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라타 아트 Sep 20. 2019

미술은 더 쉬워져야 한다.

/ 미술 문외한 김PM

예전 삼성전자에 경력직으로 입사를 하였을 때, 여러 가지 사내 교육을 받고 또한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재미있었던 강의도 그렇지 않았던 강의도 있는데 유독 하나의 강의 내용이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안타깝지만 좋지 않은 쪽으로요.


기억이 정확치 않으나 강의의 제목은 ‘클래식 어렵지 않게 감상하는~’ 뭐 이런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모두들 짐작하시겠지만 지극히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김PM은 클래식 음악이라고 문외한이 아닐 리 없겠죠. 그래서였는지 나름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클래식이라고 별 거 없다. 예전처럼 그렇게 형식에 얽매여 즐기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이 알고 적게 알 고의 문제가 아니다. 네가 느끼는 것이 정답이다’라는 류의 클래식 음악 울렁증을 가진 김PM과 같은 부류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강의를 기대했었죠. 


강의 내용은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클래식 기초 강의였죠. 오히려 조금 더 가혹하다고 느꼈을 정도로요. 기억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아래 기술한 하나하나의 내용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용이 맞고 틀리고 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브리티시 갓 탤런트의 폴포츠가 경연에서 불렀던 네순도르마는 원래 그러한 음역대의 가수가 부르는 아리아가 아니다. 그런데 폴포츠와 그 영상이 유명해지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그 노래가 유명해지고 무례하게도 어떤 클래식 가수에게나 그 노래를 요구한다.

클래식 음악 도중 박수는 아무 때나 치는 것이 아니다.

커튼콜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룰이 있다.

우리나라는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듣고 자라지 않아 기본적 이해가 많이 부족하므로 배워야 한다 등


강사분은 이러한 류의 내용을 많이 얘기해 주셨었어요. 뭐랄까 그냥 클래식 기초에 대한 강의인데 그때그때 시류에 맞게 강의의 제목만 바꾼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망감도 매우 컸었던 기억이 납니다.


Britain's Got Talent에 나온 폴포츠 (youtube / Britain’s Got Talent)


어쨌거나 당시 강사분의 결론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이었고 제가 이전 글에서 썼던 것과 같이 미술 역시 아는 만큼 조금씩 재미있어지는 것은 사실이니 강사분의 결론에 굳이 반박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클래식 음악도 그렇고 지금 제가 있는 미술업계도 그렇고 왜 대중에게만 자꾸 배우라고 하고 업계 자체에서는 대중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왜 그 자체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알게 해주는 기회 제공에 그리도 인색할까라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미술도 음악도 사람들이 즐기는 대상이 되어야 할 텐데. 즉, 일종의 서비스일 텐데 왜 이렇게 서비스 제공자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대중에게 불친절할까라는 점입니다.


나름 이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1. 그 태생에서 오는 특성 때문이지 않을까? 미술과 음악(특히 고가 미술품과 클래식 음악)은 사람들에게 즐길거리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즐기는 주체는 모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태생부터가 즐기는 사람의 기본적 수준을 전제하고 만들어졌으므로 즐기기 위한 기본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즐기려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할 뿐 미술과 음악이 그 수준의 기준을 낮추려는 시도는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을 해 봅니다.

2. 귀중품이나 명품과 같이 어느 정도는 사람들의 허영심에 소구 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1번의 이유와 조금은 연결되는 의미에서 모두가 즐기기 쉽지 않기 때문에 반대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계속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렇게 그 일부의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계속 남기 위해서 모든 대중에게 일부러라도 친절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았었을까라고도 생각을 해 봅니다.

3. 마지막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열린 시장이었어도 충분히 큰 시장이 아니었을까? 굳이 시장에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지 않아도 해당 생태계 안의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 큰 시장이므로 굳이 공격적으로 새로운 대중의 자본을 끌어올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었을까 생각됩니다.


결국 클래식 음악과 미술은 흔히 아는 보석과 명품들과 유사한 성격의 일종의 사치품과 같은 성격을 지녀 그 눈높이를 대중에게 맞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불친절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30억원에 낙찰된 핑크 다이아 몬드(이미지: DAVIS) 와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이미지: The Richest)


하지만 이제는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죽어도 할인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명품업계에도 세일 광고가 붙고 있으며, 고가의 자동차도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금융적 장치도 생기고 있습니다. 솔직히는 해당 업계가 선의로 대중들에게 수혜를 베푸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포화된 시장에서 계속적인 성장을 하여야 하는 자구책이지 싶지만 소비자 입장에서야 옵션이 늘어나는 현상이 싫을 이유는 없습니다.


명품 아웃렛 (신세계 그룹) 과 독일 수입차 업체 파격 세일 관련 기사 (파이낸셜 뉴스)


미술과 클래식 음악 시장도 그렇게 변화의 바람에 편승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을 해 봅니다. 예술 시장도 이제 새로운 자본의 유입이 필요한 시점이니까요. 그리고 업계 안에서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곳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미 많이 봐 왔던 현상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


그래도 굳이 위와 같은 시장 논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저는 이 고급스러운 시장이 대중에게 그 매력을 알리려는 시도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게는 요즘 들어 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은 분명 재미있는 일입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도 아마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오해는 마셨으면 합니다. 미술을 전혀 몰랐던 지난 제 시간이 엄청나게 피폐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재가 생긴 것은 분명하고 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기는 합니다. 그래서입니다. 저는 미술과 클래식 음악이 더욱 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게도 즐길거리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고 제 주변에 있는 감성 메마른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미술을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보니 그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마지막으로 보석과 명품가방, 고가의 자동차와 비슷한 사치품적인 특성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하더라도 미술과 음악은 그래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상품이기 때문에 미술과 음악은 더욱더 즐겨져야 그 가치가 더할 것입니다. 같은 기능을 가진 자동차와 명품가방은 많이 있어도 완전히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 여러 개 일 수 없으므로 더욱 보이고 들려져야 예술 본연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미술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어찌어찌 몸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쭙잖게 약간의 사명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즐거움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서요.








작가의 이전글 영화 마을에서 넷플릭스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