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직업도, 정체성도 되는 나의 일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고민한다. 대충 넘기고 싶다면 “사회복지사요.”라고 답한다. 조금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말들은 충분하지 않다. 나는 사회복지사에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에도 완전히 들어맞는 직업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활동가는 맞는데, ‘상담 활동가’라고 설명하자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여성단체에서 일하고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여성폭력 피해자란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피해자의 성별이 압도적으로 여성이거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게 되는 폭력들을 의미한다. 지원에는 상담은 물론 법률, 의료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이 포함된다. 이쯤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두 가지씩 의문을 가진다. 그렇다면 내 직업은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어떤 이유로든 성매매 현장에 있었던 여성들을 만난다. 우리는 그들을 ‘언니’라고 부른다. 그 호칭은 여성에 대한 친밀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여성이 그동안 살아온 것과 살아남은 것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또, 자기 삶의 전문가라는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센터는 여성들이 업소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모든 형태의 피해를 지원하고, 성매매 업소를 그만두고 직업을 갖는 과정을 돕는다.
나의 일을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안전하지 않다’라는 느낌을 준다. 사회는 성매매 여성에게 대단히 많은 편견을 뒤집어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에요.”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상대방이 “그런 여자들을 왜 도와줘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가장해서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만난 언니들은 사회의 편견과는 달리 대부분 몹시 가난했고, 다양한 이유로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빼앗기며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편견은 언니들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내 직업까지도 납작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언니들의 입체적인 삶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자격을 얻지 못했으므로, 내 직업을 밝히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편견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피했다.
그동안 내가 두려움에 짓눌려 있는 동안, 언니들은 자신의 과거가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폭탄을 안고 자신의 일을 설명해야 했다. 언니들은 파트너나 친구, 심지어 원가족에게조차 성매매 경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센터에서 걸려 오는 전화 한 통, 홍보명함 한 장조차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언니들은 전화를 건다. ‘편안하게 자고 싶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지긋지긋했던 밤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 번쯤은 떳떳하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런 이유들로.
나의 역할은 언니들이 그 두려움과 의심의 빅데이터—‘쎄함’—을 뚫고 직접 센터에 오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진심을 시험하고, 나의 작은 비언어적 반응 하나에도 즉각 반응한다. 처음 센터에 와서 활동가들이 친절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식적이지?”, “대체 왜 성매매하는 여자들을 도와주는 거지? 사기 아니야?”라고 의심했던 언니들에게 나는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 말로 언니의 상황을 묻고, 가능한 어떤 지원이라도 연결하면서 센터라는 공간과 점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한 언니는 선불금 빚 문제로 상담소에 왔다. 지금도 업주들은 여전히 “그 여성이 사치스러워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언니들은 그 치욕스러운, 말도 안 되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보며 답을 해야 한다. 그 언니는 처음엔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빚을 갚아야 한다면 그냥 업소에 다시 가서 갚을게요.”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성매매 업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누구도 내 일상을 괴롭게 하는 걸 그냥 참고 싶지 않아요.” 그날 언니를 돌려보내고 내 심장은 한참 동안 멎을 듯 뛰었다. 두근거려서 잠도 설칠 만큼.
물론 문제를 해결한 뒤에도 언니들의 삶이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진로를 세우고,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낮과 밤을 구분하고,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되찾는다. 앞으로 어떤 태도로 세상을 만날 것인지를 고민한다. 언니들에게는 이전에 박탈당했던 모든 경우의 성장과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겪으며 ‘단기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마냥 착취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다시,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생각한다. 그동안의 내 대답들은 언니들이 지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한 변명 같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언니들이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함께 찾아가는 일을 한다. 그리고 언니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연결하려는 의도로 일한다. 나는 언니들의 조력자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두려움을 이겨내며 다시 ‘사람’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