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글쓰기
<멀고 먼 수평선> (250701)
그 바닷가 마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생일이 비슷하다.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출어를 포기하고 안온한 집으로 틀어박힐 때, 해변의 조가비 같은 아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이와 생일이 비슷하고, 풍랑과 모래 혹은 바다 짠 내를 골고루 맞아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형태의 나이테를 얼굴에 새기며 늙는다. 늙은 선원만큼 동네는 낡아 높은 곳으로 빛바랜 집을 층층이 쌓고 너는 꼭대기 집에서 먼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마을의 생애주기는 동일하고 넘실거리는 파도에 맞춰 운명도 유사하게 흘러가기에, 너는 파도가 찰방찰방 심술궂게 배를 뒤집지는 않는지 예기치 못한 암초가 도사리는 건 아닌지 네가 애달프게 기다리는 그 사람이 터벅터벅 물길을 만들며 낡은 집으로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망연하게 먼바다를 보고, 눈을 돌렸다 가 또 바라보고 짠 내나는 손을 마주 잡아 저녁 등을 켠다. 작은 바닷가 마을은 탄생이 비슷하고 종말도 유사해서 온 동네의 제사 기간이 비슷할 때가, 그런 때가 있다. 거친 파도에 곡소리가 묻혀 바람결에 사라진다. 날이 밝는다.
<마지막 상영작> (251015)
30년간 근근이 운영되었던 나한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조간신문 귀퉁이에서 읽은 흐림은 짧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재직 중임에도 구직 신문이나 가로수를 열심히 읽었고, 무료로 배포하는 정보 전달용 주간지 또한 시험공부하듯 읽어치웠다. 눈앞에 샴푸가 있으면 성분 표를 의미 없이 외웠고 계면 활성제가 얼마나 들었는지 읽다가 놀라곤 했다. 바르고 정갈한 글자를 보면 흐리게 쓴 편지의 글자 나열들이 떠올랐다.
십오 년 전 나한 극장은 여전히 파리가 날렸다. 어둑한 내부에 매표소 직원은 자주 졸아 손님이 유리 칸을 두들기는 것이 일상, 팝콘과 콜라는 반입이 불가했으며 걸리는 영화는 10명이 보면 8명이 졸다 나오는 것들로만 채워졌다. 이례적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2월의 마지막쯤 흐림은 엔딩 크래딧을 보며 안 존 순간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옆자리의 은검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인기척으로 엔딩 크래딧까지 눈에 담는다.
극장을 나와 은계천 골목까지 들어와 어둔 눈을 발로 걷어차거나 불투명한 담배 연기가 나란히 겨울 밤하늘로 날아가면 은검은 말없이 재를 턴다.
<약 깎는 석공> (251027)
한 달에 두어 번 돌을 깎는 석공의 심정으로 하얀 원형의 알약을 사 등분한다.
반에서 반, 사분의 일 상현달 같은 조각은 정기적으로 몸을 타고 내려가 내 호르몬의 균형을 맞추거나 비로소 안전하다는 심리적인 바다에 잔잔한 돛이 된다. 쿠팡에 파는 알약 절단기는 꽤 유용하고, 일요일 저녁나절 차칵차칵 소리를 내며 잘려 나가는 쿼터를 보면 약간 도를 닦는 기분도 든다. 새끼손톱 크기도 안 하는 작은 조각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만은, 이 작은 달 조각으로 작아지기까지 겪어온 날이 새삼 벅차오르기도, 생경하기도, 마지막 방어선처럼 믿을 구석이라 든든하기도. 지난 경험을 반추했을 때, 투약의 핵심은 꾸준함이라 아마 내일 지구가 끝장나도 오늘 밤 열한 시에는 물과 함께 약을 삼킬 것이다. 버킷리스트 작성이 한창 유행했을 시절, 내 리스트의 꽤 상단에는 '헌혈'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저체중이라, 좀 커서는 항상 투약 중이었기에 남들 다 하는 헌혈은 정말 꿈의 리스트가 되어버렸다. 이로운 행위라 하고픈 것이 아니라 헌혈이 가능한 내 상태를 꿈꾸는 것일지도. 그 상징적인 의미를 소망한다.
출근길 2호선에서 매일 글을 씁니다.
신림-잠실 구간에서 작성하는 짧은 에세이로 출근의 고통을 쓰기로 승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