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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y Little Brand Dec 01. 2021

비주얼 보다 강력한 텍스트 브랜딩

QUOTT(쿠오뜨)

이 글은 https://everylittlebrand.com에 게재된 글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




  브랜딩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멋진 브랜드=멋진 디자인'이라는 공식입니다. 물론 디자인은 브랜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죠. 브랜드 로고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SNS 채널을 운영하거나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 때에도 멋진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작은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곤 하죠. '나는 디자인을 못하는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멋진 디자인, 그러니까 브랜드의 '비주얼'이 브랜딩의 전부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때로는 간결한 텍스트만으로 멋진 브랜딩을 해낼 수도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하고픈 브랜드는 가구 브랜드 '쿠오뜨(QUOTT)'입니다.



비주얼보다 강한 텍스트의 힘

  쿠오뜨는 2021년에 론칭한, 아직은 시작 단계의 가구 브랜드입니다. 우드 소재로 북레스트, 매거진렉 등 작은 소품류의 가구들을 제작하고 있어요.쿠오뜨는 스스로의 브랜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뜻깊은 말이나 글귀를 인용하다 라는 ‘Quotation’ 단어의 뜻처럼,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나 공간이 새로운 의미로 인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브랜드 네이밍이 '인용하다'라는 단어에서 온 만큼, 쿠오뜨는 텍스트를 활용한 브랜딩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쿠오뜨에 디자이너가 없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닐 거예요. 스스로를 '현대 미술과 건축분야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창작자들로 이루어진' 브랜드로 소개하고 있고, 쿠오뜨의 프로덕트를 보아도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딩에 있어서 쿠오뜨는 텍스트에 보다 힘을 싣고 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카테고리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해요.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가구 브랜드들의 로고를 살펴볼까요? 대부분 네이밍을 영문 그대로 간결하게 쓴 로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흔한 심벌이나 고유의 컬러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디자인의 최전선에 있는 가구 브랜드들이 어째서 브랜딩은 이토록 심플한 텍스트로 하고 있는 걸까요? 저 역시 가구 회사의 브랜딩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고가 주로 사용되는 환경을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프로덕트의 디자인을 강조하는 게 더 중요한 만큼, 화려한 로고로 그 완결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심플하고 미니멀한 테이블에 화려한 모양과 컬러의 브랜드 로고가 붙어 있다면, 과연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브랜드는 '차별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죠.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구분할 수 있는 초등학생도 그 정도는 알 거예요. 하지만 그 차별화만 생각하다 보면 엉뚱한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종종 브랜드 비주얼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경쟁 브랜드를 모두 모아 놓고선 그들과 반드시 달라야 된다는 강박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프로덕트와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구 브랜드들과 같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비주얼은 가급적 힘을 빼고 텍스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텍스트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러면, 쿠오뜨의 브랜딩은 심플한 로고를 만드는 것으로 끝난 걸까요? 그렇다면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 여기서 글을 마쳐야겠네요...?! 하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제부터 입니다. 쿠오뜨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소개하는 과정에 있어서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합니다. 정확하게는 '문장'을 말이죠. '인용하다'라는 브랜드의 컨셉에 맞게 다양한 문장들을 인용해 그들의 프로덕트를 소개합니다.

  이를 테면, '북쉘프' 제품의 소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So many men, So many minds. '각양각색'이라는 의미의 'So many men, So many minds.'라는 말처럼, 우린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양하고 특별한 매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펜을 올려두는 펜트레이 제품은 또 이렇습니다.

  "East or West, Home is best. 당신이 늘 쓰는 펜,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필기구. 그들에게도 쉴 곳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옮기느라 수고해준 친구들에게 오늘 밤 편히 누일 곳을 마련해주세요."

  프로덕트를 설명하는 한 문장. 광고 카피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흔한 인용문이죠. 하지만 프로덕트에 대한 브랜드의 생각을 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쿠오뜨의 모든 프로덕트에는 이처럼 '한 문장'이 반드시 있습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쿠오뜨가 다른 가구 브랜드와 차별화하는데 이 문장들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브랜드들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가구와 같은 소규모 제조업종에선 더 그렇습니다. 직접 만든 제품이 조금만 인기를 끌어도, 금세 같은 소재와 디자인의 제품이 여러 브랜드(정확히는 스마트스토어)에서 쏟아져 나오곤 하죠.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브랜드들이 매출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브랜드의 잘 팔리는 제품을 쉽게 모방하기도 합니다. 작다고 해서 용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시장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디자인이 프로덕트의 핵심이지만, 그것으로 차별화가 어려운 상황. 그래서 쿠오뜨의 텍스트 브랜딩이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비록 한 두 줄의 문장이지만, 그것으로 이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제작한 브랜드의 생각과 의도를 느끼게끔 합니다. 만약 여러 브랜드의 프로덕트와 가격이 비슷비슷하다면? 저라면 브랜드의 가치가 더 느껴지는 쪽에서 구입할 것 같네요. 여러분은 어떠신지?


비록 단 한 문장이라도

  가구 브랜드, 정확히는 소품 브랜드 하나를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감각적인 소품 인테리어로 인기를 얻은 '슬로우어(slow.er)'라는 브랜드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이 브랜드를 아주 초창기부터 봐오고 있는데요, 저를 사로잡은 한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브랜드 오너가 잠원동 어느 빌라 지하 주차장 공간에서 작은 소품샵을 시작할 때부터, 이 문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브랜드 스테이트먼트'라고나 할까요. 이 문장은 브랜드 오너인 '오누리' 씨의 개인적인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을 그대로 담은 브랜드가 바로 슬로우어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더 느리게(slower)'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하네요. 오누리 씨는 소품 인테리어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품 가게 슬로우어에 있는 소품들은 모두 고민 끝에 구매한,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물건들이다. (중략) 내 눈이 닿는 곳에 내 손길이 닿은 것들로 채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선택이 바로 슬로우어다. 비록 느리고 답답할지언정, Slow.er라는 이름 그대로 천천히, 그게 나의 속도이다."

  작은 가구들은 아무래도 작업 시간에 오래 걸리는 것에 비해 이윤이 적게 남는다고 해요. 그리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소비자의 컴플레인도 늘어날 수 있고요. 하지만 슬로우어는 자신만의 신념을 여전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프로덕트 페이지에는 가장 먼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제작 시간이 소요되어 출시되는 상품도 있'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슬로우어의 소비자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고, 출시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광클'을 해 제품을 구입합니다. 아마, 슬로우어의 이 문장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이겠죠. '나는 그냥 천천히 갈게요.'




  디지털 시대의 브랜딩에서는 이미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좋은 디자이너들이 론칭한 멋진 브랜드들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못지않게 텍스트를 활용한 브랜딩도 충분히 그 역할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더 멋지기도 하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 아이디어가 있다면, 일단 글로 써 보자고요. 포토샵을 할 줄 몰라도, 로고를 그려줄 디자이너가 없어도. 우리에겐 텍스트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브랜드 인스타그램 : @_quott

*브랜드 웹사이트 : https://www.quott.kr

*이미지 출처 : 브랜드 인스타그램 계정 및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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