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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27.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사 편 4


저도 두 사람 보고 있으면 네, 기분이 좋아요.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 꼭 약속하는 것조차 설레며 쑥스러워하는 두 사람... 정말 가을 가을이다(●’◡’●) ノ


준영과 발맞춰 걷던 송아의 걸음이 빨라졌다. 천천히 멀어지는 송아를 보던 준영은 잠시 멈짓, 갸우뚱하는 듯한다.


아주 짧은 몇 초의 이 장면이 좋았다. 아마 대사를 캡처하기 위해 장면을 몇 번씩 다시 보지 않았다면 놓쳤을지 모른다.


섭섭함이다. 은근 티 내는 송아가 귀엽지만 못 알아차리는 준영이도 귀여웠다. 전부 다 설레는 순간이었다.


내게 조금 더 털어놓길 바랬지만 그렇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사랑의 시작이겠지. 그래 친구부터 차근차근. 준영이도 천천히 마음을 기대는 법을 배워갔으면 좋겠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사랑한다. 비록 4수를 하고 입학한 음대에서 꼴찌이지만, 그래서 바이올린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짝사랑도 사랑이다. 재능이 있지만 음악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는 준영을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아주 오래된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힘든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노력하는 송아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무시도 묵묵히 듣는다. 그러면서도 타인이 가진 재능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고 시기 질투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처럼 순수할 수 있을까. 그건 그녀가 그만큼 바이올린을 사랑한다는 뜻일 수 있다. 그 마음이 전해졌기에 학생 어머니가 설득된 게 아닐까. 그리고 이 말은 어쩌면 준영을 보면서 그녀가 내내 생각했던 말일지도.

그렇지. 모든 고민은 내 고민이 아니고 친구 고민이지. 송아 너무 귀여워�

송아는 조금 느린 듯 보인다. 말도 별로 없고 참기도 잘하고, 기다리는 것도 잘한다. 그래서 남들 졸업할 때 음대를 지원했다.

하지만 느린 듯 보여도 한번 마음먹은 일에 게으름은 없도 후퇴도 없다. 어릴 때부터 계속 취미로 연주했다고 해도 4수 만에 한국 최고 음대를 들어가기가 쉬울까. 비록 지금도 성적은 꼴찌지만 옆자리, 그 앞 줄 한 자리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다.

말은 없지만 해야 할 말 까지 삼키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말로 학부모를 이해시키기도 하고 이렇듯 자신의 마음도 전한다.

송아가 고백했다.

한 주 느린 업로드 상 미래를 아는 자로서, 이 장면 뒤에 바로 어제 자 엔딩을 넣고 싶었다. 단짠은 있어도 고구마 없는 건 역시 요즘 스타일 �

이사장은 준영에게 욕망이 없다고 했다. 비슷한 대사는 옆 집 #청춘기록 에도 나온다. 준영이와 혜준이는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이 눈으로 보이는 필드에서 뛰고 있다. 그런 주인공들이 욕망이 없다는 게 어딘가 의아했다..



일전에 읽은 #90년생이온다 가 얼핏 떠올랐다. 기성세대는 (소위 말해) 요즘 세대들을 유약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방식대로 경쟁하기엔 시대가 달라졌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요즘 세대들은 그렇기에 불합리와 불공정에 민감하다. 목소리를 내는 분야도, 방법도 다양하다. 선뜻 움직이진 않지만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영향력이 상당하다. 또한 이들은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조화를 이루는 법부터 배웠다. 무조건적으로 경쟁이 싫어서, 혹은 유약해서 편한 방식을 찾아 살려는 것으로 보는 건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사장님이 준영이를 서운하게 한 것보다 준영과 현호, 정경. 이 세 사람의 관계에 어떠한 돌파구로 이들을 자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준영이도 현호도 떼쓰는 법보다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함을 먼저 배운 아이들이다.


책임감으로 세계 무대에 선 아이들은 결코 나약하지도 그렇다고 욕망이 없지도 않다. 아니, 이들이 바라는 욕망이 순수함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큰 욕망이 없을지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든 날. 그런 날 누군가 나의 안쓰러운 마음을 염려하며 다급히 찾아준다면 그 자체로 위안받을 것 같다.


준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송아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 하루 종일 외면받아온 그녀가 실은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음악에 담긴 여러 모양으로 위로를 받은 송아가 화사하게 짓는 미소에서 나까지 위로를 받았다.

