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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26. 2020

악의 꽃 : 대사 편 2

아무래도 마지막 회 대사를 담다 보니 스포가 있을 수 있어요. 드라마를 보시지 않았다면, 보실 계획이시라면 잠시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

그가 화를 낸다. 원래의 그였다면 지원을 달래며 그녀의 감정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을 텐데 그에게 자신의 감정이라는 게 생겼다. 그렇게 깨달은 감정은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현실 또한 드러냈다. 그가 감정을 죽였던 건 살기 위한 부정이었단 나의 예측에 확신이 생긴 장면 인기도 했다.


도망치기도 바쁜 상황에 이런 사랑싸움이라니. 설정만 놓고 보면 어이없지만 오히려 ‘감성 추리극’이라는 장르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무진이는 날카롭게 백원장의 속 마음을 파헤친다. 그가 기자여서 그럴까? 아니다. 한 때 그도 사람이 들어 있는 포대 자루를 고라니라고 믿어버린, 알아차리고도 모른 채 한 첫 순간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김무진 기자는 이후 자신이 써오던 연재 기사를 통해 그 날의 일을 기사로 쓴다.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는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남은 사람’ 임을 기억하며 그 의무를 다 끝날 때까지 버틴다. 하지만 백원장은 모든 걸 잊는다. 과거로, 과거로 도망친다. 이 드라마의 진짜 악역을 꼽으라면 그래서 나는 백원장이다.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감정과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주 다른 일이다.

아무리 주인공 버프가 있다고 해도 살인은 안된다. 차형사의 단호함은 감정과 행동 사이에서도 인간다움을 놓아선 안됨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는 대쪽 같은 형사였다. 그래서 촌스럽지 않게 교훈적인 결과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은 마지막 회 등장해서 시청자 마음 애타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면 기억이 돌아오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도 올 것이 왔구나 했는데, 남자 주인공은 끝내 온전히 기억을 찾지 못 한 채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너무 강력한 스포인가)


그렇다면 백희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반전 카드로 극의 후반부를 책임졌던 존재감이 무색하게 사라져 버린다.


익숙하지 않은 마지막 회를 보면서 작가가 시청자 못지않게 ‘도현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가 오롯이 기억하는 건 15년 전 교통사고 까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신분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도현수로 살았던 시간이다. 그 뒤로 그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 인생을 살아야 했다. 작가는 그에게 진짜 도현수로 사는 삶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백희성에 대한 기억, 이야기는 모조리 지어버린 것이 아닐까.


사실 백희성이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벌을 받길 바랬지만 그렇게 해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그럴 때마다 현수가 언급되어 평생 가는 삶이 되는 것보다 이 편이 백희성에게 더 큰 죗값이고 현수에게 더 나은 결말이겠다.


물론 차지원만 놓고 보면 이토록 안쓰러운 사랑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사랑이 어마나 진심인지 안다. 도현수가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에 그에게로부터 받는 사랑이 귀했다. 그리고 안쓰럽게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원이는 강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 또 현수의 진심을 끌어낸다. 오늘도 지원에게 (대신) 고마운 마음이다.

현수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늘어간다. 누나와 지원에 이어 무진이, 은하와 차형사 팀원 모두까지. 이런 마음들이 쌓이는 인생은 결국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아빠보다 그래도 엄마가 낫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래 봤자 도토리 키재기겠지만 가거에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는 모습을 엄마는 종종 보였다. 친 아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들로 사는 현수에게 나름대로 마음을 썼고, 은하를 보면서도 그랬다. 그리고 이렇게 죄 값까지 받는다. 그렇기에 현수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엄마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반면 과거로, 과거로 도망치는 아빠는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아들을 평생 그리워만 하다 죽겠지. 비겁한 이에게 어울리는 죽음이다.

어쩌면 해수의 대사는 갈 길을 잃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시작점을 만들라고’.


태어난 날을 우리 인생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수는 시작점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되뇌어 보면 그녀가 말한 ‘시작점’은 ‘출발점’보다는 돌아갈 수 있는, 그래서 지칠 때 재정비를 해서 나아갈 수 있는 ‘원점’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정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점으로서.


차지원은 그런 의미에서 현수의 시작점이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 사람을 지켜주겠다고 한 차지원은 그에게 돌아갈 유일한 곳이다. 죽음의 길에서 생으로 돌아오게 한 그의 시작점. 그렇게 현수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주어진 시작점 말고 스스로, 살아가는 길에 시작점을 찾았다.



인스타그램에 먼저 올리기에 보통 대사 작업은 10컷에 맞춘다. 그렇다 보니 많은 대사를 옮기지 못했다.

그중에서는 기억을 잃은 현수가 결혼반지를 돌려준 뒤 작업을 하면서 손을 다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자, 지원이 목에 걸어 간직하고 있던 결혼반지를 그에게 다시 끼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백희성이 아닌 현수로서 그녀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는 현수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가족과 함께.


샛별이 머무는 뜰, 이라고 지은 가게 명칭에서 샛별은 금성 곧 지원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금성이 머무는 뜰이라고 하면 은하, 우주를 의미하는 것일까?

현수는 정말로 다 계획이 있었구나. 어떻게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명까지 감각 있는 우리 현수. 이제 정말 현수로 행복할 일만 남았다. 재미있었어요. #악의꽃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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