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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02.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대사 편 6

그런 해석 글을 본 적 있다. 비가 오는 건 송아 마음을 대변한 거라고. 바로 앞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각자 겪은 일로 예민해있었다. 예민함이 그 일과 관계없는 상대방에게 향했고. 다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자리를 피했다. 잠시 감정을 고르는 태도도 좋았지만 하필 비가 온다.


그동안 꽤 자주 비가 왔다. 그때마다 혼자 있던 송아 곁에 이제 준영이 있겠다고 한다. 힘든 일을 더 이상 혼자 겪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였다. 먼저 혼자 보내지 않은, 서로를 향한 생각이 참 예쁜 두 사람이다. 언제 봐도 므훗해 �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을 했다. 보통은 학부 내에서 학과를 전공하는데 반해 나는 학부를 옮겨 전공을 선택했다. 옮긴 학부는 복수전공자가 없었기에 주목을 받았고 그 후 2년은 교수님 연구팀에서 일했다.


송아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럴까. 물론 나와 그녀는 다르다. 내 경우엔 교수님 연구팀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면 송아에겐 절실한 자리였다. 그 마음을 교수가 모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서 코멘트에 #청춘은이삶을장악해야한다 의 글을 인용했었다. 짧은 이병률 작가의 글이 자주 맴도는 건 아마도 청춘 드라마 두 편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글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청춘의 시기에 좋은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른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흔들리고 불안한 시간인 청춘의 때에 그 길을 먼저 간 어른의 지혜가 혹은 배려가, 여러 모양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늦게라도 바이올린을 시작한 송아의 마음은 보지 않고 '늦었다'고만 말하는지. 제대로 된 도움 한번 주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이기심에 사용하는, 어른이지만 어른이지 못한 그들이 청춘의 또 다른 시련이겠구나. 이처럼 불필요한 부조리한 시련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쯤이면음대고발다큐가맞음  #송정희보다이수경교수가더싫음

#이수경교수_사기죄나기망아닌가_고소장날려


준영이가 불행한단다. 준영이 아빠가 왜 그렇게 계속 남들에게만 좋은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답을 찾은 듯하다. 준영이가 모질게 끊어내도 이사장 님이 이제는 정경이가 아버지의 주머니가 됐다.


정말 정경은 준영을 사랑하는 걸까. 그래서 그의 아버지를 도와준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의 발목을 잡듯 말할 수 없다. 준영의 피아노가 유일한 위로였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필요’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라면 모를까.


정경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른 것,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채우려 하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도, 누구의 필요도 아닌 홀로 오롯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송아에게 말한 연주에 대한 확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과거 행복했던 자신을 보는 지금 송아 마음은 어떨까. 그 마음을 찾고자 지난 영상을 다시 보는 것 일까.

왜 착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송아에게 이런 모난 생각을 하게 만든 건지. 밝고 건강하며 명랑한 세상이 판타지가 된 이유와 같겠지. 어른으로서 지켜주기보다 이용하려는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아무튼언니 에 선함과 강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나란히 쓸 수 있는 단어 일가 자문하던 작가는 선함과 강함에 대한 꽤 좋은 결론을 도출했다. ‘가끔 현실에 타협하고 자주 자괴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옳은 방향을 향해 엔진 없는 오리 배의 페달을 낑낑거리며 밟는 사람’이라고.


선한 마음을 지키려면 그만큼의 강함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여기서 말하는 강함이 절대 송아가 겪은 무례는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한 강함은 선함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사장 님의 마지막 인사가 정말 마지막인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너무 늦게 알았다고 그러면서 왜 또 정경이 옆에 있어달라고 하는지 좀 짜증이 났지만 손녀를 향한 마음이겠지 하고 이해했다. 무엇보다 늦은 속도라도 아이들을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있던 분 같아서.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흔하지 않은 모습인지라 아무튼 준영이 행복하게 연주하길 바라셨던 이사장 님이 건강하시게 엔딩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이사징 님이 돌아가셨다. 왜 모두를 찾아가 한 마디씩 말을 나눴는지 더욱 알게 되었다. 이사장 님의 떠남으로 아이들은 다시 모여 함께 연주하게 된다. 이사장 님이 남긴 말들을 복귀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저마다 깨달은 게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 다르게 오랜 시간 첼로를 해왔고 외국 명문대 졸업장에 수석 타이틀도 있다. 공연 경험도 많은 현호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돌려받는 삶이었는데 무엇이 그의 꿈에서 희망을 앗아간 건가.



