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부족한 것인가? 단지, 신기루인 것인가?
코로나19,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 지난 몇 년 간 의료와 관련된 여럿 문제가 우리나라 사회에 나타났다. 그 결과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는 현재, 미래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시도는 과거에도 한 차례 있었으나 물거품 된 바 있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의 근거로는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수요의 증가, ②의료의 질적 향상, ③선진 OECD 국가의 의사가 환자를 대응하는 비중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제시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으로는 현재 ⓛ높은 평균수명, 낮은 영아사망률과 같은 지표를 근거로 대한민국은 타 국가에 비해서 의료선진국으로서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고, ②우리나라의 인구는 저출생으로 인해 감소하고 있으므로 실버 의료를 제외한 기타 의료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즉, 대한민국의 인구가 앞으로도 추세적으로 하락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실질적인 의료수요는 감소하는 한편, 현재 청소년과 젊은 세대가 창출하는 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미래에는 실버로 이전되는 것일 뿐이므로 의대정원 확대의 필요성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대정원 확대를 강행하고자 했으며 의료의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의사와는 협의 없이 진행했다는 것에 분개하여 의대생들은 휴학을, 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는 사직이라는 수로 맞대응했다. 이에 대형병원에서는 중대한 질병에 대한 수술을 못 받는 환자가 증가하는 등 의료대란이 발생, 정부와 의사의 싸움이 이 싸움과는 전혀 관계없는 환자와 일반 국민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건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보고 자기 밥그릇 줄어들을까 두려운, 사명감보다 자본주의에 물든 세력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비아냥거리고 있으며, 이에 의사들은 선입견에 의한 선동이라며 이러한 반응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경제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 서비스의 희소성은 감소하고 가치가 하락한다. 이를 이미 우리는 과거에 로스쿨로 경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어 공익적 가치는 증가하였으나 법률 시장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수요는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인구 감소로 하락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급의 확대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져 서비스의 가격은 하락하여 서비스의 시장 가치는 하락하였다. 서비스의 단위당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결국 물량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의료 지식이 부족한 시민들을 기만하고 수익 공백을 메꾸기 위해 불필요한 수술이나 진료를 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과잉진료로 의료비 지출은 늘어날 것이지만 대중들의 마음에는 바가지 장사꾼으로 인식될 것이다.
정부는 특정 세력의 이익보다는 의료 서비스 개선과 질적 향상이라는 범국민적 공익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한편, 의사들은 실질수요가 감소하는 것과 더불어 현 건강지표를 고려하면 지금으로도 문제가 없어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소아과의 경우 공급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시장을 생각해 보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상식적으로 저출산으로 인해 아이들이 크게 감소하고 있어 시장규모는 작아지는데 소아과를 하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명감은 이상일뿐이다. 소아과가 많아진다고 출산율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많이 태어나고, 그로 인해 시장규모가 다시 반등할 것으로 판단되어야 소아과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아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출산율의 증가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의대증원을 하더라도 그들이 수요가 줄어드는 침체 시장에 굳이 진입해야 할 이유는 현실적으로 없다. 그에 더해 단위당 창출되는 가치가 다른 과에 비해 적을 경우 보상의 측면에 있어서도 선택의 이유가 없어진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사항은 현재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시민들의 건강이다. 당장이라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에게는 이보다 더 짜증 나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싸움에 피해는 고스란히 보고 있으니. 의대생의 휴학은 치명적이지 않더라도, ①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사직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다른 것도 아닌 타인의 생명을 인질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사에게 갑질을, 의사는 자신들보다 나약한 존재인 환자에게 갑질을 했으므로 갑질의 대물림이 되었을 뿐 사회에 바람직한 바람을 불러오지는 못하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반대의견이 지지를 얻지 못하는 원인은 전공의 실착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론전에 있어서 의사들은 이미 싸움을 지고 들어간 것과 다름없다.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므로 등을 밀어줄 존재 또한 없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의사가 아닌 사람이 생각하는 부정적인 관점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의사는 ②사명감보다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뉴스 댓글에 밥그릇 싸움이라는 얘기가 가장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보다 치열해서 공부하고 노력해서 의사가 되었는데, 그 보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테지만, 대중은 나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의사를 그저 돈만 보고하는 직업으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자녀를 가진 부모들 조차 돈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자녀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의대정원 확대가 현실화에 가까워지자 ③재수학원에서 먼저 나서 더 많은 의대반을 꾸린다거나 반수, 재수생이 늘어나고, 이과 인재들이 전부 의대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감정의 골을 키우고 있다. 사람은 천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의사를 보고 사익만을 추구한다며 비난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은 의대에 보내 안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전문적인 사람으로 키워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나 하필 그 직업이 자영업자나 사업가도 아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위시한 사명감을 지니고 행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의사라는 것이 문제라 볼 수 있다. 그들이 실제로 사익추구 집단이 아닐지라도 대중에게는 사명감을 등진채 사익만 추구하는 변질된 집단으로 보이고 있다. 보이는 것과 이면이 다르더라도 여론은 보편적인 경험과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이 점을 이용해 많은 세력이 진실을 숨기고 여론전을 펼쳐 대중을 우롱하기도 한다.
