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존(Zone)을 만드는 일부터가 첫 번째 스텝이다. 공간을 어떻게 쓸지를 구상했다면, 거기에 들어가야 할 물건들을 한데 모아두는 게 다음 스텝. 이때 세부적으로, 또 여유 있게 존을 설정하는 게 중요한데 예컨대 티셔츠 존, 셔츠 존, 겉옷 존같이 의류 배치를 세부적으로 나누되 각각의 공간에 여유를 둬야 분류가 덜 된 옷들, 세탁기 속 빨래까지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삭한 이론처럼 현실이 실현됐다 물으신다면, 천만의 말씀. 여기저기 흩어진 옷들, 마구잡이로 걸려 있는 옷들, 수납박스에 담아둔 옷까지 모아두니 그야말로 옷 무덤이 따로 없었다. 남편과 재미로 다니는 빈티지샵의 옷 무덤과 다를 바도 없었다. 정리를 하기 전부터 이미 거대한 양에 압도당할 수밖에.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라지만 이건 10보, 50보 후퇴와도 같았다. 우리나라가 사계절임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사람이 사는 데 이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신발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두고 지네라고 하는데 옷이 많은 사람은 뭐라고 할까. 찾아보니, 옷귀신, 옷벌레라고 한다는데 뭐든 지나치면 지긋지긋하단 말일 거다.
살 빼면 입으려고 둔 청바지, 중요한 자리에 입으려고 샀지만 정작 그런 자리가 없어 내내 모셔만 둔 정장, 버리기엔 아까워 잠옷으로 입으려고 개어둔 낡은 티셔츠까지. 빼다 보니 정작 입는 옷은 또 얼마 없었다. 이러니 차고 넘치는 옷장을 열어도 매번 입을 옷이 없었지.
어디 옷만 그럴까. 10년 된 냉장고를 처분하고 새로 들인 냉장고는 채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적당히 사면 되련만 1+1, 대용량의 유혹에는 늘 지고 말아서 냉장고 정리템을 추가로 구매하는 어리석은 지출까지. 정리템이 오히려 자리를 차지하는 주객전도의 말로 앞에 흐린 눈을 하고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은 옷은 소파나 의자 뒤에 걸어뒀고, 물건들을 한 번 쓰고 난 뒤에는 제자리에 두지 않아 찾는 데 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이사를 왔다고 완벽한 정리를 꿈꿨으니, 시작부터 스텝이 꼬여버린 거다.
돌고 돌아 정리법을 다시 세워야 했다. 뭐든 느슨하게, 대충 사는데 대충 사는 티는 안 나게. 평소 내 동선에 맞게 물건을 두는 방식으로. 그리고 같은 물건이라도 여러 개 사두는 식으로, 그래야 어디 뒀는지 기억이 안 나도 바로바로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흔한 정리 에세이들이 ‘비움과 버림’을 강조할 때 나는 물량 공세로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인 거다.
이사 전 쓰던 가구, 물건도 다시 보니 정이 갔다. 어차피 버리고 산다 해도 나는 또 똑같은 디자인을 예쁘다고 고를 테니까.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이번 이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인테리어로 밑바탕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내 집을 만들 차례였다. 집을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집에 사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