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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15.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사 편 3

준영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준영이 사정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 ‘그의 이야기’라는 단어로 시작해 ‘그의 피아노’, ‘그의 사랑’, ‘그의 친구’로 이어진 말들이 행여 넘칠까 비우고 비웠다는 문장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간략한 단어의 나열이 오히려 준영이 갖고 있는 무게를 부각했다. 특히 그가 왜 욕심내지 않았던 것인지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설명이었다.


덕분에 상황보다 준영이 마음에 더 집중할 수 있던 작가의 글과 연출이 돋보인, 역시나 자랑하고 싶은 브람스다.


지도 교수가 준영에게 해 준 이야기는 자신이 겪은 과거에서 비롯된 경험담 일지 모른다.

자신이 경험해 깨달은 교훈을 이야기해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직 상대방은 그 일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도교수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하고, 안 하고는 준영이 몫이다.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운을 띄우고 이 일의 당사자가 방향을 정하면 그때 조금 더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물론 당사자가 원한다면 말이다.


지도 교수 입에서는 하지 말란 말만 나온다. 그가 딱히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준영이 그와 거리를 두려 했던 이유는 그리고 그가 월드클래스가 되었어도 행복하지 못 한 연주하는 기계가 된 건 어쩜 이런 교육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우선 성공이 중요한 건가? 그것마저도 결국 당사자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디 준영이 스승보다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캠퍼스 커플인가요�

중반에 다다른 브람스는 봄 내음이 난다. 부디 치열한 여름을 지나 다시 은은한 가을에서 끝나길.

겨울로 가진 맙시다 �‍♀️


방금 전까지 화사하게 웃던 두 사람인데, 참 사랑 한번 하기 어렵네.


선뜻 걱정하지 말라고, 송아 씨에게 가고 있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준영을 화면 뚫고 들어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아, 이사장님 이사장님께서 하신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정경이가 아닌 송아가 신경 쓰여 달려온, 그런 송아를 놓친 뒤 들었을 마음을 준영은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치열한 경쟁이 아닌 사랑을 통해 깨달아짐이 다행일 뿐.

난 괜찮다. 나야말로 기다릴 수 있다!

(미래를 아는 자의 여유:)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선 나도 동의하는 바다. 시대가 강조하는 무엇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반대되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시대는 언제나 빠름을 강조하였기에 반대되는 느림의 개념이 소중해진다. 나도 자주 조급 해지는 사람이기에.


송아가 바이올린을 전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시간이다.  불안한 미래,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송아는 참 용기 있다. 인생에 어떤 길은 이렇게 기다리기도, 많이 느리게도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정경이가 너무 외로워서, 외로워서 이러는 것 같다. 현호에게 흔들린다고 한 말은 준영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라고 다가왔다.


하지만 정경이 본인도 모르니까 현호에게 확신을 받고 싶었던지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놓지 않을 단단한 확신.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 주는 안정을 정경은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현호의 반응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준영이에게 가보지만 그곳도 아니다. 뱅뱅 돌던 정경은 본인과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최근에 #둘이어도외로울수있다 라는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 덕분에 잊고 있던 글을 다시 봤다. 나는 그 글에서 사랑을 하고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고 적었다. 나도 다 모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다 알 수 없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


행복한 착각은 외로움이 찾아올 때 당신의 사랑이 부족해서 내가 외로운 것이란 억울한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그래서 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엇나가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다고 느꼈다.


아빠는 정경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갖고 있지만 딸의 오랜 남자 친구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냥 헤어졌다는 말 한마디에도 정경에게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


정경이가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한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었음을 알았을지 모른다.


스스로 발 밑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드는 정경이가 송아를 생각하면 미운데,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에 안쓰럽다가 애틋해지기도 한다. (물론 네 이년! 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통해 정경이가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보다 스스로 서는 밥을 알게 된다면 반대로 현호를, 준영이를 포옹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제멋대로의 기대를 건다.



