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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26.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사 편 1

(아직도 브람스 안 보신 분이 계세요? )

식당에서 꼬마가 바이올린 케이스를 보며 송아에게 묻는다. "언니 바이올린 잘해요?" 천진난만한 질문이지만 송아는 대답하기 주저한다. 그녀는 서령대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4수 끝에 같은 대학 음대에 신입생으로 들어간다. 뒤늦게 바이올린에 빠졌고 진로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응원을 받지 못 한다. 가족들마저도 이제라도 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라며, 삶에 안정을 선택하라는 암묵적인 메세지를 보낸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준영도 마찬가지다. 안식년을 갖기 위해 들어온 그에게 실력이 예전만하지 못 해, 외국에서 팔리지 않아 들어온거 아니냐는 뒷말이 들린다. 연주 실력에 따른 등수 매기기가 너무나 명확한 곳. 매일 평가 받는게 익숙하고 당연한 삶에서 송아나 준영이나, 순수하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다. 잘하냐는 질문에 "좋아해"라고 답하는 송아의 얼굴에선 씁쓸함과 그럼에도 바이올린을 놓지 못하겠는 절박하리만큼 좋아함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거라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마음도 좋을리 없겠지만, 응원 받지 못하는 움직임은 너무나 슬프다. 드라마는 소개 글 처럼 스물아홉 경계에선 주인공들이 사랑과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려나가겠지.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힘들던 그 때가 내겐 추억이 된 것 같아 미련한 마음으로 첫 회를 보았다.

#류보리작가 의 장편 데뷔작이다. 실패로 돌아간 브람스의 짝사랑을 모티브로 청춘들의 이야기를 얹혔다. 과연 사랑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의 삶이 불행하다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극 중 인물들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스브스는 작년 부터 감각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해 데뷔작을 올리고 있다. #스토브리그 #하이에나 그리고 이번 #브람스를좋아하세요 까지. 조금 기대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 업계있던 작가의 섬세한 필력이 음악과 대사에 집중하게 하는 감성적인 연출을 만나 극에 부드럽게 몰입시킨다. 듣는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만 있어 몰랐는데 여러 차례 비바람이 스치고 간 공기 속에 이제는 찬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에 맞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동윤은 악기사로, 경영학을 전공하던 송아는 바이올린으로 두 사람의 진로가 바뀌었다. 두 사람의 친구 민성은 동윤은 응원했지만 송아는 반대했다. 명문 서령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이 아닌 음대생이라니.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반대하는 민성이 이해된다. 하지만 여러 진로 상담을 해주며서 내가 깨달은건 '내 인생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말해줄 수 있지만 결국 선택은 네 몫이며, 내 조언은 무시해도 된다. 아니 무시해야만 한다. 그 사람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줄 것도 책임져 줄 것도 아니니까. 나는 고작 그 사람의 고민을 듣는 30분에서 1시간 남짓의 시간동안만 그 사람이 살아갈 삶에 대해 생각했다면, 내게 오기까지 그 사람은 숱한 밤을 고민했을 것이다. 고민의 시간, 농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 때는 진로를 자꾸 바꾸는 친구가 걱정되었는데 오늘 읽은 #당신이옳다 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진로는 몇 회까지 바꿀 수 있다는 법조항이라도 있는가. .. 열 번, 스무번 계속 바꾼다고 안 될 이유가 없다. 계속 바꾼다는 건 흔히 생각하듯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자기를 찾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당사자는 그런 자신에 대해 남보다 더 많이 자책하며 생각한다." 그러니 남은건 응원하는 것 뿐.

난 박은빈 배우님 연기가 담겨 있는 시선에 아련했는데, 댓글엔 실제 연주자들이 서로를 테그하며 오글거림에 오열하는 .... 현장이 되었다는 ㅋㅋ

준영은 피아노를 연주하는게 좋았지만 그 마음보다는 그가 처한 현실이 피아노 앞에 서게 했다.

