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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하... 몰라. 바빠 끊어."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어깨와 귀 사이에 끼어 넣었던 핸드폰을 빼서 책상 어딘가로 던져 놨다. 안다. 조금 뒤면 후회할 행동이라는 걸.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였다. 사실 전화를 받기 전부터 발신자가 엄마라는 걸 알았다. 평소 통화보다 카톡을 선호하는 타입이기도 했거니와 보통 이 시간, 오후 4시가 되면 저녁은 뭘 먹을 건지, 몇 시쯤 집에 오는지 엄마의 확인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회사는 왜 때문에 퇴근 시간을 앞두고 일을 주는 걸까. 주 5일 중 3일은 현장에서 퇴근하는 스케줄이다 보니 내게 오후 4시는 사실 상 퇴근 직전, 가장 분주한 시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 시간에 걸려 오는 엄마의 전화를 다정히 받지 못했다.
일과 사랑을 균형 있게 담아낸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tvN, 2019)속에는 정말 많은 공감 대사와 현실을 풀어낸 메시지가 있다. 타미(임수정 분)와 모건(장기용 분)의 대사 중에는 나이 차이에서 오는 사랑과 일에 대한 견해에 공감이 갔고, 팀장 타미와 신입 아라(오아영 분) 사이 대사 중엔 마음에 담아 놓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하지만 내게 딱 한 문장만 꼽으라면 앞으로 소개할 장면에서 나온 차현(이다희 분)의 대사다.
차현은 우연히 배우 설지환(이재욱 분)과 인연이 닿았고 하루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촬영장을 찾는다. 하지만 현장은 주인공이 단독 행동으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인기가 많아진 설지환을 시기해서 자주 그를 괴롭혔고 촬영 순서를 마음대로 바꾸는 등 촬영장 분위기를 흐리고 있었다.
이때 차현이 말한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은 거지 왜 기분이 태도가 되냐고."
이 대사는 자신의 감정을 다독이지 못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범죄가 많은 요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당연한 말이 이토록 공감을 받다니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지만 반면 나는 그렇게 무례한 사람은 아니란 생각에 안심을 했다. 하지만 나의 안심은 섣부른 것이었다.
어느 날, 그러니까 내가 엄마의 전화를 짜증으로 받은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언가 해달라고 하면 짜증 내면서 해준 적이 없다고. 엄마도 힘들고 짜증 나는 날이 있지만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게 내가 아니며, 설령 그랬다 한들 어차피 해줄 건데 짜증을 내어 무엇하냐고 했다.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그 뒤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엄마한테 괜한 짜증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
맞다. 엄마는 죄가 없다. 바쁜데 왜 전화를 하냐고 엄마한테 짜증 부릴 게 아니다. 엄마는 내가 바쁜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예민하게 만든 건 일이지 엄마는 아니니까. 그걸 알면서도 자동적으로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으니, 나는 상황에 따라 기분이 태도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안에서 세는 바가지가 밖에서라고 안 셀까.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예민한 기운은 주변으로 쉽게 퍼져나가고 분위기를 얼어 붙인다. 그래서 오후 4시가 되면, 엄마에게 전화가 올 시간이 되면,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신다. 혹은 전화를 받기 위해 화장실이나 복도로 자리를 옮긴다. 잠깐의 움직임은 솟구치는 감정의 맥을 끊는다. 그렇게 금이 간 감정 바가지를 조심스럽게 관수하는 중이다.
일상에서 차현의 대사는 정말 자주 떠오른다. 그렇게 몇 번씩, 수십 번 생각하면서 이 대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설령 감정을 상하게 한 상대에게도 감정은 감정으로, 일은 일로 대하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유연한 성격이 아니라는 걸 오후 4시마다 깨닫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 대사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삶에서 내 감정을 조금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 작은 노력이 나를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