속도가 느리면 게으르고 답답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꼼꼼하고 신중한 편일 수도 있다. 송아가 그렇다. 오래 걸려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걷고 있는 걸음을 멈출 순 없다. 느리더라도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걸음이기도 하다.


사랑도 좋은데, 그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아니라서 더 좋다. 고구마로 끝날 수 있는 엔딩에서 준영이 단호박스러운 거절을 해준 것도 그리고 준영의 진심을 송아가 직접 들은 마지막 엔딩 장면도 좋았다.


하, 또 브람스 연출을 찬양하는 말로 끝나는 것 같은데. 마지막 삼자대면(?) 장면 너무 좋지 않았나요? (나만 좋았나 :)

정경이 말이 처음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코멘트를 쓰기 위해 몇 번씩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비단 음악에 국한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도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음악이나 글이나 듣고 읽는 이의 몫이라는 것이 있지만 맹 물을 놓고 맛을 느끼라고 할 순 없을 테나. 무엇을 쓸까, 어떻게 전달할까 하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에게로 관심을 두게 한다.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관점을 명백하게 드러내면서, 목격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가능한 한 가장 다정한 태도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쓰기의감각 중에서”


정경의 가르침은 자신도 아직 해내지 못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살짝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한번 깨우친다고 다시 오지 않을 질문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인정함도 확신을 찾는 길이며 연주에 대한 확신은 결국 삶을 두고 고민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에.


짧은 코멘트도 점점 부담이 된다. 이것도 당연히 글쓰기며 그때마다 나는 나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기도 괴롭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다정한 태도로 들여다보게 하는 글쓰기가 내 삶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분명 송아도, 정경도 연주를 통해 자신을 더 알아갈 것이며,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하지 않을까. 졸업 연주 때 확신에 찬 송아의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정말로 박은빈 배우님이 바이올린을 연습하시는 것 같던데.. 배우들의 열심히 묻어난 작품이라 그런가 매회 짙은 생각을 남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하 강아지인 줄. 내내 신경 쓰인다는 그런 다정한 말을 하다니. 역시 철컹철컹해야겠어. 상습 폭행이야. 내 심장 폭행죄. (주접 �‍♀️�)

교수는 서령대 출신이 아니다. 학연 지연이 팽배한 세계에서 그의 (소위 말해) 꼬리표는 타대학 출신 교수 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실력에 집착했고 그 결과 콩쿠르에 적합한 교수가 되었을지도.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준영이를 엄하게 가르치고 자신처럼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듯하다.


하지만 교수는 정말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 일까? 내 눈엔 상처 받아 날이 잔뜩 선 모습처럼 보인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준영을 이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차리리 정경이처럼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네게 더 가진 것이 있다면 나누고, 더 잘하는 것이 있다면 이끌어주는 데 사용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되는 편이 더 훌륭한 선생이란 생각이 든다.


이 동네에서는 급을 나누고 옆 동네에서는 금수저, 흙수저 타령을 하네.


기다림의 미학에 관한 주제로 쓴 글이 몇 편 되더라. 너무 엉성해서 글쓴이만 주제를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나는 이 주제로 글을 쓸 때면 성실히 노력해온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했다.(음.. 글을 재탕한 셈이 되는 건가...)


오래 묵묵히 해온 사람일수록 의심이 많다. 눈에 띄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어찌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은 고맙지만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다. 빈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기울인 노력도 당연하게 치부한다. 세상에 숨 쉬는 공기조차 당연한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타입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설득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스스로가 기울 이 노력을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누군가 건넨 격려조차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에겐 얼마나 엄격할까. 어쩌면 이미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열심을 들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모르는 척 한 번쯤 자신을 믿어주었으면 했다. 그럼 분명 더 많은 인정과 확신이 들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차영인 팀장이 청춘들 곁에 있어 줌이 고맙다. 차 팀장은 시간을 내어 자신들이 후원하는 연주자들의 공연에 참석한다. 잘하고 있나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있구나 응원함이다.


