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지금 내장이 다 털린 채 굉음을 내며 부서지고 있는데, 집주인인 나는 최대한 얌전한 옷을 차려입고 현관을 나섰다. 내 집이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현장에 있어 봤자, 먼지나 마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몫을 하러 갔다. 일자리를 찾기 위한 면접이었다.
하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삐걱거렸다. 휴대폰 배터리가 38%. 빨간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보조 배터리는 친정으로 보낸 피난용 캐리어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집을 뜯어고치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내 일정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결국 면접 볼 회사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커피 두 잔 값과 배터리 대여료를 날렸다. 불안한 마음에 지출한, 참으로 완벽한 ‘멍청 비용’이었다. 충전 중인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배터리도 지금 간당간당한 건 아닐까.
‘지금 이 시기에 일을 벌이는 게 맞나?" vs "대출 이자 갚으려면 닥치고 해야지.’
치열한 내적 갈등을 누르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사실 일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18년 차 방송작가. 어디 가서 꽁으로 먹은 연차는 아니니까. 예전엔 연락이 안 오면 ‘나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보네!’ 하며 정신 승리라도 했는데, 이제는 공기가 좀 달랐다.
면접장에는 나보다 훨씬 어린 얼굴들이 먼저 와 있었다. 깔끔하게 다린 셔츠와 새것 같은 정장. 그 사이에 끼어있으려니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부족한 경력'이 합격의 허들이었다면, 이제는 '꽉 찬 나이'가 더 큰 장애물이 된 기분이었다.
면접관이 물었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 두 가지와 함께 앞으로 5년간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5년이라는 말에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현재의 나이에 5년을 더하니 아득해졌다. 앞으로의 시간은 대출을 갚는데 써야 할 터였지만 그 말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답을 찾는 동안 머릿속 한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사 현장의 굉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
면접이 끝나고 지하철을 탔다. 버스로 갈아타고, 창밖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잘 봤는지, 망쳤는지도 몰랐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 어린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 무언가를 처음으로 실감했다는 것이다.
집도 공사 중, 내 인생도 공사 중. 참으로 시끄럽고 먼지 나는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