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집을 샀어도 내 삶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아쉽게도 지난 면접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내 신분은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백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예정된 일정에 맞춰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건 다행이었다. 물론 이삿짐과 각종 가전들이 줄지어 밀려 들어오면서 집 안이 다시금 엉망진창이 됐지만.
살면서 천천히 해도 된다지만, 쌓여있는 짐들은 나에게는 숙제와도 같았다. 남편에게 회사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널널한 내가 집 정리를 도맡아 하겠다고 말한 만큼, 나는 마감에 쫓기는 때처럼 매일매일 집안 정리를 붙들고 있었다. 어쩌면 당시 나는 돈을 버는 대신, 짐 정리를 하면서 내 스스로의 가치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삿짐 업체가 여기저기 짐을 ‘넣어만 둔’ 만큼 다시 꺼내 ‘제대로 넣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정리의 시작은 분류인 만큼, 온갖 짐이 다 나와 있는 아수라장에서 까치발을 하고선 필요한 도구를 찾아 헤매는 일도 허다했다.
가장 먼저 정리한 곳은 안방, 그중에서도 침대였다. 인테리어 공사 기간 내내 가장 절실했던 게 침대였다. 똑바로 누워도 허리가 뜨지 않게 잡아주는 매트리스는 벌써 8년이 됐지만 여전한 나의 최애이자 애착템이었다. 그 침대에 누우면, 비로소 ‘우리 집’이라는 느낌이 들 터였다. 침대에 누워 올려다본 천장이 묘하게 낯설었지만, 매트리스가 주는 익숙함과 남편의 고른 숨소리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짐 정리에 나서자 또 다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1억 원이 넘는 큰돈을 들여 우리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며 바꾼 44평의 집. 막상 그곳에 오랜 시간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을 하나둘 올려놓자, 순식간에 촌스러워진 것이었다. 새집에 자리 잡은 낡은 물건들은 이상하게 초라해 보였다.
'아, 그냥 싹 다 버리고 사야하는 건가?'
순간 아찔한 충동도 일었다. 예쁜 집에 걸맞게 낡은 물건들도 모조리 새것으로 갈아치워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 조바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빨리 이 완벽한 공간에 어울리는 삶을 세팅해야 한다는 압박감. 이 비싸고 큰 집이 주는 무거운 공포였다.
나는 집을 샀지만, 역설적이게도 집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불안해졌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쓸모없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어쩌면 나는 집을 정리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나를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