그런 시선으로 송아를 격려해주었다. 알고 지낸 시간이 짧은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너의 열심을 알아”라는 말보다 “너 자신이 더 잘 알지 않냐”는 의미를 담은 “자신을 믿어봐요”라는 말은 섣부르지 않아서 또 좋았다. 반면 오래 보아온 준영을 향해서는 자신을 믿어보라는 자신감도 신뢰를 주었다.


그러니 때로는 자신을 믿고 때로는 당신을 믿어주는 이를 믿으며 묵묵히 걸어온 그 걸음을 이어나가길 �� 잘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교 일등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나와 세계가 다르다는 포기에서 나온 관망이다. � 하지만 준영이 있는 세계는 송아가 간절히 바라는 세계다.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곁에 서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부족을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거 좀 밀어냈다고 화내는 준영이 좀 미웠다. �


하지만 모든 걸 볼 수 있는 시청자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 준영이 마음도 알 수 있다. 십여 년 전 음악을 처음 시작한 때와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개인적 상황을 생각하면 월드클래스라는 단어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겉도는 부유감에 준영은 지쳤고 유일하게 쉬었던 송아에게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으니 속이 상했을지도. 참... 드라마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듯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둘의 사랑싸움이란 걸 알기에.


마지막 장 업로드하러 바로 가야지�

내가 지치지 않고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를 영업하는 건 매 회 이렇게 설렘 포텐 터지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해요 조영민 사랑해요 류보리)


물론 송아가 떠났을까 노심초사하며 달려온 준영이 “널 좋아해!(feat. 위너)”부터 말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역시 한국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했다. 정경이와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 연주를 해주겠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마땅하긴 했지만,

이런 키스신이라니요.!!

(다시 한번 외쳐 사랑해요 조영민 사랑해요 류보리)


두 사람이 지금까지 가지고 온 순수함과 풋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놀란 듯 뒷걸음질 치며 건드려진 피아노 건반이 낸 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연주처럼 느껴졌다.


아니.. 준영이 모태솔로 아니었나 봐요. 네네. 여러분 이 장면도 꼭 영상으로 보셔야 합니다.

(하 좋은 장면에 너무 주접 글을 쓴 것 같은데... 영업 글로 봐주세요:)


영상 바로 보러 가기:)

맞다. 나 하나 힘들면 될 일인데... 해결 방법이 없는 일일 때는 그냥 혼자 감당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그게 어째서 혼자만의 일인가. 이미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 후로 당신의 일이 나의 일이 된 것을. 사랑은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만지는 것 같지만 그건 반쪽 짜리 사랑이다.


이럴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

“너도 사랑 지상주의니? 사랑은 행복과 기쁨 설렘과 용기만 줄 거라고?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 되어 사랑이지” 괜찮아 사랑이야


무엇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아닌 척 해도 아닌 게 아닌 상태가 보인다.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오랫동안 보고 있었으니까. 때로는 어떠한 방법이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이렇게 마음을 나눔으로 해결될 때도 있다.


그렇기에 준영이 처음 시작한 사랑이 그가 갖고 있는 ‘혼자’라는 무게를 ‘함께’ 나눠지고 발맞추는 멋진 합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전화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서로의 얼굴을 봄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푸른 밤의 빛이 내린 어느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수줍은 마음이 엿보이고 설레는 때에 걸맞은 아웅다웅 끝에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 떨어진다. 비어진 손에 상대의 손이 잡힌다.

나는 왜 소설 <소나기>가 생각날까. 그런 풋풋함이다.


매 회 페이지 상단을 접어 놓고 싶은 페이지가 있다. 이런 감수성이, 서사를 풀어냄이 가을마다 생각나게 될 드라마로 자리를 잡게 했다. 이 장면도 영상으로 봐야 설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동영상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


(동영상 바로가기!)