실력과 인성까지 두루 갖춘 현호를 이사장도 연약하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없기에 정경이 짝으로 삼지 않았다. 어째서 독하고 모질어야 기회를 얻는 건가. 청춘도 고단하다. 젊음도 무한은 아니며 상처 받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착실히 자신의 길을 준비해온 성실한 인생 앞에 놓인 이해 안 되는 돌 뿌리들이 이 드라마 속 고구마이자 빌런이다. 음대 다큐멘터리 라는 댓글을 들었다. 언제까지 불필요한 부조리 속에 삶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까. 사는 것 자체로 힘든데.

‘언젠가 내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상처 받고 또 상처 받으면서도 계속 사랑할 것임을 그 날 알았다.’


송아가 낸 두 번의 용기는 바이올린과 준영을 만나게 했다. 그녀의 노력은 절대 무용하지 않다. 이 만남이 힘듬을 주기도 했지만 다시 그 상황이 주어져도 송아는 같은 용기를 낼 것이다. 바이올린과 준영을 몰랐던 시절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테니까.


드라마 초반 송아가 다짐한 마음을 다시 본다. 분명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할 것이다. 용기와 사랑의 마음이 더 큰 행복으로 그녀를 이끌 것을 믿는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괴로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몰랐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한 건가, 사실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닌가- 내 마음을 의심했다. 송아도 그런 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힘들면 안 되고 중도에 포기하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지금처럼 길을 잃은 것 같은 때는 잠시 쉬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나 다시 한번 #경우의수 에서 온준수가 한 말을 인용하고 싶다. 그래도 되지만 나는 송아가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길, 계속하길 바란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건 행운이니까. 그 마음속에 있는 이길 힘을 찾아내었으면 좋겠다. 행복해지도록.


좋아하는 사람에겐 싫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성숙하지 못해 불편한 감정을 지혜롭게 표현할 줄 모르기에 가능한 참았던 것 같다. 송아는 나와 같지 않겠지만 아무튼 이 말을 할까 말까, 어떻게 말할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을 테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을 준비하는 시간은 부정적인 생각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수반되기에 많이 힘들다. 무척 외롭다.


준영이가 말을 삼키는 이유를 송아도 안다. 알았기에 참고 기다린 건데... 기다려주면 곧 올 거라고 해 놓고 아직 준영이 멀다. 안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힘든 송아가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또 힘들다.

그럼에도 그 순간 모두 정직한 송아가 나는 그 어떤 인물보다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송아 언니 �)


준영이를 잘 모르겠다. 정말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 걸까.

트로이메라이는 송아가 듣고 싶어 했던 곡이다. 토크 연주회 이후 준영에게 트로이메라이가 갖는 의미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그리고 마지막, 이라는 말은 이래서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기대를 주니까.


개인적으로 정경이에게 트로이메라이에 대해서 그냥 루틴이었을 뿐이라고 그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기에 다시 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걸. 준영이가 자신을 기다린 것처럼 자신도 기다리겠다는 정경이에게 ‘기다림’에 대한 정의를 보내주고 싶다. 아니 무엇보다 준영인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두 사람이 헤어져서 정경이가 자신에게 오길 바라기보다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랬다. 그게 사랑이지. 정경이가 제발 사랑이 뭔지... 마지막 회엔 깨달으려나.


라고 적었는데 어제 정경이가 깨달았네요. 사랑이 아닌 질투였다고.... 집착이 한순간에 걷어져서 조금 허탈... 했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을 다잡고 다잡게 되는 날.

