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nN
은희(한예리 분)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 오래된 친구 찬혁(김지석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혁아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지친 목소리에서 나온 그 말은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은희가 되었다.
은희는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래서 자신이 가운데서 비유를 맞추고 웃겨줘야 집 안이 화목하게 유지된다는 생각 속에 자랐다. 언뜻 보면 누구 하고도 잘 지내고 항상 웃는 초긍정의 사람으로 보이지만, 자기를 낮춰 버릇해 좋은 것, 멋진 것을 볼 때면 제 것이 아니라고 먼저 선을 그었다. 문학상까지 받고서도 글은 쓰지 않은 채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는 걸 보면서 은희도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 없어하는 그런 사람.
금요일 저녁 예상보다 늦은 외근 일정에 회사 동료와 나는 현장에서 바로 퇴근을 했다. 지하철 역으로 향하던 동료가 같이 광화문에 가서 맛있는 걸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광화문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광화문에 가고 싶다고 말한 건 나였지만 하루 종일 불편한 신발로 움직였던 지라 퇴근할 무렵이 되자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는 집으로, 동료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헤어진 동료로부터 카톡이 왔다. 불금에 자신이 눈치 없게 회사 동료와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면서 오늘 함께 외근을 나와줘서 고맙다고 커피 기프티콘을 보냈다. 그녀는 평소에도 커피 쿠폰을 보내거나 과일 주스를 사주는 등 자주 마음을 표현했다. 그날도 동네 지박령인 내가 이 곳에 다시 올 일 없겠다며 여대 앞 분위기에 즐거워하자, 자신이 예전에 살던 동네였다면서 잠깐 비는 시간에 이 곳, 저곳을 구경시켜줬다. 그때 사준 마카롱도 맛있게 잘 먹었는데 커피 쿠폰까지 보내다니. 받지 않으면 더 큼직 막 한 걸 보내고도 남을 그녀의 성격을 아는지라 나는 잘 마시겠다며 고맙게 받았다.
오고 가는 훈훈한 대화 마지막에 그녀가 내게 말했다.
"대리님은 좋은 분이에요! 응원해요. 정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언제 들어봤더라. 정말 좋은 사람은 함께 잇는 동안신경 써주고, 응원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는 당신인데.
그러고 보니 그녀는 자주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었다. 나는 자꾸만 숨기려 하는 캘리그라피 작업도 그녀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격려해주었다. 회사에서 업무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이번 에세이에는 그녀의 응원도 담겨있다.
자신이 싫다고 말한 은희에게 찬혁은 인생을 갈아엎을 수도 없고 어쩌겠냐며, 자신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종영되었기에 이후 은희가 어떤 선택을 내렸고, 어떤 길을 걷는지 알고 있지만 스포 하기 싫으니 비밀에 부치겠다. 다만 그녀가 결정을 내리고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건 찬혁의 오랜 응원이 만든 용기 덕분 일 것이다.
은희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동료가 건넨 응원을 낯부끄럽다며 손사래 치는 대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사실 누군가의 이런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거절해도 끝없이 부어준 신뢰와 응원은 구깃구깃해진 나의 자존감을 반듯하게 펴주었다.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내게 보낸 응원의 마음을 잡는다.
올 해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담긴 응원이 필요하다. 받은 만큼 응원하는 마음을 흘려보낸다. 서로를 향한 이 응원이 어려운 시기를 이기게 할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