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를 명료하게 목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모다. 몸은 어른인데, 친자녀를 학대하고, 폭언과 폭력을 쉽게 구사하는 사람은 영혼의 나이로 봤을 때 아직 달걀을 깨고 나오지 못한 잠들어 있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다.
상담을 많이 하면서 이런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우울증이나 자괴감, 자책이나 자해를 하면서 힘들어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부모는 육체적으로 어른일 뿐이다.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철없는 아이이며, 네가 부모다. 왜냐하면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요 너는 문제로 인지하였고, 그걸 해결하려고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영혼의 나이로는 네가 부모다."
이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이때부터 이들은 "아! 그렇구나! 부모가 정신적으로는 모르니까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구나!"하고 생각이 바뀐다. 그리고 네가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가 저따위야!'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그나마 가장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고 접근하도록 한다.
어차피 바뀌지 않는 것은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부모 탓, 환경 탓 또는 자책을 해봐야 아무 의미 없다. 그렇다면 있는 상황 가운데 가장 좋은 선택을 하면서 그 시간을 이겨낸다. 그때부터 조금은 더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부모에게 조금은 더 합리적이고, 예쁜 말이나 행동을 하므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해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부모의 경제적 보호를 받는 동안은 지혜롭게 자신을 지켜낸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자신의 시간이 오면 그때 독립하면 된다.
취업을 하고, 원룸이나 고시원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원리는 간단하다.
환경이나 상황, 사람을 바꿀 수 없는가?
지금 독립할 수 있다면 당장 독립하라!
독립할 수 없는가?
그러면 적응하라!
어떻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언행을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바꾸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이 오면 독립한다.
안 되는 것을 무조건 고치려고 하니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힘도 없고,
권력도 없고,
돈도 없으면서
자기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가능한 것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환경과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이다.
머리를 쓰고, 생각의 전환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바뀌지 않는 부모를 바꾸려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감정을 엄청나게 소모한다.
쓸데없는 짓이다.
나와 내 자녀에게만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가 이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서 살기 싫듯,
내 자녀 또한 나에게 그대로 원망할 것이다.
그런 대물림을 멈추려면,
내가 바꾸어 나가는 시도를 할 때 가능의 문은 열린다.
실제로 이렇게 바뀐 사례들이 너무 많다.
폭언과 짜증을 쏟아내는 스트레스 때문에 이불속에서 통화를 했던, 대학생이 지금은 독립하여 자기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또 '이놈의 회사 나가고 말아야지.' 하면서 사표를 서랍 속에 간직하고 다녔던 직장에서 지금은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는 청년도 있다.
엄마와 늘 대립적이면서 감정적으로 말싸움이 잦았던 딸이 어느 순간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은 짜증스럽게 하지?'라고 각성한 순간부터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엄마의 언어도 바뀌었다.
'밥 먹어라!'라고 소리 지르던 엄마가 어느 순간 '밥 먹을래?'라고 부드럽게 사용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 인간이 바뀌면 나도 행복할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서 나가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상대방이 천사가 되어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뀌면 첫 번째 내가 행복하다.
두 번째 상대방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세 번째 미래에 이룰 내 가족과 내 자녀들이 행복하게 된다.
우리가 조금만 더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지금을 탓하는 인간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다.
육체의 나이는 시간만 지나면 어른이 되지만,
영혼의 나이는 배우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철없는 아이로 살다 간다.
지금 '깨어 있으라'라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 속에 어떤 의도나 동기가 들어 있는지 인지하라는 말이다.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언행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의 상처를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의 말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다.
말은 그럴싸해도 내포된 의도는 부정적이게 되는 순간 상대방은 짜증과 분노가 일어난다.
그러나 인지하면서 말하는 사람은 조심성이 생기게 된다.
'이 말을 하면 상처가 되지 않을까?'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이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관계의 성숙을 만들어낸다.
'3초만 참고 말하라'는 뜻과 같은 의미다.
참을 인이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도 같다.
이러한 과정이 언어를 정화해서 전달하는 과정을 스스로 인지해서 전하기 때문에 사람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