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외로 나선 계기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해외 생활 10년 차,


내가 처음 해외에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한창 동네 근처 사회복지센터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방과 후 학습 지도와 멘토링 프로그램 같은 봉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경영 관련 전공을 했고 그쪽 분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저 누군가를 돕는 일이 좋았다. 그 안에서 보람을 얻을 수 있었기에. 어릴 적 엄마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우셨기에 여유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고, 그래서인지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알바와 공부로 인해 바쁘더라도, 기회가 날 때마다 근처 사회복지기관들에서 봉사를 했다. 가끔은 봉사자가 많아 대기를 서야 할 때도 있었는데, 도우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라고 느꼈다.


당시 나는 해외 아동 결연 후원도 하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이 후원금만큼은 꼭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나의 관심은 점점 해외 아동을 돕는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넓어졌다.


내가 후원하던 NGO는 매년 해외아동 사업 관련 연차보고서를 보내주었는데,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읽을 때마다 감명 깊었고, 동시에 “정말 이렇게 좋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함께 현장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면서 막연히,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나도 이런 일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 실행으로 옮길 방법도 용기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회복지관 게시판에서 해외봉사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 프로그램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운영하는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으로, 한국 봉사자들을 해외 우리나라 NGO에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라 더 눈길이 갔고, 자세히 알아보니 대학 입학 이후 줄곧 후원해 온 NGO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때, 새로운 기회가 내게 손을 내민 듯했다.


물론 낯선 나라에서 1년간 혼자 지낸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돌아와서 또래보다 1년 늦게 취업을 한다는 것이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보다 설렘과 기대가 더 컸다. 1년 늦더라도, 삶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 가서 이 일을 정말 좋아하게 된다면, 이 경험을 토대로 이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한 번쯤 겪어볼 만한 값진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해외봉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해외봉사 지원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해외 봉사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지원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지원 동기를 여러 번 고쳐 쓰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였고, 개인·다대다·영어 면접까지 취업 준비를 하듯 열심히 준비했다. 청주에서 서울 NGO 사무실까지 가서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합격을 간절히 바라며 창밖을 바라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내가 후원하던 NGO를 통해 캄보디아 파견이 결정된 것이다. 후원하던 아이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파견 전에는 며칠간 해외봉사자의 윤리와 행동지침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캄보디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좋은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나누고자 한다.


그때 해외를 떠난 후, 35살이 된 지금까지 해외를 오가며 일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결정이 내 인생에서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다음편: 캄보디아, 해외 봉사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