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나쁜 계집애>
다들 <달려라, 하니>를 기억할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나쁜 계집애>는 추억의 만화 <달려라, 하니> 스핀오프로, 하니의 라이벌 나애리가 주인공이다. 나애리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설렜다. 악역까지는 아니었지만, 엄마를 그리워하며 달리는 하니를 가슴 아프게 했던(?) 나애리를 다른 시각에서 비추는 일이, 추억 속 인물을 달래 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애리는 하니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온다. 중학교 이후 대회에 출전하지 않던 하니와 달리, 나애리는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코치를 홍두깨 선생님으로 바꾸기 위해 하니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오지만, 사실 홍두깨 선생님은 핑계다. 애리는 왜 달리는지, 달릴 때 눈이 반짝이던 하니를 만나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하니는 대답은 단순 명료했다. 마치 달릴 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듯, 달리는데 왜 그런 생각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순수함이 묻어났다. 그런 하니의 대답에 나는 그만 심통이 났다. 내가 그걸 모르겠냐고!
루틴하게 해 오는 이들이 있다. 주 1-2회 달리기, 책 읽기, 드라마 보기, 대사 정리하기,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기 등 규칙을 두고 해 오는 일들은 내 삶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이 되었다.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애리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
분명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인데, 하기 싫어 미칠 때가 있다. 물론 쉬었다 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좀 쉬어 봤더니,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들여 쌓은 탑은 쉽게 무너지고, 무너진 탑을 다시 쌓으려면 또다시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왜 하는지도 모른 채, 탑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애써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애리는 ‘에스런’ 경기에 참가하며 달리는 이유를 발견한다. 도심에서 치러지는 경기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 외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릴레이 주자로 하니와 함께 뛰며,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자유롭게 달리는 경험은 애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 주고, 달리는 그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여전히 자신이 달리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나애리의 질문은 더 이상 뛰고 싶지 않아 생긴 의문이 아니었다. 여전히 뛰는 게 좋고, 더 잘 뛰고 싶은 마음에서 피어난 목마름이었다.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데 아무 이유가 없는 하니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애리는 ‘왜 뛰는지’를 묻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원동력을 발견하고, 동시에 변치 않는 자신의 마음도 확인한다.
나애리처럼 직업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기에,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나의 루틴들에도 명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시작하기에 좋은 이유였지만, 벽에 부딪히면서 생긴 ‘하기 싫다’는 마음은 사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나애리를 보며 알게 됐다.
그래서 올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먼저는 뛰는 코스를 바꿔볼까 한다. 늘 달리던 러닝 코스가 아닌, 고불고불한 골목길을 지나 작은 동산에 올라갈 계획이다. 코스를 벗어나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애리에게서 얻은 힌트다. 꽤 괜찮은 달리기가 된다면, 그러니까 페이스가 나오지 않고 좌충우돌한다고 해도, 적어도 ‘왜 뛰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성공으로 보려고 한다.
그 끝에 ‘사실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구나’라는 진심을 발견한다면, 끝내보는 일도 해보고 싶다. 그 또한 다음 쳅터를 여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올해는, ‘왜 하고 싶은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져 보는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