갖고 싶다'는 마음의 확실한 이유를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 점주 올림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 - 잡지 BRUTUS & POPEYE> 중, 정재혁 - PUBLY



'갖고 싶다'는 마음의 확실한 이유 발견하기 위해 당장이라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백화점입니다.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을지, 내가 간다면 어떤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합니다.


이젠 정기적 시리즈로 자리잡은 '거주공간학'이라는 인테리어에 관한 기획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할만한 인테리어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집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말이 와 닿네요.


그저 등 따뜻하고 바람 잘 막아주는 건축으로서의 집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생각하는 집, 느끼는 집, 호흡하는 집으로서 우리의 집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BRUTUS가 이를 해냅니다.




우리나라에는

BRUTUS와 같은

잡지는 없을까?



하지만 일본어가 안 되니 우리나라 잡지를 읽을 수 밖에 없겠네요.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도 다양한 독립잡지들을 포함해 기존의 큰 잡지사들도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잡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잡지가 꺼려진 것은 쓸데 없이 과장되고 허세가 잔뜩한 말투뿐만 아니라, 평생 탈 것 같지도 않을 차의 사진과 화려한 스펙을 나열해 두고 도대체 누굴 위한 콘텐츠인지 의아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이 꼭 지금의 현실만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은 이상향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런 콘텐츠에서는 그 거리감이 너무 컸던 거죠. 제가 타겟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여의도 IFC몰에 새로 오픈한 '무인양품'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건축 자재 잡지 <GARM>



이제와 생각해 보면

잡지를 해석하는

눈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잡지 한 권 한 권은 만드는 사람들이 발로 뛰어 다니며 잡지 한 권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물이죠. 예전에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한 권의 잡지에 묶어 뒀는가', 즉 맥락을 파악하기보다 콘텐츠 하나 하나의 정보에만 집중하다보니 잡지의 재미를 느낄래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출판 스타트업 브랜드 북저널리즘은 이메일 뉴스레터 <Saturday Edition>을 통해 우승우 브랜드 컨설턴트와 잡지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잡지가 주는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잡지의 콘텐츠는 많고 많은 정보 가운데서 엄선된 정보들이다. 훈련된 에디터들의 시각과 해석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콘텐츠의 퀄리티가 높다. 형식면에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맥락을 파악하는 재미가 있다. 어떤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변화를 주는지를 볼 수 있다. 가장 큰 매력은 ‘뜬금없는 콘텐츠’다. 그 잡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절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이 나온다."

 <브랜드 컨설턴트 우승우, "디지털은 잡지다"> 인터뷰 중 - 북저널리즘



잡지도 좋은 내용이 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한번은 중국의 핀테크에 관련된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관심있던 분야는 아니었기에 중국의 무현금 결제 사회는 많이 놀라기도 했으며 꽤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후에 <GQ>의 중국 핀테크 관련 특집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많이 놀랐습니다


딱딱할 수도 있는 금융에 관한 정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나감으로써 그 속에 정보들이 꽉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잡지도 충분히 질적으로 높은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물론 제가 핀테크 생태계 대해 개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흥미롭게 느낀 부분이겠지만, 설령 그 내용에 익숙치 않더라도 중국이라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단순 정보들을 전해 주는 것보다 훨씬 세련됨을 느꼈습니다.



매거진 F - salt 편


최근엔 매거진 <F>를

구매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매거진 <B>배달의 민족이 함께 협업한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죠. 워낙 화제가 된 잡지이기도 하고 평소에 두 브랜드를 좋아하셨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거라 생각이 드네요.


저는 매거진 <B>의 팟캐스트에 나와 소장용이라는 김봉진 대표의 말에 얼떨결에 사 버렸습니다. 생산자부터 공급자, 쉐프, 그리고 소비자까지, 그들의 소금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좋은 소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이야기를 담은 ‘User Scene’이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저처럼 잡지에 관심이 없었다면 관심 분야의 잡지를 구매해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발견을 할지 모르잖아요. 앞으로 읽은 잡지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