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Sep 20. 2022

넘쳐나는 변호사 드라마 속 만나고 싶은 변호사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KBS, 2022>)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넘쳐나는 때다.

이런 서두를 이미 지난 6월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SBS)>를 포스팅하며 적은 적 있다. 그 무렵인 것 같다. 본격적인 '변호사' 드라마의 시작점이. 변호사가 주인공인 오수재(서현진 분)와 의사였으나 변호사가 된 한이한(소지섭 분)이 등장하는 <닥터 로이어(MBC)>가 비슷한 시기, 시간대에 방영했고, 올해를 대표하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채널A, 2022)>이지 않을까 싶다. 주말연속극 <현재는 아름다워>의 주인공 현재의 직업도 변호사,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빅마우스(MBC)>, 방영 예정인 <천 원짜리 변호사(SBS)>,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디즈니)> 등 2022년 드라마 시장은 그야말로 '변호사 전성시대'다.


'법'의 전문성은 주인공에게 좋은 무기가 된다. 똑같은 법을 다루지만, 공직자인 검사와 판사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변호사'는 교묘한 악역도, 정의로운 주인공도 될 수 있고,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아닌 변호를 하는 입장으로 우리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좋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있어 사랑받는 직업이자 매력적인 소재로 '변호사'란 직업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해 왔다. 


하지만 드라마 속 변호사와 그들이 맡은 사건은 유독 현실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로펌과 법정 분위기, 변론하는 장면 등이 실제와 가까운 면이 많았고, 여느 변호사 드라마들에 비해 공익사건도 다루며 다양한 의뢰인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우영우' 역시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그곳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재벌 수준의 자본력을 갖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생활이 아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소를 제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진실을 감추고 변론을 해달라 요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한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사건을 맡아주세요.”


꽤나 현실감 없는 대사다. 실제로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막연히 비쌀 것 같은 변호사 상담료가 걱정돼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길 망설인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물급 의뢰인들처럼 큰돈이 오고 가는 사건이 아니라서, 고작 이런 일로 변호사를 찾아가는 게 오버하는 것 같아 주저한다. 법은 어렵고, 비싸고, 특정한 누군가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 데에는 이런 미디어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변호사를 찾아갈만한 사건이란 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작고 크다'를 결정하는 건 사건의 규모가 아니라 한 사람이 겪는 괴로움으로 생각해야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에서 어린 지안(이지안 분)에게 '한정 상속'이나 '상속 포기'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줬다면 지안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면 너무도 큰 일이다. 당시 이 드라마를 통해 이런 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직계 자식이 아닌 손녀가 할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없기에, 할머니를 나라의 지원을 받아 요양원에 모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이런 걸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냐는 동훈(이선균 분)의 대사는 비슷한 맥락으로 내게 깊게 남은 대사다. 


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며, 지키는 방법을 드라마로 알게 되었다는 게 언뜻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미디어에게 이런 영향력이  있다면 일상에 가까운, 우리 곁의 변호사 이야기야 말로 드라마에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KBS)>의 방영이 반가웠다.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에서 이세영 배우가 연기하는 김유리는 대형 로펌에서 공익 사건을 담당하던 변호사였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지 않고, 돈 안 되는 공익 소송만 죽어라 패는 걸로 모자라 자기 회사 최대 고객인 기업을 상대로 산재 소송까지 걸어버린 의지의 또라이다(인물소개참고)’. 당 대변인으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지만, 유리는 회사를 퇴사해 Law Cafe를 차린다. 


그녀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피해자였던 아버지는 재판 중 증인의 진술에 의해 한순간에 동료들까지 죽인 파렴치범이 되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 단 한 번도 송사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의 말처럼 삶은 되게 쉽게 무너지고, 그러면 평소에 관심도 없이 살아오던 법이 필요해진다. 아프면 병원을 찾듯, 일상에 닥친 문제에 도움이 필요하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올 수 있도록, 언제든 편하게 문을 열고 들어 올 수 있게 Law Cafe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힘들 때 점을 보러 가거나 정신과에 가서 고민을 털어놓잖아요. 그래서 그런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변호사도 동네에 한 명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 거거든요.”


유리는 법정 밖에 수많은 기회들이 있다고 말한다. 재판이 능사가 아님을 그는 지난 시간 아버지의 재판을 겪으며 깨달았다. 재판은 한 해로 끝나지 않고, 1심, 2심, 3심까지 송사가 길어지면 무너져버린 삶은 재판 결과를 잘 받았다고 해도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리는 법정 밖에서 갈등을 해결해 간다. 층간 소음 피해로 자살까지 하려 했던 조 씨(조복래 분)의 사정을 알게 된 유리는 이 일이 아파트 시공 상의 문제임을 파악하고 건설사와 협상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받고, 그 돈으로 집 집마다 소음 공사를 할 수 있게 도왔다. 아동학대 피해자인 두 자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Law Cafe에서 커피를 시키고, 마시며 시작되었다.


드라마는 그녀의 아버지를 가해자로 만든 배후와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이야기로 점차 흐르겠지만, Law Cafe에 담긴 그녀의 신념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법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특정한 인물들, 돈이 많거나 권력을 쥔 사람들 곁에선 변호사가 아닌 솔직한 쓴 리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내용증명을 받은 블로거나, 계약 해지 3주 전에 전셋값을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은 임대인이나, 아버지의 아끼는 낚싯대를 당근에 올려 팔았을 때 어떻게 수습해야 아버지의 낚싯대를 분쟁 없이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학생까지, 작고 사소한 듯 보여도 너무나도 절박한 우리네 사정에 귀 기울여주는 변호사의 모습 말이다.


넘쳐나는 변호사 드라마 속에서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우리네 삶으로 가까이 다가온 변호사라는 점이 차별화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일상에서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의 도움이 대사에도 흐른다. 부디 바라는 게 있다면 이 드라마를 마케팅 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법의 목적과 실용적인 부분에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는데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거기에 유리처럼 자신의 일처럼 해주는 마음까지 꼭 담긴다면 좋겠다. 이 드라마를 보며 받은 감동은 아마 이러한 필요를 제대로 그려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속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