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카운슬러가 되리라 마음먹다

부동산 어린이가 공인중개사가 되리라 다짐한 날의 기록

by 인생여행자 정연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행하기에 오늘처럼 좋은 날이 없을 것이다. 어제 만 16주년 결혼기념일을 보냈고 오늘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17년째 살아가는 첫 번째 날을 맞이 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꽤 오랜 시간을 보내오면서 마주했던 여러 삶의 과제들 가운데 유독 어깨를 무겁게 했던 건 부동산과 관련된 숙제였다. 17년 전 여름날 회사 근처 전셋집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원룸형 아파트가 그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좁긴 했지만 회사에서 멀지 않았고 나름 신축이고 깔끔해서 신혼부부가 살기에는 꽤나 좋은 집이었다. 스무 명 가까운 회사 팀원들 집들이를 해낸 불후의 장소로도 기억된다.




돌이켜보면 부동산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는 ‘실거주 목적의 주택 마련’이란 과제를 꽤 오랫동안 미뤄오기만 했다. 당장 살 집을 전세로 마련하고 나면 그 이후로 2년 동안은 그 주제에 대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한달살이, 하루살이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크게 없었지만, 올려줘야 할 전세보증금을 생각하거나 집을 마련하려면 필요한 돈의 규모를 떠올릴 때 어떤 절망감 같은 게 엄습하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어떤 물건을 찾아본다는 행위가 일정의 투기 행위처럼 여겨졌던 잘못된 경제관도 한몫했던 것 같다. 성실하게 땀을 흘려 일한 대가만이 정당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시세차익을 얻는 행위는 불로소득이라는 어떤 관념에 사로잡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경제와 경영을 학문으로만 배웠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했고 일상생활에 연결하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


면밀히 따져볼 때 요즘 ‘투자’라고 불리는 행위를 떠나서, 단순하게 ‘내 집 마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땅에서 내가, 나의 가족이 머물 공간을 소유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고도 절박한 것이었는데, 애써 외면하고 회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직면하지 않았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고해성사에도 불구하고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고민의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언제 그랬더냐 식으로 까맣게 이 과제를 잊고 살곤 했던 나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급격하게 상승하는 전세보증금을 채우려고 은행을 찾아 대출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대립적 관계’라는 어느 사회시간에 배웠던 개념이 떠올랐다. 나름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일상생활 속에서 경제적 압박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지만 결국 나는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무산계급’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너무 무겁고 마주하기 싫은 문장들이긴 하지만 그때 나는 그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날로 커져가는 아이가 학교에서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가며 성장하면서 학교 친구들과 학원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 동네에 안착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써서 지켜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물러나야 할 순간이 찾아와서 아이의 이 관계들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어쩌면 무산계급이라는 정치경제적 개념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느껴졌던 게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십 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철이 든 건가 싶기도 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머물 거주의 안정성이 확보된 공간 마련’이 내게 절실히 시급해졌다.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여러 부동산 강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동산의 ‘부’자도 몰랐기 때문에 청약부터 시작해서 경공매, 토지, 리츠(REITs)까지 종합 선물세트로 다루는 각 분야 전문가들 강의 패키지를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현재의 내가 도전해보기에 가장 나은 ‘내 집 마련’ 방법으로 청약을 선택했고, 그 이후로는 청약 관련 강의를 중심으로 들으며 청약 시장에 깊은 관심을 두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해 가을 결혼했던 나는 청약통장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돌이켜보면 큰 집은 아니었지만 성장과정에서 늘 유주택자의 자녀로 살아왔고 한 지역에서 심지어 같은 집에서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거주의 불안정성에 휘둘려 이사를 하거나 전학을 한 경험이 전혀 없던 내게 ‘내 집 마련’은 자연스럽게 관심 밖의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동산 일자무식인 나를 설득해 청약통장을 만들게 했던 건 아내다. 나름 상경계열을 전공한 나보다 이공계열을 공부한 아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는 더 관심도 많았고 노력도 꽤 많이 해왔다. 나중에 알 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내 분야의 직무 전문가가 되겠다고 늘 자기 계발에 몰두했던 그 시간에 아내는 이미 청약이나 경공매까지도 밑줄 쫙쫙 치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 탓에 그 불씨를 활활 태우며 실행해보지 못하고 멈췄던 게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이내 아쉽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의 거주 공간의 안정성 확보’라는 대명제를 마음에 품고 부동산 탐험의 첫발을 뗐다. 그 시작점은 ‘내 집 마련’이었고 첫 번째로 택한 길은 ‘청약’이었다. 청약의 여정만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한참의 시간과 지면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청약 자체 보다도 새로운 꿈을 품은 게 더 중요해졌다. 내가 일해온 분야에서의 경력개발에만 오로지 관심을 갖고 삶의 중요한 다른 한 기둥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 갖지 않았던 십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얻는 작은 깨달음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더 나아가 한 분야의 업을 오랜 시간 해오다가 자신의 일의 범위를 확장, 전환하고자 하는 분들과 나의 여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리버리했던 부동산 어린이가 ‘삶의 기반을 지지하는 공간을 매개로 카운슬링하는 사람(스페이스 카운슬러)’이 되고자 이렇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독자분들 앞에서 선언해요. 여러분들의 응원과 관심이 제 새로운 꿈에 한 걸음 다가가는데 큰 힘이 되리라 확신해요. 저 역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해온 독자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이 글을 기록하고 나눕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셀프 인터뷰로 기록한 글]


