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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14.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사 편 2

‘너무’라는 말이 이렇게 슬픈 부사였다니.


서로 같은 모양의 사랑을 한다는 걸 알게 되자 감출 것도 설명할 것도 없어졌다. 송아와 준영은 서로에게 이 마음이 들통나도 괜찮은 단 하나의 사람이 되었다.

준영의 연주는 아주 처음, 초반에만 기쁨이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는 기대와 부담이 얽히고설키면서 타인을 위한 행동이 된다.

그런 준영에게 자신의 마음은 어떠한지 물어봐준 이가 송아였다. 자신의 연주를 순수하게 즐기고 기뻐해 주는 오랜만의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가 행복에 대해 물었다. 이 역시 준영에겐 오랫동안 타인을 위한 감정이었다.


한 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아 놓기라도 하는 듯 의자 뒤로 깊게 몸을 숨겼던 준영이 행복을 곱씹다, 무언가 깨달은 듯 두 손을 모으며 몸을 의자에서 떼어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송아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한다. 지난번 연주 후 우연히 함께한 그녀와의 저녁이 그에게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작은 변화가 좋았다. 정말로 행복은 크고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말하던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처럼 말이다.


이 드라마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몽글몽글’이다. 아니 ‘간질간질’일까� 그건 단어가 아니라는 이성적인 지적은 거절하겠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밤의 공기와 맑게 흐르는 청계천 소리가 들리는 듯 한 장면에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남자 주인공의 고백과 여자 주인공의 끄덕임.


하... 준영아 이 정도면 내일이 1일이 돼야 하는 거야. 준영이랑 이웃집 도현수 둘 다 데려와서 뭐가 사랑인지 좀 알려주고 싶다.


너무 아름다웠던 이 장면으로 엔딩이 되었어야 했는데, 클라라라고 불리게 되는 이정경........ . 과 삼분할 컷으로 마무리된 지난주 엔딩이 몹시도 속상하다.

드라마 대사를 캘리그라피로 옮길 때 가능한, 할 수 있는 한 장면이 준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장면이 웃겼다면 재미있게 글씨를 올려보고, 슬펐다면 감정이 잘 표현된 장면을 사용했다. 하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캘리그라피로 담아낼 수 없는 시퀀스가 매 회 등장한다.


가령 4회 엔딩은 대사도 좋았지만 월광 소나타에서 생일 축하합니다로 이어진 준영의 연주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8회 토크콘서트의 교차 편집 역시 대사와 연출의 조화가 눈이 부신 장면인지라 손글씨 작업을 하면서 표현의 한계를 느꼈다.


토크콘서트 질문을 준비하면서 준영은 자신이 느낀 삶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송아에게 말한다. 콩쿠르가 싫었고, 연주자로서 삶이 괴롭기까지 함을. 하지만 어디에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다. 그의 앞선 대사처럼 관객들에게 연주자의 개인적 상황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관리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솔직한 마음과 모법적인 답안이 교차 편집되어 보였다. 이런 편집 방법은 자칫 잘못하면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하지만 #브람스 연출은 그런 면에서 참 훌륭하다. 오히려 연주자의 고뇌가 교차 편집에 잘 드러났다.


더불어 음악이 그에게도 위로가 되었던 순간이 없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면서 준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무게도 함께 전달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 드라마는 꼭 영상으로 보셨으면 한다는 것:)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드물게 대놓고 하는 드라마 영업입니다.


트로이메라이는 준영에게 오랜 시간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었지만 그래서 연주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곡이기도 했다. 폭넓고 다양한 곡을 연주해야 하는 연주자에게 금지된 곡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트로이메라이를 다르게 느끼며 좋아하는 송아를 만나 이제야 비로소 연주자가 아닌 듣는 이의 곡이 되는가 싶었는데. 정경이의 고백은 그저 안타깝다.


모든 사랑의 끝이 해피엔딩일 순 없겠지만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정경의 표정은 왜 괴로워 보이는가. 상처를 주고 끝내는 마지막이 과연 행복한 사랑의 시작을 만들 수 있다고 정경이는, 정녕 믿는 것일까.


다정히 병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차가울 땐 차갑게 돌아서는 준영이가 고맙다.

준영에게 화를 내는 송아를 보며 그녀가 단지 부러움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재능을 갖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주눅은 들어도 동경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다. 그 모든 노력을 존중하는 듯했다. 그녀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송아는 왜 열심히 하려는 걸까. 바이올린이 좋으니까,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은 아직 여전할까?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늘지 못해 괴로운 순간은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지금이 꿈같고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 준영이가 피아노에 대한 좋았던 마음을 기억했으면, 그래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속이 상해 화를 내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도 준영이 꼭 행복함에 젖어 연주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나의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 혹은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었고 시도나 노력도 해보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지금은 이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선 내가 좋아하는 요소도 분명 몇 개는 있다. 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삶의 방식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제법 잘하는 일'을 경시하는 것은 의외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한 때 취업 전선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게 바로 이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 인가. 여러 회사를 거쳐 지금은 (그나마)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지 못했던 시절에 참 괴로웠는데 이후 만난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관하여 속 문장은 크나큰 위로가 되었다. 갑자기 책 속 이 구절이 생각났네.


