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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우 Oct 20. 2019

'차별', 차별인가, 차별인가?

차별의 집합, 이력서


차별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힘이 담겨있다. 첫째는, 다르기에 두드러진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남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두어 나를 부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차별의 두 번째 의미는 다르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한다. 기업에 지원할 때, 그들이 요구하는 이력서에서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사안에 대해 지극히 차별의 요소가 몇 가지 보이는 듯한 요소를 발견했다.


군필자 우대합니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의 대표 격으로는 성차별이 있다. 채용공고를 보다 보면 군필자 우대라는 말을 본 기억이 있다. 이는 대놓고 성차별을 할 수는 없으니까 여성이 아닌 남성이 눈치껏 지원하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은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암구호 같은 것이다.


여전히 지구에서는 성별에 따른 상식 밖의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투표권을 주지 않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 다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시험 점수를 조작하여 일부러 특정 성별의 지원자들을 붙게 하는 등 채용 관련 기사가 난 것을 보면 아직도 그것과 관련된 의식이 얼마나 하등 한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녀, 서로 희생한다


이는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다. 자란 환경이 다른 것은 고사하고 성별이 다른 것에 따라 이성이 지지 않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는 이 시대에 너무나도 많다. 남자나 여자나 한쪽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그건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건 결론이 절대 날 수 없는 문제다. 


여자도 여자니까, 남자도 남자니까 받는 혜택도 있고 불이익이 있는 것이다. 어떤 성별이 더 피해를 많이 본다고 겨루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서로의 피해를 공감하고 미래를 위해 나아갈 생각을 해야 우리가 바라는 평등을 추구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선천적으로 다른 존재다. 이 둘을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김새가 내 취향이 아닌데?


외적 차별의 시작점은 얼굴이다. 과거에 표준이력서라고 불리는 차별 이력서에는 사진을 부착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사진 하나를 잘 나오게 하기 위해 각종 공을 들이는 취업준비생들도 많다. 주객전도된 상황인 것이다. 차별주의자들은 성별에 대한 차별이 끝나면 누가 더 예쁜가, 잘생겼는가를 본다. 그 기준에 대해 스스로만 가지고 있든지 한다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공적인 부분에 외모를 차별의 요소로써 이용하게 되면 더 이상 취향이라는 개인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취업을 위해 성형까지 고려한다는 친구들도 있는 것을 보면, 쉽게 넘길만한 문제라고 여기기는 감히 어렵다. 사람은 인상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이는 사실이고 기업에서도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차, 2차 산업군과 4차 산업군은 외모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진을 요구한다.


옷이라도 한 벌 맞춰주려고?


사진 이외에도 외적 차별점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 바로 키와 몸무게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항목은 사람의 자존심을 건들기에 아주 적절한 요소가 된다.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는 10대 때부터 키와 몸무게에 대한 것은 사람에 따라 매우 예민하다. 도대체 이 사항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옷이라도 한 벌 맞춰주려고?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본래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드러내려는 성향이 있다.  이력서에는 배경과 같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을 넣는 곳도 있다. 바로 가족관계와 직위, 연봉, 직업 등을 기입하는 것이다. 주거형태까지. 자신이 있다면 당연히 해당 사항에 대해 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해 자신이 있으니까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다닌다. 반면 자신 없는 친구는 마음에 삭힐 뿐이다. 그건 내 탓이 아닌데. 학교에 다닐 때도 이런 비슷한 것을 적어 제출할 때가 해마다 있었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별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아무래도 어렸으니까. 


가족이 고위급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면 다르고 두 부모가 없는 천애 고독이면 다르게 대할 심산인 건가? 촌지나 받아먹던 과거 세대에 대한 잘못을 부디 되풀이하지 말자. 이러한 가족관계 사항을 넣어야 하는 이력서를 보면 심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저 애들하고는 놀지 마


의식주 중에서 '주'에 대한 부분은 현시대에 들어 부를 짐작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부모가 어떤 직업이냐에 따라 자연스레 이 부분 또한 어림짐작 가능하다. 아이들은 고급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않는 친구를 차별한다. 다 어디에서 나온 것들인가? 아이들에게 그딴 것이나 가르치고 다니는 일부 부모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자신들이 정말 어른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가?


주거에 대한 부분은 부를 짐작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다른 것 못지않게 정말 예민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회사에서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에 대한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다. 만약 내가 지원하는 기업에 주거형태를 물어보는 문항이 있다면, 난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몇 살이세요?

 

새해가 되면 모두 한 살이 더 먹는 이 세상 방식이 아닌 것 같은 셈법과 한국어가 지닌 존댓말, 그리고 한 살이라도 많으면 윗사람 행세를 하려 드는 서열문화는 나이의 대한 차별을 만들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무슨 상관일까, 일을 못하나? 업무효율이 떨어지나? 아, 서열문화에 충돌이 생기기 때문이구나! 기업에서는 나이 서열 이외에 연공서열이 있으니까. 하나가 충돌이 생겨 문제가 발생한다면, 없애면 그만이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나이 서열에 대한 서열문화를 없애는 것이 좋다. 나이는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존중의 의미다. 나이가 적다면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을 존중하는, 존댓말이란 것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영어에는 격식 표현과 그렇지 않은 표현이 있지만, 한국어와 존댓말처럼 명확히 구분 지어 말하지는 않는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갔을 때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나이의 여부를 알아야 할 때는 전혀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어의 반말 존댓말 특성이 서열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사람을 만나면 나이를 묻고 서열을 정리하려는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일에는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업에 필요한 인력이고 그것을 해낼 능력이 있다면 기꺼이 채용하면 된다.


대학 어디 다니세요?


학력은 '스스로 통제 가능한 요소' 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스스로 통제 불가능한 요소'이기도 하다. 학력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나뉜다. 학력이 아닌 오직 실무적 능력만 보는 블라인드 테스트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학벌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치는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대학 입학에 있어 사교육을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 그리고 부모가 챙겨주는 사람과 스스로 챙겨야 하는 사람, 인맥으로 스펙을 채우는 사람과 인맥은커녕 부모님도 건사하기 힘든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학력은 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학력은 마음먹고 공부하고 다시금 도전하기만 한다면 다시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사항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대학의 입학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단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늦게 대학에 입학하거나 편입을 하게 되면 그다지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스스로 학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나이를 먹었더라도 일을 하면서도 편입을 하든 대학원에 입학하든 할 수 있다. 부모가 학력을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요즘 시대에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지!


우리나라는 학력을 너무 중요시하기 때문에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이 집중되어 있고, 빈부의 차이에 따라 교육의 질이 현저히 차이 난다. 그래서 학력을 차별의 한 요소로서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 국가에서는 그렇게 권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이란 공부할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라, 일단 졸업장은 따야 하는, 공부에 관심이 없더라도 가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대학을 가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대학을 진학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대학을 나왔냐가 관건이 되었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일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위권에 있는 대학 출신이라도 잘하는 사람은 있다. 대학의 간판이 그 사람의 직무 능력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뽑고 보니 상위권 대학 출신이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상위권 대학에 속했던 사람들이 하는 공부의 수준, 인적 네트워크 등이 차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대학의 간판만을 채용의 요소로 삼으면 예외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가 된다. 학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요소로써의 비중이 커질 때, 점차 사교육 시장은 커지고 빈부격차에 의한 교육의 질 차이는 심해질 것이며 저소득층이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약 도약 시도를 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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