④의사는 국회의원과 판검사를 포함하는 기득권 세력이자 소수의 엘리트 집단인 것은 물론, 때때로 뉴스에 등장하는 특권의식 덕에 이미지는 더욱 악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대한 적대심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엘리트가 되기 위해 노력을(부모가 자식이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학교에서도 공부타령만 하고 있다만 막상 그 엘리트가 되지 못하면 엘리트에 대한 적대심과 반발심만 커지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엘리트를 추구한 대가인 인성교육의 부재로 일부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도 나타났는데, 이로 인해 지식층들에게 혐오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⑤진료를 위해 직간접으로 의사와의 대면에서 나쁜 경험을 갖게 된 사례가 많다는 점도 한 몫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로 나쁜 경험인지, 아니면 엘리트에게 가지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인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부정적으로 생각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⑥잦은 의료사고를 기점으로 나온 대리수술 얘기도 빼먹을 수 없다. 의료사고는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날 수 있다지만, 더 큰 문제는 수술을 의사가 안 하고 대리인을 시키는 일도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의사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 대면하는 관계이며 신뢰를 쌓고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데,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간호사 등의 다른 의료인에게 일을 전가시킨 것이다. 환자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고, 의료사고가 난 다음에야 그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이제는 수술을 받을 때 의사는 나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내부의 이유를 막론하고서 전공의 집단 사직은 여론을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로 되돌리는 사건이 되었고, 그 선택은 너무나도 유치했으며 결론적으로는 나약한 환자의 건강을 인질 삼아 갑질을 한 꼴이 되었다. 최소한 병원의 업무는 그대로 유지하고 의사로서의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면서 지식인의 품격에 걸맞은 타당한 논리와 근거를 기반으로 정부에 항의를 하거나 시위를 했다면 여론이 여기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생처럼 갑질을 갑질로 되갚다니, 그들도 기득권 세력이라는 꼴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의사는 국가 운영에 있어서 중대한 위치에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없어질 경우에 발생할 의료 재난을 이미 예상했을 것이고, 그 예상은 적중했으므로 자신들의 힘과 의지를 공고히 하려고 했을 테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설령 이미 많은 대화를 시도하였음에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해 저지른 마지막 카드였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서로 의견이 갈린 상황에서 협의점을 찾는 것은 어렵겠으나 환자의 건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은 정부나 의사나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이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강행하지 말고 의사와 대화를, 전공의들은 환자의 건강과 안위를 생각하여 병원에 돌아가야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세력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상식적으로 선갑질한 정부가 의사에게 내미는 것이 먼저다. 이 문제는 두 집단 간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다만 이미 발생한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나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고,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되면 의사들의 목소리는 더는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을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업무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은 전공의에게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와 집 근처 가까이에서 예약 없이 가벼운 질병의 치료를 위해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의료는 타국가에 비해 최상급이라 생각하지만, 반면 암과 같이 중대한 질병의 경우에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서울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의 의료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함에 따라 공급이 따라오지 못해 예약은 당연하고, 예약을 하더라도 수술을 받으려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의대정원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조차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이외에도 지역의료 활성화를 외치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도시가 아닌 지역에 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의 의사가 지역의 의료를 전부 책임지게 되는 경우 업무과중은 물론 그 책임의 무게도 막중해지는데, 의료사고라도 나게 되면 법적인 문제를 비롯한 모든 책임이 전부 의사에게 간다는 것도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지역에 가지 않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반대로 그들에게 사명감만을 요구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다. 따라서 정부는 의사가 지방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강제성을 부여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은 군복무만으로도 기분 나쁘다. 이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이다.
의사는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 인기과 공급과잉 및 그 외 과의 의원은 고려되지 않은 상태로 대형병원과 필수과 위주의 수요로 인해 의사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신기루인 것인가? 다만, 이 문제와는 별개로 이미 의사는 시민의 지지를 얻기엔 글러먹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반면 시민의 지지를 얻은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