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6일. 드디어 인테리어 공사의 시작이다. 공정표의 첫 줄은 ‘철거’. 새로운 집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집을 사정없이 부숴야만 하는, 무자비한 파괴의 시간이다.
공사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지만, '죄송함'을 전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며칠에 걸쳐 펜을 들고, 소음에 시달릴 이웃들에게 건넬 인사를 적었다. 여행을 다니며 한 장, 두 장 모아두었던 예쁜 엽서들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이었다.
‘공사 소음으로 평온한 일상을 방해해 드려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글씨와 함께 스마일 수세미와 꽃 무늬가 프린팅된 행주, 작은 틴케이스에 담긴 쿠키까지 담았더니 봉투가 제법 두툼해졌다. 부디, 나의 진심이 소음보다 먼저 닿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장은 내 낭만적인 바람보다 훨씬 가혹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지만, 그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바닥은 시멘트 속살을 흉물스럽게 드러내고 있었고, 벽에는 전선들이 내장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뿌연 시멘트 연기가 안개처럼 떠다녔고, 화장실 타일을 깨부수는 굉음과 함께 바닥의 잔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목은 금세 텁텁해졌고, 눈은 매캐한 먼지에 찔린 듯 따가웠다.
적당히 설렜던 마음은 사라지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 소음이 이웃집 벽을 타고 넘어갈 것을 생각하니, 공사 첫날부터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나의 '우아한 집'은, 누군가의 평온한 오후를 깨트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나.
텅 빈 잿빛 공간에 서서, 나는 마스크를 고쳐 썼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미 집은 부서졌고, 우리는 이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지어야 하니까.
설렘은 30, 걱정은 70. 어쨌든 이제는 물러설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