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사
2018년 인생의 급변기를 맞았습니다. 8배속 빨리 감기로 지나간 2018년이었죠. 집안의 숙원 사업(?)으로 여겨지던 결혼과 동시에 지금은 조이사 이외의 시간을 온전히 독차지하는 예쁜 딸도 갖게 되었고, 10년 동안 광화문 일대의 증권사에서 일하다 데이트하러 멋 내고 오던 청담동에서 미술 관련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꽤나 즐기며 하던 일은 한때는 도박이라고 내몰리기도 할 만큼 위험한 상품인 , 레버리지가 높은 주식 옵션을 운용하는 포지션이었습니다. 레버리지가 높기에 투자금 대비 큰 이익을 볼 수도 있었지만, 원금 이상의 손실을 순식간에 초래할 수도 있었죠. 요 며칠 한국 경제 퍼펙트 스톰 설이 퍼질 만큼 안팎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지만, 제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트레이딩을 시작하던 시기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수년간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시작되기 불과 두 달 전이었습니다. 서서히 몰려오는 공포의 변동성을 직감하고 대처하기엔 첫 직장 생활이 설레기만 했던 주니어였기에 그 시기를 정면 승부하며 처절하게 배워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변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극단적 공격적 투자자 성향을 갖고 있던 저에게는 요란하게 출렁이는 금융시장은 큰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기회가 보이는 오히려 설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호기롭게 말하기엔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The Wolf of Wall Street, The Big Short, Margin Call 등에서 묘사되는 트레이더들은 컴퓨터 화면에 둘러 쌓여 다이내믹한 환경에서 빠른 호흡으로 일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한 번의 클릭으로 벌기도 합니다. 솔직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민의 여지없이 이 직업을 택하게 된 것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그 이미지들 때문이었습니다. 공대생 아재 김PM님 마저 촉촉하게 느껴지는 초 건성인 저에게는 사람들과 대면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고, 내가 내린 판단이 숫자로 바로 보이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명쾌했고, 또 돈마저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으니 세상에 이만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옛이야기를 쑥스럽게 쓰고 있는 곳은 트레이시 에민의 <I wanted to go with you – to Another world>가 전달하는 압도적인 외로움과 고립감이 묵직하게 자리 잡은 프로라타 아트의 뷰잉룸입니다.
미술 시장이 궁금했습니다. 더 솔직하게는 미술 투자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보던 주식시장에서는 공개된 공정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분기마다 감독 기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회사는 실적을 성실하게 발표하고, 기업을 직접 탐방하고 Comp Analysis를 한 전문가의 자료는 누구든지 쉽게 얻을 수 있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도 매일 뉴스가 쏟아집니다. 물론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본인만의 지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시기적절한 판단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소위 말하는 “감”도 필요하기도 한 것 같고요. 사이드카, 서킷 브레이커가 연속 발동하던 마치 금융시장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던 10년 전 이맘 때도, 환율이 3년 최고치를 매일 경신하는 요즘도 패닉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가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술 시장은 주식 시장과는 달리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시장으로, 옥션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래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래 정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Mei Moses Index, Artprice100 Index, Artnet Index 등 미술 시장을 대변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점차 늘고 있지만, 전 세계 미술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프라이빗 거래는 반영되지 않은 반쪽 시장 지표라고 할 수 있죠. 또한 옥션 데이터 자체가 지니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옥션에서는 성공적으로 낙찰되었던 작품, 즉 가격 상승률이 견고했던 작품이 반복적으로 등장해서 결과를 만들기에 위의 지표들은 승자 독식 편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품 본연의 특성상 정량적으로 가치를 매길 수도 없고, 접근 가능한 정보도 한정적이며, 폐쇄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소액이라 해도 어떤 작가에, 어떤 작품에 투자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고 시작조차 어려운 미술품 투자이지만, 종종 들리는 미술계 소식은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역사상 최고가인 4억 5천30만 달러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Salvator Mundi>는 1958년에는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단돈 45파운드에 팔렸었습니다. 그 이후 소더비를 통해 2013년에 Yves Bouvier가 8천만 달러에 구매했고, 자신이 딜링을 맡고 있는 러시아 부호이자 AS모나코 구단주인 Dmitry Rybolovlev에게 불과 몇 주 후에 1억 2천7백50만 달러에 되팔았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 Dmitry Rybolovlev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역사상 최고가인 4억 5천30만 달러에 <Salvator Mundi>를 되팔았습니다. 단순히 계산을 해보자면, <Salvator Mundi>는 1958년 거래로부터는 무려 59년 동안 연평균 31.4% 가격 성장을 한 셈입니다. 진품 논란 해프닝이 있었을 당시로부터 성장률을 계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도한 차액을 남긴 혐의로 Yves Bouvier를 고소한 Dmitry Rybolovlev의 수익률은 어떻게 될까요? 그의 연평균 수익률은 무려 37.2%입니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장기적인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New Normal 시대에서 “미알못”이고 미술품 투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구경만 하기엔 너무나도 현혹적인 수익률입니다.
4월이면 Art Basel에 방문하기 위해 극 성수기 요금을 기꺼이 지불하고 매번 출장으로 갔던 홍콩을 방문하는 주식 투자 꾼인 예전 직장 동료들이 있습니다. 또 가을이면 아기 사진을 깨알같이 올리던 친구들이 KIAF를 방문하고 찜한 작품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합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제 주변에서조차 일고 있는 미술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프로라타 아트의 회원과 뷰잉룸 방문객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0년 전 첫 직장 시절의 열정으로 프로라타 아트를 시작한 지 1년 반쯤 되어가는 지금, 아직도 우리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조심스럽게 광화문을 벗어나 미술에 직접 뛰어들길 잘했다고 스스로 얘기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