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망을 바꾼 뒤부터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던 OTT 서비스를 텔레비전에 바로 연결해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생겼다. 운 좋게 집에 혼자 있게 되는 주말이면 이 기능을 사용해 하루 종일 드라마를 틀어 놓는다.
이번 휴가 때는 <나의 아저씨>와 <역도 요정 김복주>를 다시 봤다. 어두운 감정선을 다룬 드라마 이후 밝고 달콤한 청춘 드라마가 당겼다. 음식뿐만 아니라 드라마에도 단짠 조화는 진리다.
백색 소음처럼 드라마를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도망치듯 드라마를 볼 때도 있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무슨 일 있냐는 질문마저 버겁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 내 봤자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숨 고르기를 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틀고 이야기를 본다.
드라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일처럼 느껴지지만 내 일이 아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비밀을 이야기할 때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이야기인데'라고 운을 띄우고 자기 고민을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애매한 익명성을 방패 삼아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평소엔 잘 안 우는데 그런 날엔 드라마를 핑계 삼아 걸어 잠근 빗장을 풀어 눈물을 쏟아 놓기도 한다.
주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만 시청자로서 전지적 시점을 가질 수 있기에 악역을 짠하게 여기며 그가 잘되길 응원할 때도 있다. 그렇게 감정을 담아 내다보면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그럴 수 있구나, 그랬구나. 그렇게 이해가 내 주변까지 흘러 온다.
드라마는 만들어진 허구지만 대략 16부작이라 치면 8주, 최소 두 달을 내 일상에 존재한다. 삶의 일부가 되고, 친밀한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삶을 돌아보게 한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드라마를 볼 것이다. 등장인물의 대사와 표정, 이를 담는 목소리와 풍경, 어울리는 음악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통해 삶과 사람, 나를 향한 이해를 키워 나갈 것이다.
"당신에게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가 있나요?"
내가 즐겨 읽고 있는 '아무튼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 질문이다. 내게도 드라마는 좋은, 설레는 그리고 이처럼 피난처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아무튼,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