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슬릭과 비건에 관한 10문 10답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이자 래퍼인 슬릭 SLEEQ.
‘비장한 순두부'라는 별명과 달리, 슬릭이 직접 들려주는 비건 혹은 비거니즘(Veganism,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삶을 존중하고 착취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는 꽤 즐겁습니다. 1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초보 비건이지만, 함께 할수록 비건으로 살아가는 건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슬릭.
카카오프로젝트100 베타 시즌3에 ‘하루 한 끼 완전 채식에 도전하기' 프로젝트를 개설한 슬릭에게 비건에 관해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Q. Mnet 프로그램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에 출연하면서 얻은 별명, ‘비장한 순두부’는 마음에 드나요?
물론 마음에 듭니다. 재미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해요. 그 전에도 작고, 하얗고, 말랑거리는 별명이 많았어요. 닌텐도 게임 캐릭터 ‘커비’라거나, 애니메이션 호빵맨에 나오는 ‘메론빵맨'이라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번에는 순두부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귀여워해 주시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게다가 순두부는 비건이잖아요. 무해한 식품입니다.
(혹시 순두부도 좋아하세요?)
네! 저는 두부류는 다 좋아해요. 유부, 두부, 순두부, 연두부…
Q. 비건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건을 처음 접한 건 2017년인가, 2018년 초였어요. 제 주변에 팬 분이나 지인들이 “비거니즘 공부해서 비건이 될 거야”라고 종종 말했거든요. 그때는 “그렇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018년 말에 한 블로그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영양학자가 하는 채식 관련 블로그였는데요. 보통 비건, 채식이라고 하면 영양학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블로그를 개설했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때 처음, 내가 아는 것과 '다르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 후에 비건 관련 다큐멘터리나 책을 많이 찾아서 봤어요. 알고 나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실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비건으로 살고 있습니다.
알고 나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실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비건으로 살고 있습니다.
Q. 비건도 일상이고 삶의 한 부분인 만큼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저를 소개할 때 ‘포스트모던 서울 파워 정크 비건’이라고 해요. 되게 멋있죠?(웃음) 이 단어들의 조합에는 비건에 대한 편견, 가령 채식주의자들은 너무 진지하다, 힘이 약하다, 건강을 위한 것이다와 같은 오해들을 부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어요.
실제로 저는 건강을 위해 비건을 하는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것이 비건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Q. 비건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그중 가장 크게 느끼는 비거니즘에 대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누군가 “채식을 한다”, “비건이다”라고 말할 때 마치 나의 식습관이 공격받는다는 느낌, 혹은 도덕적으로 나쁘게 낙인찍는 듯한 느낌을 가지거든요. 저도 비건이 되기 전, 주변에서 비거니즘을 이야기할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또 비거니즘을 전파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비거니즘은 신념 같은 거니까 당연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만, 누구도 한 개인의 신념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한국에는 육식에 대한 신화가 여전히 크게 남아 있고, 비건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신화 뒤에 존재하는 어떤 불편한 문제나 진실을 말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이를 비난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채식을 시작하고 저도 초반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비거니즘을 공부하든 하지 않든 채식을 실천하는 행위 자체를 무척 가벼운 결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는 거잖아요. 또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기보다는 ‘나는 내 길을 간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 나온 싱글 앨범인 ‘걸어가(Go So Hard)'에 “더 나은 길로 걸어가 / 더 나의 길로 걸어가"라는 가사와도 닿아있는 거 같아요.)
제가 원래 남 눈치를 되게 잘 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페미니즘, 비거니즘 하면서부터는 남 눈치를 볼수록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삶보다는 나 스스로 더 나은 길을 찾고, 나나 잘하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멀리 봐
SLEEQ GO VEGAN GO SO HARD
SLEEQ 걸리버 GO SO LOUD
빗발치던 NOISE GO DOWN
Peace go with us 더 멀리 봐
Peace go with us go so hard
더 나은 길로 걸어가
더 나의 길로 걸어가
더 많은 너를 위해
슬릭, '걸어가(Go So Hard)' 중
Q. 비건을 시작한 뒤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굉장히 잘 먹는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논 비건일 때는 먹는 일에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남들이 먹는 것을 그냥 같이 먹거나, 끼니를 잘 챙기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비건이 되니까 먹는 일이 너무 중요한 일이 된 거예요. 잘 챙겨 먹게 되었어요. 또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죠.
Q. 막 비건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들리는 말이네요. 비건이 되려는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면 좋을까요?
공교육에서 채식이나 비건을 전혀 배우지 않기 때문에, 비건이 되려고 하는 순간 일단 그동안 먹던 음식이 모두 육식주의라는 것을 알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먹었는지 따져보게 되죠. 저는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먹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나의 식탁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요. 내가 먹는 것에 대한 앎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비건의 출발선입니다.
그리고 비거니즘은 혼자보다는 두 명, 두 명보다는 네 명이 하면 더 쉬워요. 몇십 년 동안 이어진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 않잖아요. 머리로는 옳다고 생각해도 습관은 행동의 문제니까요. 쉽게 무너질 수 있고, 고민할 수 있고, 망설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곁에서 “우린, 비건이잖아"라고만 해줘도 “맞아!”라고 맞장구치면서 함께 할 수 있고, “채식만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 같이 잘해보자"이렇게 대꾸하면서 힘이 나거든요.
Q. 지속 가능한 비건 라이프를 위해 좋은 습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리긴 했지만 지금 내가 뭘 먹고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요. 성분표를 본다거나 식품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처럼 오늘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길게 채식을 이어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처음 시작할 때는 어쩌다 보니 채식을 까먹을 수도 있고, 상황상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실패한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억하고, 다음에는 채식으로 먹을 방법을 찾아보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습관입니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비건식이나 비건 식품이 있다면?
저 역시 평범한 한국인으로 채소를 무척 싫어해요. 급식 문화 때문인지 지금도 생야채, 샐러드 엄청 싫어합니다. 하지만 비건을 시작하고 너무너무 좋아하게 된 식재료가 바로 버섯이에요.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다양하고요. 버섯의 그 미묘한 맛이 있는데, 이걸 느끼려면 양념이 없고 다른 식재료가 없을 때 더 맛있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버섯을 탐구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제가 버섯 중에 만만한 새송이 버섯을 좋아하는데요. 생으로도 먹고, 쪄서도 먹고, 튀기고, 구워서도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게다가 매우 싼 식재료예요. 인증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웃음)
Q. 비건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는 운이 좋아 비건이 되었지만, 지금 세상에서 ‘비건'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신념으로 여기는데 현실적인 벽이 많다고 생각해요. '왜 나는 비건이 되려고 할까'라는 의문을 품으면 너무 아득하고 패배감이 들 수도 있어요. 질문을 바꿔서 '왜 비건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품으면 좀 더 용기 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비건이었던 분들,
또 비건을 시작하기로 한 분들,
100일 프로젝트에서 함께 만나
같이 도전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