내게는 지난 주가 그랬다. 평소라면 별 일 아니라고 가볍게 넘겼을 일들이 모두 나쁜 의미로 해석되었다. 툭 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정에 현혹되지 말자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와 이른 잠을 청했다. 다행히 노력이 힘을 발휘 해 다음 날, 그다음 날이 되면서 다시 바르게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송아는 그러지 못했다. 마음을 잡아보려 했지만 바이올린마저 고장 나 버렸다. 마치 송아 마음을 대변하듯 무너져 버렸다. 마음을 다 잡으려 해도 상황이 도와주지 않는 안타까운 시간 속에 음악도 사랑도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쏟아부은 사랑이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녀가 한 사랑은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이기적이지 않았고 성실했으며 진심이었으니까. 받은 사람은, 바이올린은 귀한 마음을 분명 알고 있을 테니까.

남들보다 시작이 늦다고 했다. 남들보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남들과 비교당하는 동안 송아는 자신을 놓쳤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부족한 만큼 치열하게 매달렸던 그녀의 열심을 나 몰라라 했다.


결국 준영에게 이별을 고했다. 사실 송아는 준영을 사랑했지만 그를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힘듦, 지침, 외로움을 그에게로부터 보상받으려 함이 없었다. 기대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 기댐 역시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준영에게 상처를 받은 셈이다.


이제 자신을 돌아볼 때다. 함께해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시선은 필요하다. 이기적인 지도교수의 말, 시기하는 동료들의 시선, 급을 나누듯 평가하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채송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챙길 때다.


또 비가 온다. 앞으로 송아가 비 맞는 일 없게 해 준다던 준영은 그 말을 지킨다. 그리고 단 하나뿐이었던 우산을 준영은 잃는다. 비를 맞지 않아도 비를 맞은 기분이 드는 건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비가 왔지만 그러니 땅이 더 단단해지겠지.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비가 온다면 두 사람 모두 비를 맞지 않게 되길 그런 엔딩을 바란다.

준영이 정경이 집에서 연주를 한 날 그 자리에 참석한 마에스트로는 준영에게 오늘 그가 한 말을 해줬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연주는 콩쿠르에 가깝다. 정해진 연주법에 맞춰 연주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기술적인 면이 돋보이는 반면 개인의 감정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 모습이 오랜 시간 참아 온 준영과 닮은 듯하다.



이제는 모두에게 골고루 말고 누군가에게 10점 받는 연주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10점을 주는 그런 날을 맞이하면 좋겠다. 우리 준영인 그럴 수 있지.

아의 연주와 삶은 이미 여러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 해나는 자신이 정말로 바이올린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윤도 송아를 만나 마침내 가슴 뛰는 일을 찾게 된다. 이로서 중명되었다. 송아가 얼마나 바이올린을 사랑하는지. 증명할 일도 아니었지만. 어렵게 내린 결정과 용기가 이미 여러 사람의 가슴을 뛰게 했다. 결단코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않았다.


그리고 그녀 마음을 상하게 한 대학원 진학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교수는 그녀의 입시를 방해할게 불 보듯 뻔했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는다. 옆 집 정하도 그렇다니만 송아도 이런 관계 속에도 마무리에 최선을 다한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그래 왔다. 조금 느린 듯 보여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고 그 결정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송아는 이미 충분히 멋진 바이올리니스트다.

할많하않. 이런 남자를...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남자를... 정경이가 정말 정신을 놓았지.

현호 같은 남자 만나야 해. 아니면 옆집 경우의 수에 나오는 현재나. 어 둘 다 ‘현’이 들어가네..

김성철 배우님 다음엔 멜로 남주로 만나요. 고정 가겠습니다.

정말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본받고 싶은 어른은 팀장님이다.

오랜 친구이자 과거 연인이었을 그의 실수를 부드럽게 감싼다. 이미 알고 있고 자책하고 있을 테니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 하지 않겠다는 배려부터, 필요한 말을 돌려하지 않는 담담한까지. 언제나 팀장님의 말은 따뜻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실수였다, 하고 끝날 일은 아니다. 사과를 하고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드라마 상에선 선생님이 준영이에게 따로 사과하는 장면이 없었다. 준영의 졸업 연주를 듣고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그래도 나는 그가 시기함으로 떠난 게 아닌 창피해서 라고 생각하려 한다.


오히려 제자로부터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연주 연습을 할 수 있을 거고 잊었던 마음을 회복해 교수가 아닌 선생님이 될 거라고 믿으려 한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가 이렇게 옆에 있으니까.

