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쓰고 욕까지 먹는 인테리어

by 고쳐 쓰는 이작가

최종 사인한 인테리어 계약서. 그 맨 마지막 장, 합계란에 적힌 숫자는 무려 ‘아홉 자리’, 127,780,000원이었다.


화면 캡처 2026-03-12 191248.png


1억 2천7백만 원. 이 숫자를 알리자마자 주변의 반응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싸늘했다. 아빠는 도배랑 장판만 하고 살지 무슨 돈지랄이냐며 혀를 찼고, 시어머니는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친언니는 요즘 유행하는 반(半)셀프 인테리어를 알아보라고 부추겼고, 오랜 지인은 “잠깐 살다 팔 건데 아깝지 않냐”며 훈수를 뒀다. “그 돈이면 차라리 신축을 가지 그랬냐”는 핀잔은 덤이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걱정과 비난의 화살들. 내 돈 쓰고 욕까지 먹는, 참으로 가성비 떨어지는 시작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에는 모두가 관대했고, 더 받으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인테리어에 쓰는 돈 앞에서는 모두들 깐깐해졌다. ‘그게 꼭 필요해?’ ‘지금 아니어도 되잖아.’라는 질문들. 집값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인테리어는 선택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과하다는 말로 돌아왔다.


사실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집값의 10%가 넘는 금액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어찌 나라고 손이 떨리지 않았을까. 계약서의 0을 세어보며 이게 맞는 금액인가 눈을 비비기만 수십 번이었다. 그 돈이면 번듯한 외제차를 한 대 뽑고도 남았고, 경기도 외곽의 낡은 빌라 한 채는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피부에 와닿게 음식으로 환산해 보자면, 비싸서 자주 못 시켜먹는 치킨이 6천 마리, 무려 16년 동안 매일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처음부터 이 금액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견적서를 받아 든 날 밤, 우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파일을 열고 ‘삭제’ 전쟁을 벌였다. ‘시스템 에어컨을 한 대 줄이는 건 어떨까?’, ‘온풍기를 한 대 뺄까?’, ‘터닝도어를 다는 대신 막는 비용이 더 저렴할까?’ 하지만 아무리 빼려고 해도 뺄 수 없는 이유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게다가 줄인다고 줄여봤자 티끌이었다. 인테리어의 세계에서 티끌은 태산이 되지 못했다.


더 억울한 건, 이 막대한 비용의 절반가량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화려한 조명이나 최고급 가구를 사는 거라면 억울하지나 않지. 견적서의 가장 큰 지분은 누수를 일으키는 배관을 들어내고, 텅 빈 벽에 단열재를 채워 넣고, 덜컹거리는 샷시의 부속품을 교체하는 정도의 ‘기초 공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쓰는 돈은 집을 ‘꾸미는’ 비용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심폐소생술 비용에 가까웠다.


결국 우리는 인정해야 했다. 항목별로 더해진 최종 금액은 매달 날아오는 카드 명세서와 무척 닮아 있다는 것을. ‘언제 이렇게 많이 썼나’ 싶어 내역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내 손으로 긁지 않은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철거부터 배관, 도배, 바닥, 전기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살면서 꼭 필요한, 뺄 수 없는 항목들의 합산이었다. 업보를 돌려받는 느낌으로 갚아나가는 카드값처럼, 인테리어 비용 역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어차피 할 거면, 나중에 후회 안 하게 하자”


남편의 말 한마디가 마지막 남은 망설임을 밀어냈다. 사인을 하는 건 손이었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부담스러운 금액인 건 사실이다.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 늘었다는 것도 뼈아프다. 그럼에도 우리가 떨리는 손으로 사인한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단순히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미리 결제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1억 2천만 원은 이를 위한 무대 비용이었다. 비싸고, 무겁고, 그래서 더 쉽게 내릴 수 없었던 결정의 값이었다.


이전 12화인테리어, 디펜스와 어택의 핑퐁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