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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시청자 Feb 07. 2019

어쩌면 예견되었던 결말

<스카이캐슬> 마지막화에 대한 이야기


<스카이캐슬>이 끝났다. 그리고 그 결말에 대한 반응은 가히 엄청났다.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게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마지막화 재촬영해주세요.’라고 국민 청원까지 올랐으니 말 다했지 않나.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작가는 거지 같은 해피엔딩을 미리 예고했었다. 


복선은 단연 영재 가족이다. 영재네는 드라마 속 사건의 첫 시작인 동시에 가장 먼저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스운 광경을 여럿 보았다. 바로 영재의 아버지인 박수창이 주인공이다. 자식에게 등신, 쪼다, 너 같은 새끼는 없는 게 나아라는 말로 언어폭력은 물론이요, 총도 겨누고, 아들과 아내를 때리는 폭력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던 사람이었다. 그래 놓고 자신은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김주영에게 모든 것을 전가한다. 김주영을 찾아가 협박하고, 이수임에게 김주영이 모든 일의 원인인 냥 털어놓는다. 끝까지 찌질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를 코미디로 그렸으면 모를까. 작가는 진지한 태도로 아버지의 편에서 힘을 실어준다. 영재가 아버지를 용서하며 찾아오고, 갈수록 김주영을 악의 근원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말이다. 우린 이때 짐작했어야 한다.



자식들 양육에는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만큼도 관심이 없는 강준상이 (일례로 예서가 자신에게 버릇없게 굴자 바로 아내 한서진을 잡는다. 누가 보면 남의 자식인 줄 알겠다. 엄연히 ‘강’ 예서 아닌가.) 외식을 하기 위해 직접 예빈이를 픽업하는 다정한 아빠가 되는 것을.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최소 40년 이상의 골이 있었을 곽미향과 그 아버지도 갑자기 사이가 한결 풀어질 것을. 그리고 예서네를 비롯하여 모든 가정의 갈등이 말도 안 되게 사라질 것을.




시청자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마치 다른 드라마가 된 것 같은 전개도 있지만, 갑분죽 ‘갑자기 분위기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갑자기 분위기 본죽(을 비롯한 수많은 PPL)’ 역시 피할 수 없겠다. 그러나 <스카이캐슬>이 용두사미가 된 가장 큰 요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비난의 대상이 지나치게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다른 드라마 한 편이 문득 떠올랐다. 


바로 <라이프>이다. <라이프>는 배우 조승우 씨가 맡은 구승효란 사장이 병원에 오면서 펼쳐지는 일이다. 병원을 환자 혹은 보호자로만 왔던 사람이,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직면하자 격분하고, 꼬집고, 비난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을 땐 타협하면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단편적인 현상만 보지만, 그 뒤에 있는 더 큰 시스템을 목격하고야 만다. 작가가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메디컬 드라마라 함은 으레 그렇듯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병원 사장, 건강보험심사평가위원회, 대기업 총수들까지 왜 무리하여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이는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의료계 전반을 이야기하려 그랬을 것이다. 어느 하나만 말해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위에 있는 시스템 즉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지만 <스카이캐슬>은 달랐다. 아니, 처음엔 비슷한 줄 알았다. 교육계 전반의 문제를 지적할 줄 알았다. 그래서 굳이 삼대가 등장하고,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욕망의 결정체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결국 부모의 과욕만을 탓한다. 더 정확히 지적하면 엄마의 욕심이라고 꼬집는다. 그런데 과연 부모의 욕심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 부모는 왜 욕망을 갖게 된 것일까. 단순히 내 자식이 대학을 잘 가면 기세 등등할 수 있어서?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범한 최초이자 가장 큰 실수가 아닐까 싶다. 마치 드라마에서는 오직 부모의 명예만을 위해서 아이를 명문대로 보내려는 것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짝 어긋나 보이는 출발은 완전히 뒤틀린 결말을 맞이한다. 현실을 간단히 살펴보자. 대학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한국에서 대학은 첫 출발점이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런 현실 구조를 논하지 않는 블랙코미디는 그냥 코미디 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두 드라마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시청자 중 의료계 종사자는 소수일 수 있으나,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한 문제는 대부분이 몸으로 실감했거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부모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가정이 마음을 비우면 모두 다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럼 현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 우스워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위 ‘금수저’라고 부를 만한 능력 있는 집안들만 나오면서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카이캐슬’을 떠난 한서진 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온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치과 의사를 그만둘 정도인 민자영을 보며 ‘스카이캐슬’의 남은 엄마들은 자신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마침내 비웃기에 이른다. 마치 모든 미래를 다 안 다는 듯. 사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말이다. 풍자의 사전적 뜻은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언급했듯 한국의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면서, 그들끼리 이상향을 만들고 현실에 있는 사람을 놀림감으로 만드는 건 절대 풍자가 될 수 없다. 


안 그래도 구조에 대한 고찰이 없는 수박 겉핥기인데, 그 와중에 당당하게 통달한 태도를 취하다니. 민자영이 아니라 드라마가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시청자들한테 말이다. 대단한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결말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짐작했지만, 애써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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