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가 들면서 자발적 집순이가 됐다. 외출이 즐겁지만, 집에 와야 편안함을 느끼고 외식이 좋지만 귀찮아도 둘이서 집밥을 해 먹는 게 행복한 사람이 됐다. 집에서 함께 ‘놀’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집을 ‘빨리 들어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다행히 10년 동안 이를 지킨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최근에는 혼자여도 즐거운 삶을 살자는 생각을 한다. 각자 일이 있는 만큼 매번 붙어있을 수도 없고, 남편의 출장도 잦아진 터라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 탓도 있다. 하루 중 붙어 있는 시간만 행복하다면,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은 불행하다는 말일 테니까.
혼자서도 즐거운 방법이야 많겠지만, 나의 경우엔 취미생활을 하는 걸로 그 시간을 채웠다. 덕분에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던 수영을 접영반까지 6개월 다녔고, 큰맘 먹고 들인 미싱으로 못 입는 옷들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냈다. 마크라메도, 캘리그라피도 배웠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 집 소품을 만들 정도랄까. 예전에는 일밖에 몰랐던 내가 이 정도면 취미 부자라 할 만하니 혼자서도 안 즐겁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이사를 하면서 내 방 역시 취미생활로 가득 채워진 공간으로 만들었다. 책상은 방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만큼 주업인 일은 물론 부업인 내 글을 끄적이는 공간이었고, 책상 우측 벽으로는 책장을 둬 하나둘 모아둔 소중한 책들을 나만의 분류에 맞게 진열했다. 좌측으로는 취미존을 만들었는데, 캘리그라피 재료를 아래 슬라이딩장에 두고, 위로는 다양한 소품으로 꾸며 기분이 좋아지는 컬러풀한 공간을 만들었다.
미싱은 대우가 남달랐다. 그동안은 방 한쪽에 조연처럼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 집을 꾸미는 만큼 베란다 하나를 미싱존으로 꾸며 원단이며 각종 부자재를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다. 덕분에 길이가 긴 커튼을 집에 맞게 자르고, 필요한 소품도 서툰 솜씨나마 만들었으니, 충분히 그 쓰임을 다하고 있다.
어디 나만 신이 났으랴. 남편 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남편의 책상은 프로그래머인 그의 직업을 대변하듯 큰 모니터 두 대와 패드가 차지했고, 책상의 앞쪽으로는 예전 집에 쓰던 텔레비전을 대형 모니터 삼아 레이싱 게임 체어를 뒀다. 문이 열리는 쪽 벽으로는 서랍장과 장식장을 두어 오랜 취미였던 카메라장과 관련 소품을 넣어뒀는데, 조명을 사이사이 배치해 들어가면 불빛이 번쩍거렸다.
남편 방에 붙어 있는 베란다는 내 방보다 두 배가량 컸는데, 그곳은 남편의 공구존이었다. 그동안 사 모은 망치며, 펜치며, 나사에 부품까지. 모아보니 베란다가 좁을 지경이었다. 정리가 다 되고 난 뒤에는 저곳에서 납땜도 하고, 작업도 하고 싶다니. 나와 다르지만 그의 취미를 존중해야지.
각자 놀 것도, 할 것도 가득 채워뒀지만 우리는 여전히 둘이 있을 때 행복하다. 게임을 싫어하는 나에게 자꾸 남편이 게임을 권하는 것도, 책을 잘 읽지 않는 남편의 취향을 분석해 관심 가질 만한 책을 들이미는 것도, 함께하기에 행복하기 때문일 거다.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를 공유해서 척하면 척하는, 둘만이 아는 공감 코드가 생길 때.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면서 미슐랭 뺨치게 분석하고 따져들 때. 혼자 잠드는 것보다 팔베개를 하고 잘 때 더 빨리 잠이 들 때처럼 이제는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상상조차 안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역설적이게도 함께해서 행복하기 때문에 혼자여도 즐거운 삶이 아닐까. 혼자 충분히 즐기다가도 다시 둘이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일 함께일지, 혼자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늘 행복하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어차피 또 함께일 시간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