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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11. 2024

시대는 시대고, 나의 끝은 아직이다.

영화 <판소리복서(2019)>

예능을 보다 신조어나 줄임말을 맞히는 퀴즈 앞에서 의지를 불태울 때가 있다. 같이 보는 친구는 모르는데 나만 알았을 때 으쓱해하기도 하고, 어떤 단어는 문장이나 상황을 유추해 맞추려고 애쓰다 보면 그런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만다. 아, 나 늙었네.


박 관장(김희원 분)은 시대가 변했고 우리의 시대는 다 끝난 거 같다고 말했다. 박 관장의 말처럼 시대는 변했다. 칠전팔기, 헝그리 정신을 외치던 복싱의 뜨거운 붐은 사그라졌고, 체육관은 텅 비였다. 재개발에 들어가는 동네, 더 이상 찾는 사람이 없다며 싸게 팔리고 있는 카메라 필름, 문 닫을 준비를 하는 동네 사진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공무원 시험을 보려 한다는 민지(혜리 분)는 꿈마저 잃어버렸다.


‘가장 고유한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며 판소리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던 지연(이설 분)이었지만 판소리는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옛것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지연의 판소리 장단에 맞춰 복싱하던 병구(엄태구 분)도 ‘판소리 복싱’으로 세계 최고를 꿈꿨으나 이렇다 할 존재감을 갖지 못했다.


복싱, 판소리, 동네처럼 그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펀치 드렁크’라는 병은 병구의 뇌세포를 파괴하고 있었다. 날렵하고 강렬했던 선수 시절은 ‘한 때’로 저물었고 박 관장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는 ‘지금’, 병구다. 하지만 병구는 여전히 복싱이 하고 싶다. 자기 자신은 포함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사라지는 중이었지만 그 바람, 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 <판소리 복서>는 병구가 다시 링 위에 올라 경기를 치르는 결말을 향해 간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경기는 챔피언 대회가 아닌 본선 진출할 선수를 뽑는 예선전에 불과했다. 학교 강당에 마련된 임시 링 위에서 치러지는 경기였지만 병구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이 경기에 사력을 다한다. 박 관장 말대로 시대가 변했고 그래서 우리가 끝났다 하더라도 그 끝은 내가 정하겠다는 듯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임하는 병구를 위해 민지는 장구를 친다. 이제 없는 지연 대신 민지가 장구를 쳐주었다. 불가능한 상황과 변해버린 시대라 할지라도 병구는 자신만의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링 위에 섰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렇게 미완성이었던 ‘판소리 복싱’을 완성한다.


‘늙었다’, ‘꼰대스러워졌다’가 입버릇이 되었다. 혼란스러운 시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더 이상 발맞추기 힘들다 느껴지는 순간마다 초라하고 자꾸 주눅이 들어 나의 시대는 끝났다는 듯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한 순간도 복싱 챔피언 유망주였던 ‘한 때’의 병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초라하다거나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았다. 감동보다 웃음 코드를 선택한 영화의 센스 때문일지 모른다. 오히려 느릿느릿해지고 베실베실 웃고 있는 병구가 귀여웠고, 민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자꾸만 수줍어져 손가락 보만 보는 그의 정수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경기에 오르기 위해 가쁜 숨을  고르며 때로는 민지보다 뒤처져서 뛰기도 했고, 구조한 강아지를 살뜰히 살피고, 오버스럽게 그려내 눈물이 아닌 웃음 나게 했던 마지막 순간 링 위에서의 모습까지 진심으로 가득 찬 ‘지금’을 보내는 병구는 무해한 미소를 띠게 했다. 사라지고 있는 중에도 병구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지연은 사라졌지만 다시 존재하게 된 민지처럼,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라도 계속해서 이어져가고 있었다. 별이 소멸해서 사라지는 순간 엄청 밝게 빛나면서 사라지지만, 그 빛이 결국 새로 탄생하는 별들의 에너지가 되는, 초신성 처럼.

이토록 뜨거운 지금을 보내는 그를 보고 누가 감히 그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이는 ‘시대’는 한 얼굴을 오래 갖고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시간’에게 그저 뒤에 있다는 이유로 끝났다는 말을 쉬이 할 수 있을까?  병구는 마치 내게 “너의 끝은 네가 내야 하는 거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스스로 끝내는 듯한 쓸데없는 입버릇 그만하라고, 그렇게 말해놓고선 또 수줍어 손가락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듯하다. 병구는 ‘서서히 사라지는 것만이 지는 아름답고 슬픈 매혹을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다.


시대가 변했고 우리의 시대는 다 끝난 거 같다던 박 관장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가 주입시키는 소리를 닮았고,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는 병구의 대답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등 떠밀려 눈치 보며 살기 바빴던 나의 대답이 되어야겠다. 꾸준한 얼굴로 나아가고 있는 나의 시간이 만들어가고 있는 마음속 바람을 늙었다, 고리타분하다, 촌스럽다 나무라지 말고 당당해야지. 시대는 시대고, 나의 끝은 아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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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문장 속 병구의 시간을 표현한 부분은

‘전쟁 중 폭격을 덜 받은 덕분에 살아남은 지붕들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만이 지닌 아름답고도 슬픈 매혹을 가르쳐주던 시간’

이라고 적힌 책 <눈부신 안부(백수린 저)>의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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