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by 양보

서른 번째 생일에 달걀 한 판을 선물 받았다. 생일이 12월인 나는 아직 만으로 29살이라며, 그 해 나보다 먼저 서른을 맞이한 친구들을 놀려 댄 대가였다.


사람들은 소위 삼십을 꺾이는 나이라고 한다. 그 나이부터 사람과 사랑 모든 영역에서 기회가 줄고, 새로운 시작이 힘들어진다는 말에 나도 겁을 먹었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니 허무할 정도로 별 일 없었다. 일상은 여전했고, 모두가 어렵다고 한 그 서른에 새로운 분야로 취직하고 이직까지 성공했다.


서른 통은 천천히 왔다. 운동 한 날보다 그다음 날, 그 다다음 날 오는 근육통처럼 서른보다 서른 하나, 둘부터 변화의 통증이 시작됐다. 좋아하던 하이힐을 신고 다니면 금방 허리가 아팠다.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이모라는 호칭이 생겼고, 깜박깜박하는 일이 늘며, 무엇보다 예전과 달리 한 두 끼 굶는다고 삶이 빠지지 않더라.


자연스럽게 시끄러운 곳 보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장소에 머물렀고, 플레이 리스트도 유행보다는 취향에 맞춰졌다. 좋아하는 시가 생기고, 천천히 걷는 시간이 늘었다. 기쁘고 축하할 일만큼 아프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소식도 늘었다.


그중 가장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던 건, 부모님의 환갑잔치에서였다. 소박하게 친척분들을 모시고 밥 한 끼 대접하는 자리였음에도 부모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집안의 대소사를 자식과 의논하는 부모님을 보며 이제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효도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줄고, 내 문제, 내 삶에 국한되던 기도가 서른이 지나면서 조금씩 넓게 뻗어갔다.


가장 즐거운 변화는 여유로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 것이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일거야’라고 답 한건, 농담이 었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이십 대 나는 참 열심이었다. 대게 그 나이가 그러하듯 치열하게 사는 틈에 상처도 받고 아픔도 있었지만, 무언가 하나씩 배워왔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도망도 치고, 멈춰 서기도 하면서 성장한 과거가 지금의 내게 스스로를 믿어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이 여유는 나이가 들어서 생긴 게 맞다.


TVN 예능 중 <꽃보다 누나> 편에서 제작진이 윤여정 선생님께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 더럽게 일만 했기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며, 인생은 한번 사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셨다. 다만 육십에게도 매일은 처음 사는 것이니, 다 알지 못하고 그래서 모든 게 아쉽다며, 무엇을 계획할 수 없기에 그저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으려 한다고 하셨다.

글의 시작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서른 살 때 쓴 글이다. 다시 쓰는 지금은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가끔 밤늦게까지 놀고도 멀쩡한 어린 친구들의 젊음이 부럽지만, 나 역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금 여유로워지고, 깨달아진 것들이 많은 지금이 좋다.


물론 칠십 생을 살고 계신 윤여정 선생님의 말을 빌려오기에는 서른다섯 살은 어린 나이이다. 이렇게 나이라는 녀석은 줏대가 없었다. 그러니 숫자에 갇혀 고집스러워지거나, 슬퍼지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는 것만큼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이 내게 말해주듯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게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를 믿어주라고.

그저 지금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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