지도교수가 갖고 있는 상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학연 지연이 여전히 득세하는 음악계에서 그는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그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 그러다 재단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준영이를 만났다. 그 만이 준영이에게서 경후 재단이라는 뒷 배경을 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국 준영이란 그늘에 그는 눌리고 말았다. 준영이의 재능이 부러운 것 일수도 있겠지. 어쩌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게 일치하지 않는 삶의 괴리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준영이를 짓누르는 건.. 양 쪽 전부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 가르치는 재능이 뛰어난 것도 복인데... 언제나 인정하지 못하는 그 괴리가 일을 만들지 

서운하다는 말이 이렇게 예쁜 고백이 될 수 있구나. 자존심도 무엇도 담지 않은 송아의 섭섭함은 순수해서 들을 때마다 예쁘단 생각을 한다.


드라마 <봄밤>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나 담백하게 표현하던 말들 때문이었다.


송아는 준영의 반주를 거절한다. 스스로 해보겠다고 한다. 내심 그래도 송아 반주는 준영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송아 마음은 어땠을까.


준영의 상황을 이해함과 자신을 위해 나은 선택이라 여긴 송아가 그래서 준영의 연주 덕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정경이와 다른 태도라서 준영과 송아는 얹혀감이 아닌 기대어 가는 모습 같아 보는 내내 좋았다. 키스 신 뒤에 이런 대화라니 #낭만맛집


정경이 서사가 풀리면서 모든 걸 가진 듯 보였던 그녀가 가슴이 텅 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별했는데 아직 미워하지도 떠나지도 못 하는 현호는 그런 정경이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현호 서사도 좀 풀어주지. 이만한 애가 없다.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는 건 긴 설명이 없어도 이해한다는 점에서 좋다. 하나 그래서 선을 넘기도 쉽다. 아니까, 나도 아니까.

전 날 밤 준영은 송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섣부른 위로 대신 곁에 있어줬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이 그렇다는 조심스러운 언행이 따뜻해서 고마웠다.

오늘은 어떤 산이 이들 앞에 놓일까. 고구마 밭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함께 손 잡고 가면 어디라도 따뜻하겠지 ✨

미련이 남아 음대를 다시 지원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련 없도록 송아만의 프랑크 소나타를 연주해볼 수 있길 



지난주 준영에게 급에 대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듯 이번 주엔 송아는 늦었다는,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송아에게 해준 말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옳은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자기 말만 맞다는 듯 말하는 과장이 널 위한 말이라는 포장지까지 사용해서 밉다.


무엇보다 이 상황에 대해 송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원망하고 불평하거나 나처럼 과장을 아니 세상의 일반적인 잣대를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 송아 속이 어떨까.


아무 말하지 않고 잡아준 준영의 손길이 그래서 위로가 된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다. 세상에 혼자 있다 느낄지 모른다. 이런 순간 곁에 있어주는 것만 한 위로가 또 있을까.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이미 쌓인 시간' 이 중의적으로 사용되었다. 바이올린을 향한 그리고 준영을 향한 마음으로. 


음대 수업시간은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자리를 정해준다. 고등학생 때 우열반을 나눴던 수학 시간이 생각났다. 자극이 될 수 있지만 포기할 수도 있는 분위기. 그래서 송아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한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정말로 송아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일지. 그녀는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었다. 정식으로 배우고 싶었으나 꼭 서령대는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녀의 입학이 늦어진 건 엄마의 요구 사항이 서령대 입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원하는 연주자의 삶이 대단한 오케스트라에서 혹은 1등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삶도 다양한 모습이지 않을까. 꼭 모두 1등이 최고가 되어야 할까.


이를 목표로 두지 않은 전공이나 열심, 좋아하는 마음은 정말 의미가 없는 걸까. 이왕 전공으로 좋은 음대에 들어왔으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떤 모양이더라도 나는 송아의 삶이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정경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삼순 언니가 그랬어.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쌍방 통행도 아닌데 제발 현호한테 잘해 경아야 ㅠ



내가 이 둘에게 뭘 바랬던 것인가. 