송아가 친구 동윤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준영은 송아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다음에는 '너무' 많이가 아니라 앎 자게, 적당히 지나치지 않게 하라고 했다. 그 사랑이라는 거.


더 많이 사랑한 쪽이 지는 거라고 하던데 사랑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하냐는 수광의 질문에 재열은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 사랑이 진짜라고 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송아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렇기에 쉽진 않지만 포기도 할 수 있다. 사랑할 만큼 했으니까 후회가 없을 테다.


다만 준영의 포기는 마음이 아프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지쳤을 뿐. 아무래도 사랑은 적당히가 아니라 '너무 많이' 해야 하는 게 맞을 듯하다

#브람스를좋아하세요 에서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너무 많다. 감성적인 연출부터 인물들의 연기, 연주, 대사까지 입이 아플 정도다. 그래도 그중 가장 좋은 건 아무래도 '송아'겠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송아가 바이올린을 계속할지, 안 할지 결말이 궁금했다.


그리고 송아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기로 한다. 다만 홀로 하는 짝사랑이 지독해서, 힘들고 지쳐서 그 마음을 접는 게 아니라 충분히 사랑해서 그 시간을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상태로 그만둠이 좋았다.


사실 송아는 대학원 시험에서 합격했다. 지도교수의 치졸한 점수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당당한 합격이다. 열심을, 최선을 다한 그녀는 가슴이 뛰는 일을 또 발견한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짝사랑은 짝사랑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나는 송아가 천천히 걷지만 신중해서 가끔은 답답하게도 보이지만, 모든 일에 진심을 담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 설사 좋지 않은 관계라도 그 끝을 맺으려고 하는 마음 가짐까지 모두 좋았다. 채송아 그리고 이를 연기한 박은빈이란 배우까지 모두, 좋다.


브람스는 이젠 끝났지만 오늘내일 올라올 대사와 코멘트는 아무래도 '좋다'의 향연일 듯싶네.

송아는 우연히 준영의 페이지터너를 했던 그 날 준영에게 오늘도 좋았지만 그 날, 그러니까 연습실에서 정경이, 현호와 함께 있을 때 들었던 트로이메라이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그 날 연주를 떠올리면 마음을 건드린다고. 송아는 준영이 그런 연주를 할 줄 아는 연주자임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헤어지는 과정 속에 있지만 준영이 연주자로서 기쁨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던 것 같다. F.A.E. 소나타는 슈만이 요하임이 좋아했던 문구를 모티브로 작곡했지만, 브람스가 좋아했던 문구는 F.A.F 였다.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드라마는 시종일관 내내 그놈의 '트로이메라이'를 언급했다. 다시 보니 1화 소제목이 '트로이메라이'였다. 그리고 그 뜻은 "꿈"이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포기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만난 걸, 준영이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행복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꿈꿔야 하는 건 무엇이 됨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지, 바이올린, 피아노를 연주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는 인생을 살아갈 때 나침반으로 행복을 생각하자고 이야기하려 했던 건 아닐까.



마지막 회로 갈수록 작가의 글이 좋다는 생각이 자주만 들었다.


어느 드라마는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고 불필요한 갈등을 과도하게 심는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는 드라마 성격 상 그럴 수 있다, 이해하는 편이다. (난 짧은 글에서도 자주 길을 잃으니�)


브람스도 중간에 고구마 밭을 지났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갈등이 아니었다. 송아가 하는 고민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라서 우리 모두 같은 고민으로 힘들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어 그랬단 것은 아닐까 짐작됐다. 그래서 더 안타까워하고 응원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좋은 드라마였다고 생각하는 건 송아가 송아답게 그 문제를 이겨냈다는 점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기회가 뚝 떨어지거나, 우연히 누군가 만나 도움을 받거나 하는 전개는 없었다. 16회를 달려오면서 송아가 느끼고 깨닫고 그래서 다짐한 마음을 다시 떠올리면서 송 아답 게 마무리한다. 마지막 회는 유독 그런 수미상관 대사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 송아의 대답은 앞서 준영이 송아에게 했던 대사다. 송아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그에게 가려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그런 게 아니다. 우선 내가 추스려야 한다. 그렇기에 준영은 송아의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애매한 거절이나 괜한 뜸 들이기가 아님을.