생활비와 자신이 포기하고 싶을 때 손 내밀어준 이사장 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쳤다. 
콩쿠르를 즐긴적이 없었다. 매번 3-4kg씩 몸무게가 줄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다 2등을 했던 마지막 콩쿠르 후에 한국을 떠나 매일 다른 호텔에서 잠을 자며 국외 투어를 다닌다. 분명 좋아하던 일인데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는데 연주를 하며 행복하던 자신은 이제 없다. 그런 그의 연주는 훌륭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못 하나보다. 어른의 훌륭한 충고를 들은 그 밤 송아에게 들은 자신의 연주 이야기에 ‘갑자기 어떤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되었다. 무엇을 함에 있어 실력도 기회도 중요하지만 모든 중요한 요인에 나 또한 빠지면 안 됨을. 묘하게 닮은 두 사람이다.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는 극 중 인물들이 가진 어려움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생계를 위해 콩쿠르에 참가해야 했던 어린 준영은 국내에서 국외로, 홀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어떠했을지 들려준 이야기와 편집되어 보여준 장면들. 여러 약 병과 웅크러 누운 아이의 모습에서 외롭고 처절했을 감정이 자연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돌아온 한국도 그에게 머물 공간이 없었다. 고국이며 부모님도 계셨지만 정을 나누며 살기보단 자식에게 손을 벌리는 아버지에게 점점 지쳤갔기 때문이다. 덤덤한 나레이션 위에 브람스 특유의 음악이 깔리면서 좋아하는 일이 변질되어가는 고통까지 느껴졌다. 그나마 편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송아가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에게 생긴 작은 변화가 연주와 인생이 어떤 방향을 흐르게 될지. (매일매일 브람스 하면 안되나요? 작가님???)

스치고 스친 말들이 어느 날 하나의 문장이 될 때가 있다. 특별한 추리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 눈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쉬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송아는 준영이를, 준영이는 송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아게 되지만 모른 척한다. 그리고 몰라야 하는 상황을 모른 척 가려준다. 그 과정을 그린 연출도 미묘하게 변하는 주인공들의 표정까지 이처럼 짝사랑을 잘 다룬 작품이 있을까? 애틋함이 뚝뚝 묻어났다.

천천히 흐르는 이야기지만 고구마는 없다. 송아가 좋아하는 동윤. 그의 전 여친은 송아의 절친이기도 했다. 그래서 간직만하는 짝사랑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끝날지도 아는 짝사랑이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신만 모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세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갈테니. 송아는 자신을 위해 행동한 준영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길 부탁한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은 송아의 모습도 좋았고 이를 귀 담아주는 준영도 좋았다.


송아에게 음악은 위로보다 오랫동안 홀로 좋아한 짝사랑이다. 4년동안 이어진 불합격 통보는 그녀가 사랑하는 음악으로부터 받은 거절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미만 가득 담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났던 그녀의 말이 준영의 연주로 인해 생명을 얻는다. 자신의 생일 날, 가장 친한 친구의 고백으로 송아는 자신이 하고 있는 짝사랑의 슬픈 면에 부딪힌다. 그런 그녀를 위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월광을 연주해주는 준영. 그 곡은 어쩌면 그녀가 짝사랑한 동윤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 곡일 수도 있다. 그 사실마저 안 걸까. 월광은 부드럽게 생일축하곡으로 이어진다. 음악이 위로가 된 순간이다. 이 장면을 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잘 모르는 막귀가 들어도 김민재 배우의 연주는 훌륭했고 말보다 음악을 건넨다는 준영의 인물 성격도 잘 드러났다. 보고 있던 시청자 마저 울컥하게 만든걸 보면 음악이 갖고 있는 힘 또함 전달 된 셈이다. 이상  4부 엔딩을 꼭 찾아 보길 바라는  길고 긴 영업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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