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고수의 고수
가장 좋아하는 초록의 음식을 뽑으라면,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다. 보통의 야채들은 주변 양념과 조화를 이루어 존재감을 뿜어낸다면, 고수는 그 자체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무언가를 대체해 고수로 색다른 맛을 보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고수를 대체할 식재료는 없다.
고수를 먹고 싶을 땐 고수를 먹어야 한다.
고수를 곁들인 음식들
고수에 싸 먹는 삼겹살
기름진 삼겹살의 느끼함을 고수가 잡아준다. 야채와 곁들이면서, 야채에 잠식되지 않는 고기 맛을 느낄 수 있다. 소고기와 곁들이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고수는 삼겹살에게 양보하자.
채 썬 배와 고수를 넣은 한국식 샐러드
식감을 살릴 만큼 적당히 채 썬 배와 고수에 간장, 액젓, 매실,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어 버무린다. 문어숙회와 함께 곁들여 먹었는데 살짝 데친 낙지나 주꾸미 등과 함께 해도 맛있을 것 같다.
마늘 관자 볶음에 듬뿍 올라간 고수
식용유를 두른 팬에 마늘(많이)을 볶다가 간장, 맛술, 약간의 설탕과 굴소스를 넣어 소스를 만든다. 그 후 소금 후추로 밑간 한 관자와 삶은 당면을 넣고 휘리릭 볶는다. 접시에 옮겨 고수를 올려 마무리하면 끝. 듬성듬성 마늘 기름으로 코팅된 관자와 당면, 그리고 고수까지 한 젓가락에 올려 먹으면 바로 고량주를 먹고 싶어 지는 맛!
라면에 고수 토핑
산 정상에서 먹는 라면은 무엇인들 맛이 없겠냐만은, 이 순간을 위해 고수를 챙겨간 뿌듯함과 함께 호호 불어가며 먹는 라면은 정말이지 최고다. 산 정상의 공기와 닿는 면발은 더 쫄깃하고, 고수는 향과 신선함이 더 파릇파릇 살아나는 느낌이다.
고수 품은 계란말이
9박 10일간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적이 있다. 트래킹 중에는 산속 롯지에 머물며 그곳에서 준비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소박했지만 끼니를 해결하기에 충분했고 그마저도 포터가 고지까지 운반하는 소중한 식재료라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래킹을 마친 후 머무른 마지막 숙소에서의 조식은 잊을 수가 없다. 그간의 열악했던 환경과는 극적으로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고수를 넣은 스크램블 에그를 만났다. 달걀과 고수는 익숙했지만 두 재료의 조합은 처음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듯 익숙하게 어울리는 맛에 기가 찬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 스크램블 에그 대신 계란말이에 고수를 넣어보았다. 익숙했던 계란말이에서 선량하고 순수했던 네팔 숙소 직원들의 미소가 스민다.
익숙했던 것에 간혹 변주를 주어 보자.
일상의 귀여움과 재미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다음 글
TASTE 매거진은 매주 수요일에 업로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