아무래도 나는 류보리 작가의 다음 작품을 오매불망 기다릴 것 같다.


송아는 왜 바이올린일까. 어린 시절 취미로 배운 악기를 전공하고 싶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내심 궁금했다. 오랜 짝사랑을 끝낸 송아는 그동안 잊고 있던 바이올린을 사랑한 이유를 기억해 냈다. 두 발로 자신을 지탱하고 서야 흔들림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 바이올린은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닮았다. 사랑을 끝내려 할 때 미움과 상처가 아닌 사랑했던 첫 마음을 떠올리는 송아를 보며 이 사랑이 일방적인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정경이도 누구의 그림자도 없이 홀로 서서 연주하는, 확신 있는 삶에 들어 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거친 바람을 지나오는 동안 모두 한 뼘 이상 자랐다.




이 회사 참 좋다.

악기를 그만두려는 듯 한 생각이 내포된 질문을 받아도 호기심으로 묻지 않는다. 그보다 악기를 사랑한 송아의 마음을 아는 사람으로서, 먼저 겪어본 경험자로서 헤아림으로 답한다. 천천히 안녕하라고. 이별에 대한 예의를 알려줌으로 송아가 새로운 시작을 잘 열 수 있게 도왔다.


배려하는 행동, 챙기는 성정이 나도 모두에게 있는 흔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음을 경험했다. 인정해주는 말은 한 숨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의 장점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송아에게 '아니요'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팀장님의 그 단호함 속에 송아를 향한 사랑이 느껴졌다.


저 때만 해도 난 이직이나 진로를 변경하려 할 때 숨기기 바빴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온 걸 왜 포기하냐는 말들이 무서웠고 스스로 실패자란 생각에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물어봐야 한다. 먼저 경험한 사람 중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가 물어야 했다. 가까이 있으면 좋지만 멀리 있어도 DM이나 이메일 등으로 묻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노력임을 이젠 안다. 


그렇게 얻은 지혜는 그래서 시작을 하든, 하지 않든 기회비용을 줄이고 신뢰할 사람을 얻게 되기도 한다. 지혜로운 송아를 알아본 이 회사의 안목이 높다. 그래서 경후 문화재단... 입사 서류 어디로 제출하면 될까요?



대사와 대사 사이 참 긴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은 순간 나의 숨까지도 참게 했다. 그렇게 숨 죽이게 하는 침묵은 가슴 깊은 곳까지 감정을 보냈다. 먹먹함과 벅참이 들었다.


가끔 같이 브람스를 보던 엄마는 '조용한 드라마다. 그래서 예쁘다.'라고 말하곤 하셨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는데 나는 침묵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잔잔한 파도는 부드럽게 발목을 감싼다. 브람스는 시종일관 내내 그렇게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고 갔다.




바이올린의 경우 몇 천년 전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계속 사용될 수 있는 건 연주자의 사랑으로 인함이 아닐까. 아는 바이올리니스트에서 공연기획자로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 대리님의 조언처럼 천천히 악기와 이별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즐거워서 빠른 이별을 맞았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더 좋은 사람에게 가서 많이 사랑받으며 사용될 수 있도록. 그래서 오래 생명력 있는 악기로 살아 있길 바라는 송아의 애정이 담긴 이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송아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도 좋았겠지만 애쓴 노력에 집착하지 않은 결말이 좋았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잘하는 일을 만났는데 그 일이 즐겁기까지 하다니, 송아가 행복해져서 좋다. 그리고 송아의 오른손에 반지를 끼어주는 준영이를 보면서 그녀를 자신의 어시스트나 조력하는 배우자가 아닌 여전히 바이올리니스트로 그리고 기획자로 존중하는 모습에서 다시금 반했다. 이래서 준영의 위로가 컸다고 말하는구나. 그리고 준영이 송아와 함께 행복해 보여서, 그의 연주가 누군가 마음을 울리는 그런 연주자가 된 것 같아 기뻤다.


오랜만에 세상 꽉 막힌 해피엔딩을 보았네. 이 꽉 막힌 행복한 결말에 나 역시 행복해졌다.

잘 가요 브람스, 쏭쭌커플

추워지는 가을 문턱을 넘을 때마다 생각하며 그리워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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