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간의 행복은 진심이다.
"선생님은 사람들 만나는데 어떤 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시나요? 저는 사람을 만나는 데서는 행복을 모르겠어요."
어제 통화했던 사람의 질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적 소모로 인하여 지친 경우 대부분 이런 고민을 토로한다. 20~30대에 무수히 내적 갈등으로 인해 나 또한 저항했던 질문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순간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행동에 의해 스스로 내적인 대화를 무수히 하면서 어떤 식의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던 때의 자문이었으니깐.
하지만 어제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상대방이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행복을 느끼지. 어떤 대단한 대접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배려하는 진심을 볼 때 행복을 느껴. 물론 이것은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배려했을 때이지. 그런 배려를 알아주고 진심으로 표현할 때 그 행복은 무한해. 왜냐하면 나를 믿어주고, 신뢰가 쌓였다는 의미이니깐."
그렇다. 사람 간의 행복은 진심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내 친구와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친구는 시간 날 때 한 번씩 찾아와서 나에게 요리를 해준다.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닭볶음, 돼지고기 무찜 등 평상시 먹기 힘든 요리를 해준다. 들고 오기도 귀찮고, 굳이 해줄 필요도 없지만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마음을 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배려해 주는 친구가 고마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은 그 친구랑은 당구도 가끔 친다. 그런데 얼마 전 일이다. 당구공을 치려고 준비하다가 공을 아주 미세하게 건드렸나 보다. 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해서 몰랐는데, 친구가 건드렸다고 실토를 한다. 그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신뢰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평생 잊지 않는다. 소중한 추억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서로 이기려는 경쟁심만 너무 커서 상대방이 모르면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게임보다는 그 순간을 즐기고 누릴 줄 안다.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이 끝나면 그런 이야기는 치맥을 즐기면서 나누는 대화의 행복한 안주거리다. 이 친구와 정말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죽마고우처럼 평생을 함께 살아가면서 이런 예쁘게 느껴지는 사연들이 고마움으로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느끼고, 가치를 경험하는 것은 존재감이다. 스스로 갖는 자존감도 따지고 보면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나 존중감을 통하여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또 신뢰감이 쌓일 수 있는 배려를 통하여 충족되기도 한다. 아무리 혼자 자존감이 높고 성공하였을지라도 지구인 80억이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면 그 자존감은 의미가 없다. 그건 무인도에 혼자 사는 느낌과 같다. 지구가 모두 자기 것이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결국 인간은 인간과 함께 어울릴 때 그 가치를 발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소중한 관계들은 어느 정도 있어야 인간은 그 가치를 발한다.
그러므로 살아 있음의 존재감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진심이다. 내가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타인이 나를 향해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들이 서로 공유되고 있음을 발견할 때 우리들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당신으로 인해 이러이러한 고마움을 느꼈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고마운 추억이야! 그래서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한 번은 말해주고 싶었어!"
우리가 위와 같은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하겠는가? 그 사람은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존재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그냥 이대로 내 곁에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해! 살아 있는 존재만으로 나에겐 축복이며 선물이야!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
이와 같은 말은 가끔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또 이 말이 주는 의미도 몰랐다. 그리고 그 정도로 대단한 관계인지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저 말은 불러줌으로 살아 있는 매 순간을 의미 있게 한다. 아니 불러줄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 그리고 불러줄 때 그 느낌이 나타난다. 그제야 알았다. 왜 김춘수 시인이 사람을 꽃이라 불러줘야 한다고 했는지를.
불러줄 때 진심이 일어났고, 불러줄 때 상대방이 진심을 느꼈고, 불러줄 때 희망이 꺼져가던 사람에게도 희망이 살아남을 보았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들이 나를 또 그렇게 불러주었다.
"선생님이 곁에 살아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라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사랑을 먹고 살아간다. 사랑은 받아야 산다.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영혼이 고갈되어 피폐한 껍데기 육체만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주어야 받는다. 그것도 진심으로 주는 법을 통하여.
2025년 11월 2일(일) 윤 정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