그저 심야 버스도 잘 갖춰진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원망할 뿐이다... 


좋은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곳에 등장한 교수 세 사람 모두 교수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 비밀의 숲에서 강 자리가 아닌 사람 됨을 주목하게 한 강 지검장과 우태하가 생각났다.


과연 교수는 부끄러워할까? 정경이를 버릇없다고 생각할까? 아무래도 후자겠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모든 고구마 밭이 어른들로부터 생긴 것 같아, 계속 미안해진다.

고마워요. 얘기해줘서.

제가 고맙죠. 이런 얘기 할 수 있게 해 줘서.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를 보는 이유를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어여쁜 말에 있겠다. 어제 회차처럼 자신에 입장에서만 내뱉는 말, 상처 주는 말이 홍수인 가운데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이 담겨 있어 조심스러운 모습까지도 위로를 준다.


#브람스를좋아하세요 에 대한 기사 중 ‘준영의 위로법’이란 타이틀을 봤다. 많은 말들로 지친 이들은 삼감으로 상대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제 3회 남았네...어여쁜 사람들이 조금 더 보고 싶구려

고요히 잠든 송아.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미소 짓다 이내 곧 같은 표정을 짓게 되는 준영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전해졌다.


어떤 장면은 말이 필요 없다. 아무 말이 없어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정이 역시나 브람스다.

마음까지 예뻐지는 :)

그런 해석 글을 본 적 있다. 비가 오는 건 송아 마음을 대변한 거라고.

바로 앞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각자 겪은 일로 예민해있었다. 예민함이 그 일과 관계없는 상대방에게 향했고. 다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자리를 피했다. 잠시 감정을 고르는 태도도 좋았지만 하필 비가 온다.


그동안 꽤 자주 비가 왔다. 그때마다 혼자 있던 송아 곁에 이제 준영이 있겠다고 한다. 힘든 일을 더 이상 혼자 겪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였다. 그리고 그의 손엔 송아가 선물한 유일한 '우산' 이 들려 있었다. 먼저 혼자 보내지 않은, 서로를 향한 생각이 참 예쁜 두 사람이다. 언제 봐도 므훗해 


지치고 지쳐 포기하고 싶어도 간절히 붙잡는 마음은 역시나 좋아함이다. 

송아의 뒷모습만 봐도 그녀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바라보던 동윤은 바이올린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점검하고 급기야 진로를 변경하기에 이른다. 강렬한 간절함이다. 소중히 여기며 이제까지 긴 시간을 품어 왔다. 시작이 늦었다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 않았다고 함부로 대해도 대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는 참 귀하다. 그렇기에 어렵게 잡은 바이올린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놓게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을 했다. 보통은 학부 내에서 학과를 전공하는데 반해 나는 학부를 옮겨 전공을 선택했다. 옮긴 학부는 복수전공자가 없었기에 주목을 받았고 그 후 2년은 교수님 연구팀에서 일했다.


송아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럴까. 물론 나와 그녀는 다르다. 내 경우엔 교수님 연구팀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면 송아에겐 절실한 자리였다. 그 마음을 교수가 모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서 코멘트에 #청춘은이삶을장악해야한다 의 글을 인용했었다. 짧은 이병률 작가의 글이 자주 맴도는 건 아마도 청춘 드라마 두 편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글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청춘의 시기에 좋은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른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흔들리고 불안한 시간인 청춘의 때에 그 길을 먼저 간 어른의 지혜가 혹은 배려가, 여러 모양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늦게라도 바이올린을 시작한 송아의 마음은 보지 않고 '늦었다'고만 말하는지. 제대로 된 도움 한번 주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이기심에 사용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못한 그들이 청춘의 또 다른 시련이겠구나. 이처럼 불필요한 부조리한 시련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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