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폴리 <우리도 사랑일까>, 한중섭 <결혼의 종말>
일찍이, 그다지 유별나다고 할 것까진 없지만서도 그렇다고 불행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온 저로서는, 다시 말해 일찍서부터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어떠한 환상을 가지지도, 기대를 품지도 못 했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가난을 모르고 살게 해 준 부모님 당신들께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면서도, 돈에 침식되고 사람에 치여가며 흘러간 삶에 속수무책으로 깎여 나가버린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결혼 생활이, 마모된 타이어만큼이나 아찔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어머니, 아버지로 불리기 이전에 그녀이고 그였을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누구나 그렇듯, 소소하고 앙증맞게 시작됐지만 결국 결혼 서류와 두 자식들이란 밧줄에 포박당한 채 끌려가는 모양새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 이야기는 끝을 맺었지만, 그럼에도 돈과 자식 때문에 별거하지 못하고 한 집에서 계속 살아가야만 했던 두 분의 비통한 심정을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사랑과 결혼은 고상한 게 아니라 고약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뿐이 없었습니다. TV 드라마나 주변 친구들의 (화목하진 않더라도 고성과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는 부부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가정환경은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라기보다 저와는 무관한, 영원히 가닿을 일 없는 전혀 다른 궤도일 뿐이었습니다. 때문에 유년 시절부터 제 안에서 발아하기 시작한 사랑관, 결혼관 같은 것들은 그렇게 저의 불행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갔습니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삶에 있어 결혼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그다지 매력 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썩 형편없게만 느껴집니다. 행복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왔다는 점 때문에,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쩌면 부정적으로 느껴지실) 제 생각에 있어 면죄를 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겪었던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닐 뿐더러, 사랑과 결혼이란 것의 뒷면을 그저 남들보다 조금 일찍 봐왔을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는 저보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상황 속에서도 되려 그것을 타산지석 삼아 행복한 결혼 생활의 꿈을 가지거나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존경해 마지않지만, 다만 저는, 그런 생활을 누리기까지 각고의 노력과 함께 부단한 희생을 짊어질 배짱이 없는 인간이라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또 일말에는, 제 피부 밑에서 흐르고 있는 그것들은 여지없이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혹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두려움 또한 조금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적마다 해결보단 회피를 택했던 지난 시절의 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할 때 그 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곤 하는데, 이러한 점들 때문에 결혼에 있어 여전히 제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좌우간 결혼이란 것은 인생을 꼼짝없이 포박당하는 것일 수도, 안전하게 정박하는 것일 수도. 하여 누군가에겐 덫이기도, 누군가에겐 닻이기도 하겠습니다. 혹 당신은 제게, 결혼을 해보지도 않고서 어찌 결혼을 논하느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먹어보지 않고 어떻게 음식을 논하겠냐만은, 우리가 죽어보지 않았다고 인생을 논할 수 없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 글은 어떠한 언명도, 선언도 아닙니다. 이건 독백이면서 방백입니다. 일기이며 편지입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지 않길 바라면서, 닿길 바랍니다. 이 글의 제목과 동명인 영화의 대사처럼, 그저 사랑만 하다 죽는 것도 썩 나쁘진 않겠습니다만, 제가 그 위에 얹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이제는, 짧은 행복을 위해 긴 이별을 마주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