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펜스와 어택의 핑퐁 게임

by 고쳐 쓰는 이작가

집을 사면 행복할 거란 막연한 생각은, 돌아보니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해피엔딩과 닮아있었다.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문장으로 급히 덮어버린 마지막 페이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짜 삶은 결혼식 이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통장의 잔고와 대출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으니, 행복도 즉시 입금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집값의 무게만큼의 걱정과 고민이 이자처럼 꼬리를 물고 따라붙었다.


인테리어는 다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의 새로운 장이었다. 어디를 손댈지, 어떻게 꾸밀지에 따라 전혀 다른 페이지가 펼쳐질 터였다. 특히 부동산 중개사가 집을 보여주면서 스치듯 언급했던 누수는, 생각보다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아파트에 쓰인 배관 자체의 결함인 만큼,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짐을 빼자 적나라하게 드러난 집의 민낯에도 우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누렇게 바랜 벽지, 군데군데 긁히고 들뜬 마루 바닥, 깨진 현관 타일은 어차피 바꿔야 할 터였다. 배관을 교체하는 김에 화장실도, 문틀도 고치면 더 근사해질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수는 좋은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내 안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남의 집을 전전하며 억누르고 참아왔던, ‘내 집이면 다 했을 텐데’라는 그 서러운 욕망이 더 큰 불씨였다. 대출금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그렇다고 대충 살고 싶진 않았다.


어렵게 정한 인테리어 업체와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현관의 파벽돌만 떼어내도 단정한 느낌이 들었고, 주방에 요란한 무늬의 타일만 바꿔도 집이 살아났다. 벽과 바닥 색을 통일하니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도 주었다.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이 훨씬 예뻐질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은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과도 같았다.


문제는 그 ‘조금’이 결코 조금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모든 걸 뜯어고칠 수는 없었다. 선택의 폭은 너무나도 넓었다. 고칠 수 있는 건 너무 많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꼭 해야 하는 것의 경계는 모호했다. 하나를 더하면 비용이 오르고, 하나를 빼면 아쉬움이 남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인테리어는 철저한 어택의 세계라는 것을. 조금의 욕망이라도 담는 순간, 가격은 가차 없이 치고 올라왔다.


그렇다고 마냥 방어만 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 집은 끝내 남의 집 같은 얼굴로 남을 것이었다. 10년간 남편과 다져온 집의 밑그림을 고작 숫자 앞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씩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무엇을 우선 순위로 둘 것인지, 집에서 어떤 공간이 제일 중요한지, 지금 꼭 해야 하는 게 유행에 휩쓸려 내린 결정인지, 아니면 오래 살아도 질리지 않을 우리의 취향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마음과 참아야 하는 현실이 견적서란 네트 사이를 숨가쁘게 오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타협했고, 포기했고, 또 선택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 덕분에 공간은 점점 ‘우리가 사는 집’의 얼굴을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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