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오비탈(Orbital)

by 블라이

사만다 하비의 소설 『오비탈(Orbital)』은 2024년 부커상이 선택한 책 중 하나로 짧지만 새로운 영감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이라는 금속 상자에 몸을 싣고 지구를 하루에 16번 회전하는 6명 우주 비행사들의 짧고도 긴 하루를 다룬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행성의 찬란함을 가먼 곳에서 목격한다면 어떨까?




우주선 안에는 영국 출신의 넬, 미국인 숀,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일본의 치에, 그리고 러시아 코스모노트인 로만과 안톤이 머문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지구를 떠나왔다. 누군가는 과학적 탐구심에 이끌려, 누군가는 조국에 대한 의무감으로, 또 누군가는 지상에서의 삶보다 더 큰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이들이 ISS에서 수행하는 일과는 지극히 기계적이고 촘촘하다. 그리니치 표준시(GMT)에 맞춰 정교한 실험을 수행하고, 태양전지판을 점검하며, 무중력 상태에서 급격히 빠져나가는 근육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


우주 비행사의 삶은 경이롭지만 동시에 가혹하다. 폐쇄된 공간의 공기는 늘 인공적이고, 금속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진공의 공포와 맞서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고단함을 상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창밖의 풍경이다. 90분마다 반복되는 궤도 위에서 그들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국경 없는 하나의 집으로 인식하는 선택받은 자들만의 특권인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를 누린다.



그러나 차가운 금속 벽 안의 내면은 무중력의 선실보다 훨씬 복잡하게 흔들린다. 일본인 비행사 치에는 최근 어머니의 부고를 대기권 밖에서 접했다. 궤도를 따라 지구를 돌며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써 현실 너머로 유예한다. 도저히 실감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저 멀리 지구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을 것만 같다. 어머니가 남긴 기억들은 선실 안에서 그녀의 몸과 함께 떠다니고, 상실의 고통마저 우주 공간에서는 잠시 멈춰 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류의 한계를 돌파하는 영웅이라 칭송받을지언정 그 대가는 가혹하다.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는 것 또한 비행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고뇌와 외로움을 다룬다.


비행사들이 목격하는 지구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별에는 보석같이 찬란하고 장엄한 자연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상처 입은 민낯이 드러난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이 긁어놓은 행성의 상처를 목격한다. 대륙을 뒤덮는 산불의 연기 기둥, 핏줄처럼 말라가는 강줄기, 빠르게 녹아 내리는 빙하의 모습까지. 인류는 이미 주어진 낙원을 황폐화하면서도, 우주 탐사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행성을 찾아 헤맨다. 그 탐험의 목적조차 결국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함이 크다. 작가는 비행사들의 시선을 빌려 묻는다. 우리는 왜 이토록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등진 채,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소유권을 주장하려 애쓰는가.


16번의 궤도를 도는 동안 비행사들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천재지변 역시 목격한다. 쏟아지는 폭우와 거대한 대륙을 집어삼키는 허리케인. 그 아래서 삶의 터전을 잃고 힘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우주선이라는 유리 돔 안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의 재앙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멀고 고요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마을을 휩쓰는 폭풍도 멀리 서는 그저 부드러운 구름의 움직임처럼 간접적으로만 느껴진다. 우주비행사들은 그저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책은 지구의 아름다움을 넘어, 우주의 황홀함에 대해서도 묘사하는데, 소설의 맨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작가는 성경의 창세기 구절인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를 소환한다. 이는 우주 비행선 밖에서 목격하는 아름답고 신비한 우주의 빛의 합창을 향한 최고의 감탄사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의 빛이 지구의 곡선을 따라 번져나가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그 광경이 마치 세상이 처음 만들어지던 순간의 목격자가 된 듯한 경외감을 느낀다. 매 순간 수조 개의 별들이 어우러져 내는 찬란한 빛의 합창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게 된다.




요새 작은 일에 자꾸 신경 쓰고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내 삶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에 우주를 배경으로 한 짧은 소설을 골라 들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비행선에서 저 멀리 점처럼 작디작은 나라는 존재를 바라본다면, 아마 이런 조언을 건네지 않을까. 찰나와 같은 짧은 생에서 왜 그리 많은 것을 번뇌하며 사느냐고, 정말 중요한 것에만 마음을 쏟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인데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저 멀리서 작게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삶에서 겪는 고통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구름의 소용돌이일 뿐인 폭풍도, 막상 그 안에 있는 이에게는 삶과 목숨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압도적인 재난이다. 거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히며 아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때로 무기력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거센 바람이 불 때는 그저 지나가는 대로 맞으며,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면 그뿐이다. 폭풍이 아직 당도하지 않은 평온한 오늘,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본다.


오늘은 조금 덜 고민하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며 보내고 싶다. 평온할 때든 재난이 닥칠 때든, 그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조금 멀리서 내 삶과 지구를 바라보며 새로운 시각을 갖고 싶은 분들, 그리고 철학적이면서도 따스한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