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좋아하지 않아도, 홍상수(의 영화)는 좋아한다. 2015년 개봉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그의 영화를 처음 접하고서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쉬 잊히지 않는다. 당시 홍상수 감독을 유독 좋아했던 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의 영화를 보게 됐는데, 친구와 헤어지고 집 가는 길에 전화통화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투기까지 했다. 불쾌함과 통쾌함, 내 감상은 어떤 명확한 지점에 머물지 못하고 메트로놈 마냥 둘 사이를 갈팡질팡했다. 어쩌면 당시에는 불쾌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찍는 그 유명한 방식도 내겐 너무 무성의하게 비쳤고, 극히 현실적이면서 이질적인 대사들, 또 그런 대사를 내뱉는 배우들의 연기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서사는 별 볼 일 없고, 카메라는 게으르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모두들 그랬듯, "야, 이게 영화면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호기로운 발언을 시작으로, 결국 나는 홍상수를 좋아하게 됐다.
어쩌면 내 인생과 무관했을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 인해, 그리고 유달리 홍상수 감독을 좋아했던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본격적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빠지게 됐다. 그 친구는 <북촌방향>에 나온 대사 한 구절을 외워 다닐 정도로(언젠가 내게 한 번 그대로 읊어준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긴 대사여서 놀랐다) 홍상수 감독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친구를 좋아했다. 네 취향을 내 취향으로 만들어야만 너랑 밤새워가며 이야기 나눌 수 있겠구나, 싶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하나 씩 격파해 갔다. 또 그즈음, '힙하다'는 표현이 국내에서 유행처럼 번졌는데, 소위 힙스터라 불리는 이들의 마이너하고 힙한 취향을 고양시키는데 홍상수 영화만 한 것이 또 없었다. 이태원 힙스터가 되고 싶었던 일산 찐따는 그 흐름에 올라 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마구 섭취했다. 결국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됐지만 어쩐지 함부로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웠다. 그의 영화를 소비하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변질됐기 때문일까. 순전히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 취향을 좋아하는 건지 나조차도 헷갈렸다. 얼마 안 가 힙하다는 말이 전혀 힙하지 않게 되고, 김민희 배우와의 스캔들, 그의 작품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 등 고름처럼 농익었던 이슈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홍상수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쳤다. "홍상수 영화 좋아하는 남자는 믿고 걸러야 한다"는 지인의 말이 더해져 나는 소라게처럼 더욱 움츠러들었다. 가끔씩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나는 늘 홍상수 감독을 제외시켰다. 그(와 그의 영화)를 싫어한다고 말해야지만 도의적으로 옳은 일인 것만 같았다. 줏대 없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며, 참 홍상수 영화 속 그 찌질이가 여기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다행히 주위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그래, 나 홍상수 영화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니는 노릇은 아니지만, 이제는 창작자와 창작물을 분리해 바라보게 됐고, 정말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재밌어졌다.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고집적인 요소들, 의미 없(어 보이)는 대사들의 반복과 변주, 롱테이크, 정적인 카메라도 마냥 재밌고 정겹기만 하다. 또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찌질하고, 내세울 만한 거라곤 알량한 자존심뿐인 영화 속 남자들, 아주 딱 내 모습이다. 영화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데 재미없지 않을 수가 없고,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뢰즈가 어떻고, 푸코가 어떻고 그의 영화를 비평하거나 논리적으로 분석해 낼 깜냥은 안 되지만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감화됐다. 영화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하면 홍상수 영화에 대한 이런 내 긍정적인 생각도 달라질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엔 좀 늦은 감이 있달까. 그래요, 저 홍상수 영화 좋아합니다.
왠지 모르게 그의 영화는 꼭 종로나 어느 지방의 아트하우스에서 봐야 할 것만 같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거리의 찬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와중에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나를 기다리진 않나, 하며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우스꽝스런 일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정말 그의 영화 속 인물들과 내가 많이 닮아버리고 말았다. 멋진 주인장이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고, 혼자 영화를 보고 나와서 고궁을 산책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하게 됐다. 서촌과 북촌을 들락날락거리고, 황태구이 잘하는 집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똑같은 말을 여기서 한 번, 저기서 두 번 반복하고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내뱉기 일쑤다. 쉽게 취하고, 쉽게 말한다. 이 정도면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어쩌면 무책임한 말이다. 홍상수 감독과 그의 작품들을 저 한마디 문장에 가두어 평가할 순 없는 일이다. 나도 그의 작품들 중 몇 편은 좋아하고 몇 편은 덜 좋아하고 몇 편은 안 봤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와 토마시가 우연히 처음 만나게 됐을 때, 테레자는 토마시의 손에 들린 책 한 권과 그에게서 주문을 받은 순간 흘러나온 베토벤 음악을 통해 그와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긴다.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이런 질문을 건넨다. 여러 영화감독들 중에서도 반응이 가장 극명하게 엇갈린다. 테레자만큼의 의미부여는 아니지만, 저 질문을 하며 그 사람과 나와의 신호를 맞춰보는 정도랄까. 물론 싫어해도 좋고 좋아하면 더욱 좋을 따름이다. 그냥 영화에 대한 수다나 더 떨자는 뜻이다.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네? 좋아한다고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