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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10. 2022

감속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 (Wavve, 2022)>

작년 초,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두둥). 적금과 예금으로 점철된 안정적 금융 생활 패턴을 고수해온 내 인생에 위험성 짙은 주식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순전히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주변에 주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까운 사람 중에도 주식으로 제2의 월급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에는 단기간 차익으로 번 돈이 몇 억이다, 그래서 차를 바꿨네, 집을 샀네 하는 소식이 그득그득했다. 이런 성공스토리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월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커피 값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주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식을 정리했다. 소문 무성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 진득히, 꾸준히 하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돈은 다른 영역이었다. 내겐 돈의 흐름을 읽는 감이 없었고, 그건 한 두 달 적당히 배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말을 들으면 이게 맞고, 저 말을 들으면 저게 맞는 것 같았다. 간이 작은 것도 주식에 에너지를 쏟길 힘들게 했다. 파란 성적표와 빨간 성적표 앞에 놓인 나는 바람 앞에 놓인 촛불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일 년을 이어 온건, 무성한 성공담이 주는 희망과 투자하지 않는 자는 도태된 미래를 살 거라는,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  a저씨가 희망퇴직 후 주식에 뛰어든 것도 나와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는 희망퇴직을 당하는 윤 부장의 첫 고난으로 시작한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당하고 전셋값을 3억이나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통보에 '그때 이 집을 사서 들어왔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주식으로 재미 본 친구들의 이야기에 마침내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파란색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a저씨(권상우 분)'의 모습은 나의 지난 1년을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a저씨의 위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목 속 X가 미지수를 연상시키듯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위기들이 찾아온다. 벼락 거지의 위기에서 a저씨와 미진(임세미 분)을 구해 줄거라 믿었던 강남에 당첨된 청약 아파트는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데 자꾸 바뀐 부동산 정책 때문에 빗 좋은 개살구가 될 처지에 놓였고, 어렵게 들어간 스타트업 회사는 체계라곤 찾아볼 수 없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바쁜 개성만 강한 임직원들 때문에 회사는 곧 망할 것만 같다. 위기의 연속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누구에게는 현재 진행형이고, 누구에게는 과거형이고, 누구에게는 미래형일 테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현실적이고 코믹하게 풀어냈다” 고 한 김정한 감독의 말처럼, <위기의 X>는 “현실 격공 코미디”라는 장르를 고증을 완벽하게 마친 “다큐멘터리”라고 읽게 만들었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다 말하지 못 하지만, 정말로 어떤 위기는 서두에 말한 것 처럼 지난 시간이었고, 어떤 위기는 현재며, 어떤 위기는 미래에 찾아올 것 같은 공감과 이해가 절로 가는 상황들이었다. 심지어 a저씨를 연기한 권상우 배우의 역할 이름은 없다. 인물 소개도에도 표시된 건 a저씨다. 독특한 명칭으로 이름을 특정하지 않아서 ‘a저씨’는 드라마를 보며 공감한 모두의 이름,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 같다.


현실 속 연속된 위기들이 찾아오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겁지 않다. 코믹 연기의 본좌인 권상우, 성동일, 신현수, 박진주, 이이경 배우의 연기는 무거울 수 있는 현실을 멋진 해학으로 풀었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삶은 위기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위기가 주는 메시지가 있고, 이를 통해 a저씨도 경쟁의 무의미함이나 비워냄의 진리 같은걸 깨우치면서 보는 이에게도 생각할 지점을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발견한 인생의 진리를 소화하는 것마저 각자의 몫이라는 듯, 마지막 회에선 모든 것을 완벽히 초월한 a저씨가 아닌 여전히 진행중인 위기 앞에 경쟁심에 불타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 등 엎치락 뒤치락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불안전한 존재로 인생의 진리를 깨우쳤다 해도 연약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약함과 불안전함, 하지만 여전히 위기에 절망하지 않고, 오늘을 또 살아내는 현재 진행형의 엔딩이 <위기의 X> 속 숱한 공감 포인트 중 가장 공감되었고, 상당히,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준 마지막 회였다.



일 년 전만 해도 매일 같이 오르던 주식이 지금은 하향세다. 고공 행진하던 집값도 ‘추락’이란 표현까지 쓸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내 집 마련은 여전히 그림의 떡으로 멀고 험란해 보이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런 게 인생이라면 적어도 인생에 계획을 세우는 일에 ‘누구보다 앞서가는 것’은 더욱이 의미 없겠구나. 우리가 걷는 길은 모두 다르니, 인생의 방향이나 속도도 나만의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길도 출발선도 다 다른 경주에 ‘뒤쳐진다’는 생각엔 분명 오류가 있다. 하지만,  “감속 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예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때보다 나는 얼마큼 나만의 방향을 찾았나 생각해봤다. 뭐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게, 이마저도 a저씨의 모습과 같아 또 현웃이 터졌다.


살짝 다른 이야기지만 <위기의 X>를 보면서 작년에 본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떠올랐다. 현실을 담아 웃음으로 풀어내는 장르를 잘 소화하는 웨이브인 것 같다. 웃음 속에 위기를 고민한다면 그 무게가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위기의 연속이 인생이라면, 그 파도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만은, 이마저도 매일 흔들리겠지. 그런데 그런 흔들림도 웃다 보니까 괜찮은 것만 같다.


6부작에 40분 남짓의 분량으로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위기의 X>가 주는 든든한 웃음으로 위안을 누려보면 좋겠다.

<위기의 X>는 오직 Wavve에서만 시청 가능!


* 감독 인터뷰 참조 기사 [‘위기의 X’→‘좋좋소’ 웃프지만 격공…현실 고증물 뜬다]



위기의 X 총 6부작 (바로가기)

채널 Wavve

연출 김정훈 극본 곽경윤

권상우, 임세미, 성동일, 신현수, 박진주 그리고 이이경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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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는 Wavve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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