내 삶의 시즌 2


17년간 대기업 인사/교육 담당으로 일해 오면서, 꽤 오랜 시간 ‘HR Professional’이 제 경력의 유일한 목표이기도 한 시절이 있었어요. 인사, 교육, 조직문화 업무가 참 좋았고 제게도 잘 맞았을뿐더러 보람도 많이 느꼈거든요. 그러다가 글을 쓰고 성찰적 사고를 깊이 하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천직이라고 믿었던 이 일 외에도 관심 가고 하고 싶고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커리어 카운슬링’이에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메인 직무와도 직접적인 연계가 있는 일이기도 하죠. 지난 십여 년 HR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이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고 응원하면서 커리어 코칭을 할 때였거든요.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인과 지인 추천인들을 코칭하고 커리어 카운슬링하면서 ‘타자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의미와 재미를 느끼는구나 발견하게 되었죠. 최인철 교수님 말씀대로 의미와 재미가 만나는 지점에 행복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고 할까요? :)


다음으로 도전하고 있는 활동은 ‘요가’ 예요. 보통 이삼십 대 여성들이 몸매 관리를 위해 하는 운동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요가를, 40대 기혼 남성이 회사원으로 살아가면서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았죠. 기존 인식과 주변 시선을 딛고 일어서서, 7년 차 요가 수련자로 살아가면서 요가 매트 위에서 만나는 경험과 감정이 삶의 그것과 참 닮아있고 요가 수련을 통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구나 경험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안내자의 삶 역시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방점을 두고 준비하고 있는 일은 ‘공간 중개자’ 예요. 좀 더 명확하게는 ‘삶의 기반을 지지하는 공간을 매개로 카운슬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엔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라는 업이 언젠가부터 가깝게 느껴졌어요. 이 사진을 찍고 마음에서 다시 새겨보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저로 이어지는 ‘삼대의 가업’이란 걸로도 연결해볼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중개사 역할에 충실하셨다면, 아버지는 사업을 하면서 중개사 자격 취득을 하시고 부동산학 석사과정까지 진학하셔서 부동산 개발사업까지 추진하시면서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가셨죠. 저는 거기에 반 걸음 더한다는 느낌으로 ‘공간을 매개로 카운슬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개인의 삶의 영역으로서의 공간과 사회적 활동의 영역으로서의 공간이 우리 모두에게는 꼭 필요한 필수재잖아요. 그 중요한 재화를 둘러싼 삶의 고민이 조금씩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있죠. 그 지점을 어루만지며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카운슬러가 되고 싶어요.


커리어 카운슬러, 요가 안내자, 공간 매개 카운슬러, 어떻게 보면 각기 다른 직업 같지만, 삶을 깊이 바라보고 타자의 삶에 도움을 주며 함께 성장하고 싶은 바람 측면에선 모두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 일들을 글 쓰는 사람,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란 그릇 안에 함께 담아내고 싶은 바람도 크죠. 그래서 이렇게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나 봐요. (웃음)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 부동산 중개사를 꿈꾸며, ‘스페이스 카운슬러’가 되리라 마음 먹었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