동윤의 마지막 멘트가 다소 오글거리는 하지만, 아마 동윤은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또 찾은 그 일이 좋기까지 한 아주 꿈같은 상황이다. 그가 이런 상황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꿈꾸는 일에 도전해봤고, 좋아하지 않지만 노력해보던 모든 시간이 길을 만들어줬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에 대한 고민부터 살아가는 삶의 모습까지 모두 귀한 것 같다.

물론 가슴 뛰는 일을 생각할 때 첼로보다 정경이가 생각난 현호는 너무 애잔하고.

저도 두 사람 보고 있으면 네, 기분이 좋아요.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 꼭 약속하는 것조차 설레며 쑥스러워하는


두 사람... 정말 가을가을이다(●’◡’●)ノ

준영과 발맞춰 걷던 송아의 걸음이 빨라졌다. 천천히 멀어지는 송아를 보던 준영은 잠시 멈짓, 갸우뚱하는 듯한다. 아주 짧은 몇 초의 이 장면이 좋았다. 아마 대사를 캡처하기 위해 장면을 몇 번씩 다시 보지 않았다면 놓쳤을지 모른다.


섭섭함이다. 은근 티 내는 송아가 귀엽지만 못 알아차리는 준영이도 귀여웠다. 전부 다 설레는 순간이었다. 내게 조금 더 털어놓길 바랬지만 그렇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사랑의 시작이겠지. 그래 친구부터 차근차근. 준영이도 천천히 마음을 기대는 법을 배워갔으면 좋겠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사랑한다. 비록 4수를 하고 입학한 음대에서 꼴찌이지만, 그래서 바이올린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짝사랑도 사랑이다. 재능이 있지만 음악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는 준영을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아주 오래된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힘든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더 노력하는 송아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무시도 묵묵히 듣는다. 그러면서도 타인이 가진 재능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고 시기 질투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처럼 순수할 수 있을까. 그건 그녀가 그만큼 바이올린을 사랑한다는 뜻일 수 있다. 그 마음이 전해졌기에 학생 어머니가 설득된 게 아닐까. 그리고 이 말은 어쩌면 준영을 보면서 그녀가 내내 생각했던 말일지도.



그렇지. 모든 고민은 내 고민이 아니고 친구 고민이지. 송아 너무 귀여워�

웬일로 바른말 하나 싶었는데. 역시 과장 웬수였어�‍♀️

송아는 조금 느린 듯 보인다. 말도 별로 없고 참기도 잘하고, 기다리는 것도 잘한다. 그래서 남들 졸업할 때 음대를 지원했다. 하지만 느린 듯 보여도 한번 마음먹은 일에 게으름은 없도 후퇴도 없다. 어릴 때부터 계속 취미로 연주했다고 해도 4수 만에 한국 최고 음대를 들어가기가 쉬울까.


비록 지금도 성적은 꼴찌지만 옆자리, 그 앞 줄 한 자리씩 앞으로 나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다. 말은 없지만 해야 할 말 까지 삼키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말로 학부모를 이해시키기도 하고 이렇듯 자신의 마음도 전한다.


송아가 고백했다.

한 주 느린 업로드 상 미래를 아는 자로서, 이 장면 뒤에 바로 어제 자 엔딩을 넣고 싶었다.


이사장은 준영에게 욕망이 없다고 했다. 비슷한 대사는 옆 집 #청춘 기록에도 나온다. 준영이와 혜준이는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이 눈으로 보이는 필드에서 뛰고 있다. 그런 주인공들이 욕망이 없다는 게 어딘가 의아했다..


일전에 읽은 #90년생이 온다 가 얼핏 떠올랐다. 기성세대는 요즘 세대들을 유약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방식대로 경쟁하기엔 시대가 달라졌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요즘 세대들은 그렇기에 불합리와 불공정에 민감하다. 목소리를 내는 분야도, 방법도 다양하다. 선뜻 움직이진 않지만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영향력이 상당하다. 또한 이들은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조화를 이루는 법부터 배웠다. 무조건적으로 경쟁이 싫어서, 혹은 유약해서 편한 방식을 찾아 살려는 것으로 보는 건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사장님이 준영이를 서운하게 한 것보다 준영과 현호, 정경. 이 세 사람의 관계에 어떠한 돌파구로 이들을 자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준영이도 현호도 떼쓰는 법보다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함을 먼저 배운 아이들이다.


책임감으로 세계 무대에 선 아이들은 결코 나약하지도 그렇다고 욕망이 없지도 않다. 아니, 이들이 바라는 욕망이 순수함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큰 욕망이 없을지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든 날. 그런 날 누군가 나의 안쓰러운 마음을 염려하며 다급히 찾아준다면 그 자체로 위안받을 것 같다.


준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송아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 하루 종일 외면받아온 그녀가 실은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음악에 담긴 여러 모양으로 위로를 받은 송아가 화사하게 짓는 미소에서 나까지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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