준영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준영이 사정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 ‘그의 이야기’라는 단어로 시작해 ‘그의 피아노’, ‘그의 사랑’, ‘그의 친구’로 이어진 말들이 행여 넘칠까 비우고 비웠다는 문장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간략한 단어의 나열이 오히려 준영이 갖고 있는 무게를 부각했다. 특히 그가 왜 욕심내지 않았던 것인지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설명이었다.


덕분에 상황보다 준영이 마음에 더 집중할 수 있던 작가의 글과 연출이 돋보인, 역시나 자랑하고 싶은 브람스다.

지도 교수가 준영에게 해 준 이야기는 자신이 겪은 과거에서 비롯된 경험담 일지 모른다. 자신이 경험해 깨달은 교훈을 이야기해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직 상대방은 그 일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도교수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하고, 안 하고는 준영이 몫이다.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운을 띄우고 이 일의 당사자가 방향을 정하면 그때 조금 더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물론 당사자가 원한다면 말이다.


지도 교수 입에서는 하지 말란 말만 나온다. 그가 딱히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준영이 그와 거리를 두려 했던 이유는 그리고 그가 월드클래스가 되었어도 행복하지 못 한 연주하는 기계가 된 건 어쩜 이런 교육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우선 성공이 중요한 건가? 그것마저도 결국 당사자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디 준영이 스승보다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캠퍼스 커플인가요´`

중반에 다다른 브람스는  내음이 난다. 부디 치열한 여름을 지나 다시 은은한 가을에서 끝나길. 겨울로 가진 맙시다(^••^

방금 전까지 화사하게 웃던 두 사람인데, 참 사랑 한번 하기 어렵네.


선뜻 걱정하지 말라고, 송아 씨에게 가고 있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준영을 화면 뚫고 들어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아, 이사장님 이사장님께서 하신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정경이가 아닌 송아가 신경 쓰여 달려온, 그런 송아를 놓친 뒤 들었을 마음을 준영은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치열한 경쟁이 아닌 사랑을 통해 깨달아짐이 다행일 뿐.


난 괜찮다. 나야말로 기다릴 수 있다!(미래를 아는 자의 여유:)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선 나도 동의하는 바다. 시대가 강조하는 무엇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반대되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시대는 언제나 빠름을 강조하였기에 반대되는 느림의 개념이 소중해진다. 나도 자주 조급 해지는 사람이기에.


송아가 바이올린을 전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시간이다. 불안한 미래,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송아는 참 용기 있다.


인생에 어떤 길은 이렇게 기다리기도, 많이 느리게도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정경이가 너무 외로워서, 외로워서 이러는 것 같다. 현호에게 흔들린다고 한 말은 준영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 다가왔다. 하지만 정경이 본인도 모르니까 현호에게 확신을 받고 싶었던지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놓지 않을 단단한 확신.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 주는 안정을 정경은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현호의 반응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준영이에게 가보지만 그곳도 아니다. 뱅뱅 돌던 정경은 본인과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최근에 #둘이어도외로울수있다 라는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 덕분에 잊고 있던 글을 다시 봤다. 나는 그 글에서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고 적었다. 나도 다 모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다 알 수 없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


행복한 착각은 외로움이 찾아올 때 당신의 사랑이 부족해서 내가 외로운 것이란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그래서 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엇나가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다고 느꼈다.


아빠는 정경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갖고 있지만 딸의 오랜 남자 친구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냥 헤어졌다는 말 한마디에도 정경에게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


정경이가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한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었음을 알았을지 모른다. 스스로 발 밑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드는 정경이가 송아를 생각하면 미운데,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에 안쓰럽다가 애틋해지기도 한다. (물론 네 이년! 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통해 정경이가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보다 스스로 서는 밥을 알게 된다면 반대로 현호를, 준영이를 포옹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제멋대로의 기대를 건다.


속도가 느리면 게으르고 답답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꼼꼼하고 신중한 편일 수도 있다. 송아가 그렇다. 오래 걸려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걷고 있는 걸음을 멈출 순 없다. 느리더라도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걸음이기도 하다.


사랑도 좋은데, 그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아니라서 더 좋다. 고구마로 끝날 수 있는 엔딩에서 준영이 단호박스러운 거절을 해준 것도 그리고 준영의 진심을 송아가 직접 들은 마지막 엔딩 장면도 좋았다.


하, 또 브람스 연출을 찬양하는 말로 끝나는 것 같은데. 마지막 삼자대면(?) 장면 너무 좋지 않았나요? (나만 좋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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