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조정의 신호탄
1.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오늘 3월 2일 월요일, 오전 11시 31분. 총장으로부터 전체 직원에게 메시지가 왔다. 결론은 "오늘 오후 5시전까지 인사팀으로부터 메일을 받는 자는 구조 조정 대상"이라는 거다.
이미 결정은 내려졌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이제 통보만 남은 상태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있는 것처럼 실감이 안 가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이다. 당장 1시에 팀 미팅이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미팅을 계속 진행하는게 맞나 싶다. 더군다나 내 직속 보스는 오늘 휴가다. 아이들과 스키여행을 간다고 했다. 미리 알고 후폭풍 방지 차원에서 적당히 자리를 비운건지 정말 모르고 순수하게 휴가 간 건지 모를 일이다.
2.
여기서 시나리오는 이 정도로 예측해 볼 수 있겠다.
내 직속 보스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오늘 자리를 피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팀원 중 누군가는 (나를 포함) 조정 대상일 것이다. 이 리스트 작성에는 보스가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 직속 보스도 몰랐고 오늘 휴가 간 것은 우연이다. 팀 전체가 조정 대상일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우리 팀 보스는 계속 안 보인다. 팀 미팅에도 안 나오고. 어쩌면 팀 보스만 대상일 수도? 아니다. 팀 보스가 대상이라면 그와 함께 그의 팀인 우리도 모두 도려낼 것이다.
3.
어제 받은 교회 중보기도 책자에 북한의 기도제목은 러시아로 파병가는 북한의 가난한 젊은이들에 관한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가난과 고통, 생사를 놓고 울부짖고 기도하는데 나는 지금 고작 구조 조정으로 인해 불나방처럼 부화뇌동하고 있다. 스스로 작고 보잘 것 없이 느껴지고 한 없이 가볍고 천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
오늘 오후 다섯 시 전까지 내가 메일을 받게 된다면 나는 일단 좀 쉬고 싶다. 그리고 맛있는 것 먹으러 바다 근처로 갈 것이다. (매운 거 먹고, 아주 단 디저트 먹어야지) 그리고 그 동안 물 만난 물고기처럼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글을 쓸 것이다. 동료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글로 전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학원 학업 마무리에 집중할 것이다. 달리기도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짐에도 가서 근육도 챙기고. 그리고 아이들과 여행도 가고 싶다. 섬으로 가고 싶다. 요즘 계속 체력이 딸리고 감정 조절도 힘든데 일단 좀 푹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