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

<역도 요정 김복주> MBC

by 양보

여자와 남자는 국가대표라는 목표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단한 시간을 보냈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서로가 있어 힘이 났다. 둘이 함께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함 속에 사랑이 꽃 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진다. 가난한 집안 형편은 여자의 선수 생활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좀처럼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 하나만으로도 벅찬 이런 상황에서 남자의 마음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태릉선수촌 입성을 앞두고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사랑이 사치란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몇 개월이 지나 그녀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이를 악물고 했지만 끝내 국가대표 선발에서 떨어졌다. 그가 필요했다. 역시 그가 없으면 안 됐다. 그녀에게 이제 잡을 건 그뿐이었다.


"그냥 너 혼자 설 생각해. 다 각자 인생이야. 동아줄 같은 건 없어."


남자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 날은 그가 앓고 있는 스타트 트라우마로 중요한 경기에서 실격을 받은 날이었다. 경기 직후 만나자는 그녀에게 그는 위로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버거움과 이별이었다.


그녀는 홀로 서는 법을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돌보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상처 입은 그를 알면서도 헤어지잔 말을 꺼냈다. 이별에 대한 생각을 하루 만이라도 미룰 순 없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하는 약하고 상처 입은 그는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결국 그의 아픔보다 자신의 조급함을 선택한 그녀는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대해주던 사람을 잃고 말았다.


만약 그녀에게 자신을 다독일 줄 아는 힘이 있었다면 두 사람은 달라졌을까?

언제나 그녀가 먼저였던 그를 위해 그 날 하루만큼은 자신의 조급함을 잠재웠더라면 그는 더 큰 사랑으로 그녀를 안아주었을 것이다. 그런 성품의 사람이라 그녀가 사랑했으니까.


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

나도 모르는 내 속을 다른 사람이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다 안다고 느끼는 건 행복한 착각이다. 다만 이 착각은 외로워진 순간 잔인한 이기심을 발동시킨다. 내가 외로운 건 상대의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오해하며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


생각해보면 나를 외롭게 만든 건 상당수 다른 이유였다. 과도한 업무가, 짜증 나게 하는 상사 놈이, 내가 처한 상황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살다가 혼자 놓이게 되는 그 잠시가 나를 외롭게 했다. 그때 전화를 받지 않는 그가 미웠고, 건성건성 답하는 그를 보며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건성건성 받지 않았다. 내 귀에만 그렇게 들릴 뿐이었다.)


텅 빈 그릇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 가득 채우라며 막무가내로 때를 쓰는 내가 거지 같았다. 내 사랑이 거지 같다니....


때가 되면 한 번씩 다시 보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에는 참 많은 명대사가 나온다. 그중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 설렘과 용기 이런 좋은 것만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통, 원망, 아픔, 슬픔과 절망도 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가 돼야 사랑이라던.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기대어 있는 사람(人)의 형태를 닮았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의지함으로 이 험한 세상 이길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내가, 어떤 날은 상대가 조금 더 힘을 내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엔 괜히 외로워지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외로움이 당신 때문이 아니라는 걸. 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전화를 들어 위로를 구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어봄으로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로 했다. 그래서 당신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나를 채워 주기도 하지만 내가 찾은 것들로 채워 놓아, 사랑하는 이가 텅 빈 그릇으로 나를 찾아올 때 넉넉히 받은 것에 두 배, 세배로 가득 채워주고 싶어 졌다.


그렇게 서로 기대어 사랑함으로 조금 더 오래, 함께 멀리 걸을 수 있도록. 건강한 사랑을 위해 당신이 있어도 외로운 나를 괜찮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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